오랫만에 서울여행을 한다. 2021년 정월 초하루부터 부산 원도심 골목여행으로 시작한 도보여행길은 제주도, 충청도, 강원도를 둘러 서울로 입성했다. 간혹 한 번씩 서울을 방문하기는 했지만 마음먹고 여행하긴 처음이다. 이번 여행은 오대궁을 중심으로 돌아볼 참이라 인사동에 숙소를 정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 밖을 내려다보니 인사동이 흰 눈으로 덮여 있다.
오늘은 경복궁을 간다. 서울지방국세청 앞을 지나는데 목은 이색 선생 사당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보여 골목으로 들어선다. 작은 쌈지공원인 수송공원이 있다. 기미 독립선언문을 인쇄한 보성사터다. 보성학교, 숙명학교, 신흥무관학교, 중동학교, 대한매일신문 옛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함께 서 있다. 이것저것 표지판을 읽는데 타종하는 소리가 들린다. 몰랐는데 공원 바로 옆이 조계사 후문이다. 조계사로 들어서니 대웅전 앞마당에서 '10.29 참사 희생자 추모 위령제'를 하고 있다. 우연히 49재에 참석한다.
"잘 자라 우리 아가 / 앞 뜰과 뒷동산에 / 새들도 아가 양도 / 다들 자는데"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배우 이지한의 어머니, 조미은 님이 자장가를 부르며 유족대표 인사를 시작한다.
"오늘 저는 지한이의 영정 사진을 쌌던 흰색 보자기로 목을 두르고 지한이가 신던 까만색 양말을 신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조계사에서 저희들의 아들딸들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셔서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오늘이 오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이승에서는 아이들을 만날 수 없는,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되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곳, 안전한 나라에서의 환생도 바라고 있지만 이승과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고 숨이 막혀 옵니다. 하지만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만큼은 아름다운 말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부모님들의 편지를 제가 대신 전하려 합니다."
"연이야, 우리 가족은 연이와 함께 살아온 세월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한단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온 사랑스러운 우리 연이. 이태원 골목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늘나라로 갔을까, 아빠가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또 다른 세상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행복하게 잘 있길 바란다. 연이 아빠가."
"내 인생에 가장 소중했던 나의 분신 동민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숨을 쉴 때마다 내 몸속 마디마디에서 눈물이 난다. 부지런히 돈 벌어서 사업하겠다던 너의 꿈. 이제 너도 없고 꿈도 없구나. 어찌 보내야 할까, 그 먼 길을 어찌 보내야 할까. 넘어지지 말고 천천히 조심해서 잘 가려무나. 걱정 말고 편히 잠들거라. 나의 아들아. 동민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유족들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조미은 님은 잠시 낭독을 멈춘다. 손이 떨려서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한다. 숨죽여 흐느끼던 유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겨우 참고 있던 울음이 오열로 변한다. 조미은 님은 호흡을 가다듬고 다음 사연을 이어 간다.
"우리 가족 행복의 샘물, 다빈아. 자랑스러운 우리 집 막내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운 얼굴에 사랑스러운 미소들은 이제 수많은 꽃송이가 되어 노란 수국으로 피어났구나. 먼저 간 그곳에서도 늘 그랬듯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려나. 우리 곧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 다빈아. 다빈이 오빠 희로가."
"누나 나랑 사이가 안 좋았잖아. 누나한테 잘해 준 게 없어서 미안해. 누나가 나에게 했던 말들은 내가 싫어서가 아니었든 걸 지금 알았어. 정말 미안해. 내 그릇이 작았던가 봐. 많이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나 누나 동생 김건."
"형주야, 그립고 너무나 보고 싶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은 청춘, 펼쳐보지도 못한 짧은 인생을 살다가는 너무 불쌍한 우리 아들 형주야. 이제는 너를 편히 보내야 할 것 같구나. 다음 생에 만나 못다 한 정을 다시 쌓자. 부디 다시 만날 날을 기억하며 잘 있거라. 사랑한다. 아들아. 형주 엄마가."
"민석아. 고모는 우리 민석이 고모라서 너무 행복했어.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사랑해. 민석이 고모가."
"30살 청년도 낯선 누군가를 도와주려다 이태원 차가운 도로에 쓰러졌습니다. 말 잘하시는 대한민국 잘나신 분들, 어린아이들도 하는 '잘 못했다. 미안하다.' 이 한마디를 못하는 겁니까. 158명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습니까. 우현이 엄마가."
"사랑하는 하나뿐인 우리 딸 상은아. 엄마 아빠가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이승에서의 모든 고통과 아픔, 슬픔 다 버리고 부디 힘내서 잘 가거라. 우리 딸이어서 고마웠고 행복했어. 정의로운 세상, 안전한 세상이 올 때까지 엄마 아빠가 최선을 다할게. 상은이 엄마가."
"가엾은 우리 딸 민아 극락 왕생하게 해 주세요. 다음 생에도 엄마와 아빠 딸도 태어나 주기를 바래. 사랑한다. 민아야. 민아 아빠가."
"깜찍한 지한아. 누나야. 너 지금 정말 많이 우리 걱정하고 있잖아. 걱정하지 마. 엄마랑 아빠랑 나, 잘 지내고 있어. 너를 닮은 깜지(?)도 우리가 잘 보살피고 있어. 지한아, 네가 나중에 딸을 낳으면 날 닮았을 거라고 막말해서 미안했어. 너는 싫겠지만 내 아들은 너랑 똑같으면 좋겠어. 너는 우리 가족의 빛이고 자랑이고 여전히 너는 나 자신보다 소중한 사람이야. 추위를 너무 잘 타는 내가 차에 타면 말없이 의자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해결해 주던 다정한 지한이. 손이 아기같이 귀여운 지한아. 이제 너는 긴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할게. 조심해서 잘 다녀와. 돌아오면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만나서 밥 먹자. 지한이 누나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지 49일째인 12월 16일(금) 오전 10시,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10.29 참사 희생자 추모 위령제'가 열렸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조계사 극락전 앞에 특별 제단을 마련했다. 희생자 67분의 영정과 위패 78위를 모시고 49재의 전통불교 의식으로 이승을 떠나는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유가족과 스님 및 일반 신도,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식은 158번의 타종으로 시작되었다. 지현 주지 스님이 헌향을 한다.
이수민 청년회장은 “꽃 같던 그대들을 떠나보내는 우리 모두의 마음은 깊이 아팠습니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것은 그대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디 모든 고통을 잊으시고 아픔이 없는 곳에서 평온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추모 법문을 한다.
“영가와 유족들이 느끼는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앞으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여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마냥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평안한 마음 상태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영가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조계사에 모인 모든 대중은 영가가 다시는 고통을 겪지 않도록 이고득락(離苦得樂 :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누림)과 극락왕생(極樂往生 : 죽어서 극락에 다시 태어남)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심곡과 관음시식의 천도의식을 마치고, 고(故) 이지한 배우의 어머니 조미은 님은 유가족을 대표한 인사말에서 “저는 아직 지한이 사망 신고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영원히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한복판 이태원 그 골목에서 차갑게 생을 다한 우리 아들, 딸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 주십시오. 제일 안전한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서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기를 모두 다 기원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기억해 주는 우리 아들딸들은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라고 호소했다.
신위와 종이로 만들어진 모형 옷과 신발을 태우는 소전의식을 끝으로 49재는 끝난다. 유가족들은 대웅전을 향해 희생된 아들 딸의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다. (2022.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