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요즘 부산에서 가장 뜨거운 동네다. 연일 뉴스의 머리기사를 장식한다. 지난 19일 가덕 신공항 특별법이 진통 끝에 국회 국토교통위를 통과하고, 25일 법제사법위 의결, 26일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2021.2.21(일)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화제의 섬 가덕도를 걷는다.
낙동강 하구에 있는 가덕도는 섬 면적이 절영도의 1.5배로(20.78㎢) 부산의 섬들 중 가장 크다. 창원군, 의창군 등에 소속되어 있다가 1989년 부산시 강서구로 편입되었다.
가덕도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섬으로 산이 많다. 북쪽에는 부산신항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고, 남쪽은 가덕신공항이 들어설 후보지다. 섬 북부 지역을 제외한 해안은 대부분 가파른 해식애를 이루고 있으며, 해안선이 36km에 이른다.
녹산공단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로가 개통되어 교통이 편리해져 꾸준히 유입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거가대로를 옆으로 두고 신항 남로를 이용하여 부산신항 국제터미널, 다목적터미널을 지난다. 컨테이너 부두에 골리앗 크레인 등 선적 장비들이 보이고, 형형색색의 컨테이너 박스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오늘은 먼저 가덕도의 북부지역 성북동, 동선동, 눌차동을 둘러볼 생각이다. 신항 남로를 따라가다 가덕 해안로 쪽으로 좌회전한다.
처음 만나는 마을이 선창마을이다. 선착장이란 뜻을 담고 있는 선창(先艙) 마을은 예로부터 가덕도의관문으로 가덕 첨사 시절에는 수군의 군항지였다. 지금은 마을이라 부르지만, 이곳의 지명의 한자 표기는 '배를 고치고 건조하는 곳'이라는 뜻의 '선창(船廠)'이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열린 가덕도와 육지를 잇는 뱃길은 2010년 부산 신항 매립 공사로 폐쇄된다. 진해 용원에서 가덕도(선창, 눌차, 장항, 천성, 대항) 사이를 매일 12회 정도 왕복 운행하던 정기선도 끊어진다.대신가덕도 선창 마을과 눌차도를 연결하는 눌차교와 신항남로가 개통된다. 또 거가대로도 개통된다. 지금은 시내버스와 마을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농협 하나로마트에 주차하고 천가교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갈맷길5-2구간의 출발점이다. 갈맷길은 선창마을에서 시작하여 천가초등학교, 연대봉, 대항항, 동선 방조제, 외눌마을을 거쳐 다시 선창마을로 이어진다.
섬 속의 섬, 눌차도를 걷다.
우리는 반대편 외눌마을, 정거 벽화마을, 동선 방조제를 거쳐 선창마을로 돌아오는 눌차만 일주로를 선택한다.
천가교는 다리가 두 개다. 왼쪽 다리는 차도고, 오른쪽 다리는 보도다.
가덕대교가 항월마을 북쪽 장화 코 부분을 살짝 짚고 지나간다. 섬 속의 섬, 눌차도는장화 모양을 하고 있다. 위로 지나가는 도로가 녹산공단에서 거제도 장목으로 이어지는 '거가대로'고, 그 중간중간에 가덕대교, 눌차 대교, 거가대교가 있다. 전체를 거가대교라 부르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천가교를 지나면서 멀리 동쪽의 동선 방조제를 바라본다. 호수 같은 눌차만에는 굴, 가리비 양식장이 펼쳐진다. 줄지어 선 양식장이 장관이다.
천가교를 건너면 외눌마을 들머리다. 들머리부터 두 개의 섬처럼 보이는 그 중간 지점 잘록한 목의 형태를 하고 있는 곳이 외눌마을이고, 오른쪽 산 밑이 내눌마을이다. 그 목을 넘어가면 항월마을이 나온다. 목 넘어 마을, 항월마을이란다. 우리는 천가교에서 외눌마을을 바라만 보고, 왼쪽 가덕 해안로를 따라항월마을로 들어간다.
서쪽을 바라본다. 바다 건너 부산신항의 컨테이너 터미널이 가까이 보인다. 신항 조성 공사로 굴 양식장이 많이 줄어들었다. 가덕 해안로 주변 해안가 곳곳에 가리비 껍데기가 밧줄로 묶여 무더기로 쌓여있다.폐기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작업하는 양식업자에게 조개껍데기가 무엇에 쓰이는지 물어본다.
굴 양식은 두 가지 방식이 있단다. 하나는 밧줄이나 말목, 뗏목 등에 어린 굴(굴종패)이 붙은 가리비 껍데기를 매달아 바다로 내리는 '수하식'이다. 조류가 거세지 않은 잔잔한 바다에서 양식하기 적당한 방식이다. 섬과 육지로 둘러 싸여 있어 연중 바다가 잔잔한 눌차도 인근 해안은 최적의 양식 환경을 갖춘 곳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돌을 던져서 굴이 자생하도록 하는 '투석식'으로 서해 앞바다에서 주로 하는 방식이다. '수하식'보다 굴의 알맹이는 작지만 자연산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난 굴은 작고 어리기에 '어리 굴'이라 한다 이걸로 담은 젓갈이 '어리굴젓'이다.
해안가나 바지선 위에 가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굴을 채취하거나, 종패를 심는 작업장이다. 바지선은 흰색, 연두색, 주황색, 주홍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의 깃발을 달고 있다. 깃발을 단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진 찍기엔 그림이 좋다. 바다 건너 신호 공단이 가깝게 다가온다.
배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양식업자 부부의 모습이 그림 같다. 양식장 부자재로 사용되는 뗏목이 마을 곳곳에 야적되어 있다.
봄이 성큼 다가왔다. 길가에 활짝 핀 노오란 꽃이 아름다워 이름을 검색해 보지만 분명치 않다.
매화가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동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길가에 널려 있는 빨래가 인기척을 대신한다.
산불감시초소 앞에서 우회전하여 외눌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꺾어져 올라가면 폐교가 나온다. 눌차초등학교다. 1958년 천가초등학교 눌차 분교로 개교하여 베이비붐 세대가 취학 연령이 되자, 1960년 눌차초등학교로 승격하였다. 2011년 학생 수 감소로 천가초등학교와 통합되어 폐교되었다.
외눌마을에서 넘어오는 능선길과 외눌마을에서 올라오는 마을 길이 교차하는 고갯마루에 눌차 왜성 안내판이 서 있다. 위 사진의 왼쪽 하얀색 민가 앞이 사거리 고갯마루다. 오른쪽은 눌차초등학교다.
눌차 왜성은 임진왜란 후 왜군이 일본과 가장 가깝고 낙동강과 남해안을 통하는 전략적 길목인 가덕도를 장악하기 위해 건립한 성이다. 정유재란 종전 시까지 왜군이 주둔한 것으로 보인다. 눌차섬 꼭대기에 석축이 남아 있다고 안내판은 설명하고 있으나, 흔적을 찾기 힘들다. 안내판 오른쪽 잔대 숲으로 들어가 거의 정상까지 올라가며 20분을 헤매지만, 성곽 흔적 찾기에 실패한다.
다시 돌아 내려온다. 경작지에 흙으로 쌓은 축대가 있어서, 산불감시초소감시원에게 이것이 왜성이냐고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더니 아니란다. 왜성이 있었다고 하는데, 복원된 것도 없고 옛 흔적도 찾기 힘든다고 설명한다.
조금 전 항월마을 바지선에서 본 양식업자가 배를 타고 양식장에 들어와서 작업하고 있다. 바다 건너 명지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해변을 둘러싸고 있다.
뗏목이나 밧줄에 달린 굴종패를 심은 가리비 껍데기 묶음이 밀물 때는 바다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에는 모습을 드러내어 햇빛을 쬔다.
정거 벽화마을, 마을 전체가 미술관
정거 마을로 들어선다.
동선 터질목은 풍랑이 거세다. 풍랑이 심하면, 고기잡이 나가는 어선이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이곳에서 닻을 걸고 기다린다 하여 '닻걸이'라 불렸다.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碇 (닻 정) 巨(클 거) 里(마을 리)를 써서 '정거리(碇巨里)'가 되었단다.
이 정거마을은눌차도 주민들의 생활상을 벽화로 그려낸 문화마을이다.벽에도, 길바닥에도, 장독대에도 벽화로 가득하다. 마을 전체가 미술관이다.
바닷가 조그마한 어촌 마을에 그림판이 시작된다. 평화로운 마을 풍경의 벽화가 정거마을 초입에서 길손을 맞이한다.
돌담처럼 쌓아진 축대 위의 나지막한 벽에 동화 속의 마을이 그려져 있다.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떠오르고 귀여운 모습의 집들이 그려져 있다. 집 주위는 초원이 펼쳐져 있다. 축대 위의 작은 남새밭에 초록의 채소가 올라오고 있다.
어디까지가 그림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구분이 안된다.
뭍에 올라온 작은 고기잡이배가 있다. 벽에 달려있는 낡은 목재 유리창, 앞 쪽의 스쿠터도 그림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가벽 밑 작은 가건물에는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 옆에 한 가족인 양 고양이들이 모여 앉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길에서 밭 너머 멀리 창고 같은 기다란 스레트 지붕의 건물이 있다.
벽에는 운동회날 줄달리기하는 아이들이 그려져 있다. 영차영차 하고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옆에는 아이들이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고 있다. 엄마 등에 업힌 동생들과 가방을 멘 아이가 걸어간다.
본격적으로 벽화 골목이 시작된다. 손 하트가 길손을 반긴다.
행인이 드문 골목길에 직거래 장터가 선다. 파래, 김, 문어, 대구, 생굴, 각굴 등이 좌판에 놓여 있다. 하얀 빈 칸은 실제로 정거마을 직거래 장터에 나온 오늘의 싱싱한 어물을 소개하는 게시판이다. 연락처도 함께 게시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장 보러 나오셨다. 젊은 여성이 장터에서 산 어물 장바구니를 들고 마주 지나간다.
굴 이야기가 적혀 있다.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무기질, 비타민 등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굴은 바다의 우유라고 불린다며 특산물을 자랑한다.
굴종패를 심을 가리비 껍데기를 밧줄에 엮고 있는 아낙네들. 눌차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굴을 채취하고 있다. 굴은 겨울에 채취한다. 이 시기가 영양분이 높고 맛도 좋다.
마을 앞 가로수 너머로 그려진 진우도와 수평선 처럼 보이는 앞 집 스레트 지붕의 그림자, 어지럽게 쳐져있는 전깃줄이 함께 그려진 것 같다.
압화를 만들려고 책 속에 끼어 두었던 들꽃을 만지는 아이를 보고 동심으로 돌아간다.
나즈막한 언덕 앞을 펼쳐진 연두색 숲과 밭이 보이고, 강가에 조그마한 집이 한 채 서 있다. 강 건너 풀밭에 키 큰 나무 한 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 나무 그늘 밑에 평상이 놓여 있다. 한 여름 매미 소리 들으며 낮잠 자던 고향집이 생각나는 그림이다.
의자에 앉아 통발을 손질하는 어민의 모습,막 들어온 어선에서 아침 밥상에 올릴 팔딱 뛰는 생선을 사서 안고 가는 주부의 흐뭇한 표정이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강서구청의 지원을 받아 정거마을 주민들과 벽화 전문 회사가 조성한 벽화마을이다.
노오란 색으로 처리된 바탕색이 전체적으로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마을이다. 아치형 창문을 통하여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내다 보는 듯하다.푸른 바다 위에 피어난 흰 뭉게 구름이 그림 속의 높은 종탑과 붉은색 지붕의 이국적인 모습과 조화를 이룬다. 오른쪽의 우편함도 그림같다.
바닷가 언덕 위에 오막살이 집 한 채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가 서있다. 앞바다로 지나가는 배의 통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빨랫줄에 물고기를 말리고 있다. 그 밑에 검은 고양이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강아지 두 마리가 의기투합하여 물고기 담긴 양동이를 뒤집어엎는다. 강아지와 뒤편 롤러 외는 다 실제다.
대형 풀장에서 돌고래가 재주를 넘는다. 아이가 바닷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다.
가리비 껍데기를 붙여 놓아 파래 이끼가 낀 듯한 연두색 벽에 하얀색 나무가 서 있다. 버려지는 가리비 껍데기로 정거마을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연신 셔터를 눌러대니 '다 낡아서 볼 것도 없는데'하며 색 바랜 벽화가 당신 탓인 양 미안해하던 할머니의 집이다.
가리비 껍데기를 붙여 감성돔 형상을 만들어 놓았다. 가리비 껍데기로 만들어진 부엉이가 나뭇가지 위에 날아와 앉는다. 아내도 그림 속으로 들어선다. 해녀가 뿜어내는 거품을 가리비로 형상화한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벽화가 그려진 담장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마을 중간에 등대로 나가는 길이 나누어진다. 방파제에는 예외 없이 낚시꾼이 앉아 있다.
너른 마당 한 켠에 졸고 있던 강아지가 지나가는 길손의 인기척에 돌아본다. 뒤 벽면을 짙은 파란색으로 칠하여 배경의 효과를 준다. 강아지와 너른 마당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등대 앞에 앉아 눌차대교, 줄 지어선 굴종패장을 바라보며 잠시 쉰다. 햇살이 내리쬐는 평화로운 정거 앞바다는 사색에 잠기기 좋다.
벽화는 계속 이어진다. 바닷속 깊은 곳에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청둥오리가 놀고, 방게가 기어 다니는 모습을 도요새가 지켜본다.
거북이가 기어 나오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그림 앞에 쉼터가 있다
정거마을은 환경부가 지정한 습지생태체험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헛개나무를 망에 넣어 빨랫줄에 널어 말리고 있다. 설치 미술 작품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겠다.
마을 앞 바닷가에 화덕이 있다. 솥뚜껑을 돌로 눌러 놓았다.
앞에 보이는 국가지정문화재 낙동강 하구 철새 보호구역인 진우도도 정거마을의 일부로 봄이 타당할 것 같다.
마을의 마지막 집이다. 주인은 앞쪽 바닷가에서 물질을 하고 있고 강아지가 집을 지킨다. 낯선 사람이 와도 짖지 않고 바라만 본다. 갈맷길 걷는 외지 사람들을 많이 봐서인지 경계를 하지 않는다.
집 앞마당 가장자리로 둘러 가도록 갈맷길 안내판이 안내한다.제주 올레길을 걷다 보면 불편함을 이유로 땅주인이 길을 막은 곳을 종종 볼 수 있다. 갈맷길 걷는 사람들로 인한 말 못 할 불편이 있을 텐데, 불편을 감수하고 길을 내 준 집주인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