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광화문을 통하여 들어왔지만 국립고궁박물관이 있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로 나온 사람들은 서쪽 용성문을, 승용차를 이용한 사람들은 동쪽 협생문을 통하여 흥례문 앞으로 들어온다. 매표소도 여기에 있어 흥례문이 실질적인 경복궁 정문 역할을 하고 있다.
흥례문을 들어선다.
흥례문 안쪽의 경복궁 안내실 앞에 문화 해설사가 기다리고 있다. (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 30분 또는 1시간 간격으로 해설을 한다. 6개 외국어 해설도 진행한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한 명과 우리 부부가 함께 해설사의 안내로 답사를 시작한다.
흥례문과 그 사이로 보이는 근정문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입니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 중심 건물만 남겨놓고, 조선 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을 가려버립니다."
다행히 문민정부 때부터 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이곳 흥례문 일원의 복원을 시작으로 차츰 옛 모습을 되찾고 있다.
"경복궁의 복원은 고종 중건 당시의 건물을 기준으로 하고 있고요, 2045년까지 한 40% 가까이 205동 정도의 전각을 복원할 계획입니다. 현재는 30% 조금 넘게 복원되어 있습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an9756
"우리는 광화문부터 흥례문, 근정문을 지나는 정연하고 위엄 있는 엄숙한 진입공간, 근무하는 정치공간인 근정전·사정전·수정전, 왕과 왕비·대비가 생활하는 개인 공간인 강녕전·교태전·자경전, 연회 공간인 경회루, 제사 공간인 태원전, 후원의 순으로 한 시간 조금 넘게 전각을 둘러볼 것입니다."
광화문 - 흥례문 - 근정문 - 근정전 -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을 잇는 궁궐의 핵심 공간은 질서 정연하게 대칭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중심부에서 벗어난 건축물들은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어 변화와 통일의 미를 더불어 갖추고 있다.
경복궁과 자금성에 대한 오해,
자금성은 자금성이고 경복궁은 경복궁일 뿐이다.
"경복궁은 자금성을 모방해 지은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올시다'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은연중 가지고 있는, 큰 나라에 대한 역사적 콤플렉스가 가져다준 오해라고 할 수 있지요. 우선 시기적으로 경복궁이 25년이나 먼저 지어진 것입니다."
해설사는 경복궁과 자금성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먼저 이야기한다.
궁이 앉은 대지의 규모도 자금성이 몇 배로 큰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 경복궁은 14만 평으로 자금성 24만 평의 약 60% 정도) 입지가 서로 달라서 그렇게 보인다. 자금성은 산이 없는 평평한 땅에 폭이 넓고 깊이가 얕게 자리 잡았으니 규모가 웅장해 보인다. 자금성 뒤의 산은 연못을 조성하면서 파낸 흙으로 만든 인공산이다.
하지만 경복궁은 폭이 좁은 반면 매우 깊게 자리하었으며 뒤로는 북악산과 인왕산의 자연경관을 끌어안고 있다. 백악산과 인왕산이 경복궁의 뒤뜰인 셈이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은 "차경의 미학을 경복궁처럼 훌륭히 이뤄낸 건축물은 세계에서 드물다"라고 한다.
물론 건축물의 스케일은 차이가 있다. 황궁인 자금성은 5문 3조(五門三朝)이고, 왕궁인 경복궁은 3문 3조(三門三朝)이다. 이는 유교국가로서의 국제적 규범을 따른 것일 뿐 억울해하거나 자존심 상해할 일이 아니다.
외적의 침략에 대비한 '해자'를 갖추고 있고, 궁내에 나무 한 그루 없이 성으로서의 웅대함을 강조한 자금성과 자연과 어우러진 궁궐로서의 경복궁은 각각 따로 봐야 한다.
"자금성은 자금성이고 경복궁은 경복궁일 뿐입니다."
궁궐의 진입공간, 3문(三門)
"첫 번째 문인 광화문, 두 번째 문인 흥례문은 이미 통과하였습니다. 여기 '예를 일으킨다'라는 흥례문(興禮門)과 근정문 사이의 일곽 가운데에는 명당수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조성한 내가 있습니다. 궁 뒤의 북악산과 궁 앞에 내를 둔 것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지요."
금천과 영제교. 금할 금(禁), 내 천(川) 자를 써서 금천(禁川)이다. 경복궁을 비롯한 모든 권위 건축물에는 금천과 이를 건너는 다리를 볼 수 있다. 왕이 계신 지엄한 공간과 백성의 공간을 분리한다. 궁궐에 들어오는 관리들이 다리를 지나면서 맑은 물에 몸과 마음을 씻은 후 국정에 임하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이 다리를 '물길을 건넌다는 의미'로 영제교(永濟橋)라고 한다.
영제교와 난간의 하엽
영제교는 다리 상판을 두 개의 홍예로 받쳐 세우고, 다리 양쪽 난간에 하엽(荷葉:연잎)으로 치장하였다.
천록(天祿). 영제교 양옆의 호안 석축 위에는 서수(瑞獸, 상서로운 동물)를 사방에 조각해 놓았다. 이 조각상은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로 신령스러운 짐승, '천록'이다. 천록은 물길을 타고 침입하려는 나쁜 기운으로부터 궁궐을 지킨다고 여겼다.
금천과 천록. 천록이 해학적이고 맹랑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하얀 눈을 덮어쓰고 물길을 내려다보며 웅크리고 있는 돌짐승 네 마리는 무섭다기보다 해학적이고 맹랑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혀를 날름 내고 있는 모습이다. 왕궁의 위엄을 지키면서 군왕의 너그러움을 동시에 나타내는 여유를 느끼게 한다. 왕의 밝은 은혜가 온누리에 미치기를 기원하는 석공의 마음이 서려 있다.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던 이 천록 조각상은 수정궁에 하나, 남별궁(지금의 환구단)에 하나가 떨어져 있다가 1997년 흥례문을 복원하면서 다시 돌아와 네 마리가 함께 모였다.
근정전 월대에서 본 근정문과 근정전 일곽
근정문. 남쪽 행각의 가운데에는 3칸으로 구성된 3문의 세 번째 문인 근정문이 있다. 왕과 왕비 세자 그리고 중국의 칙사만이 사용하는 문이다. 신하들은 그 좌우의 협문으로 출입한다. 동쪽은 문관이 이용하는 일화문(日華門)이고, 서쪽은 무관이 이용하는 월화문(月華門)이다.
"근정문은 단지 드나드는 출입문의 역할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곳이었습니다."
근정문
정전 영역의 입구인 근정문은 왕과 신하가 만나는 조참(朝參) 행사를 하는 곳이다. 왕은 근정문의 가운데 칸에 어좌를 설치하고 남향으로 앉고, 신하들은 흥례문 일곽을 남북으로 나누는 금천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직급이 높은 당상관이 남쪽에는 직급이 낮은 당하관이 양쪽으로 도열하여 임금에게 예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