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행사공간, 근정전

경복궁 3

by 정순동


경복궁 배치의 기본 골격은 '3문 3조'이다. 광화문·흥례문·근정문 3문을 거치면 외조·치조·연조가 반듯한 축선 위에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그 첫 번째인 외조는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조회의식)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大禮) 또는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근정전 권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뒤편 산 능선의 스카이 라인과 박석의 불규칙적인 이음선은 근정전 지붕 선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사진 출처 : 궁능유적본부 경복궁 관리소.

왕이 지나가는 어로를 따라 근정전을 다가간다. 배경으로 우뚝 솟은 북악산이 깊은 감명을 준다. 아내는 뉴스 시간에 청와대 배경으로 눈에 익은 산이라 친근감이 들어 해설사에게 묻는다.

"뒷산이 인왕산입니까?"

수업할 때도 그렇다. 이어갈 다음 말을 질문해 주는 학생이 있으면 훨씬 설명이 매끄러워진다.


"북악산입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산이 인왕산이고요. 발걸음을 옮기면서 산을 바라보세요. 장소가 바뀌면 경복궁의 건축물과 어우러진 북악산과 인왕산의 모습도 따라 바뀝니다. 이게 자금성과 다른 점이지요. 주변에 산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경복궁을 지은 것입니다."


자금성보다 경복궁이 좁다는 평을 의식한 듯, "경복궁의 규모를 말할 때는 광화문 광장과 북악산, 인왕산을 함께 넣어서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다.



박석의 미학과 과학적인 지혜​


박석. 조정 마당에 조각보처럼 불규칙하게 생긴 얇고 넓적한 돌들이 깔려 있다. ‘박석’이다. 근정전까지 이어진 어도의 수직선과 높직하게 자리 잡은 월대의 2단 수평선, 하늘을 나는 듯한 팔작지붕의 가냘픈 곡선은 박석의 불규칙한 이음 선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눈 덮힌 박석

과학적인 지혜도 탁월하다. 월대 쪽이 근정문 쪽보다 약간 높게 설계되어 박석 이음새가 구불구불 자연스러운 물길을 만든다. 아무리 큰 비가 내려도 물길이 급하게 우수관로로 몰리지 않고 박석 이음새를 사이로 찾아, 흐른다. 또 햇빛이 난반사되어 눈부심을 막아준다.

"박석의 겉 부분이 거칠어서 걷기에 힘들 수 있지만, 신하들이 조심스럽게 다니도록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요. 오늘은 눈이 와서 바닥이 더욱 미끄럽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어도 좌우에 비석처럼 생긴 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 돌들은 무엇일까요?"

근정전 마당의 어도 양퍈에 세워진 품계석

품계석. 근정전에서 행사를 할 때 신하들이 자신의 지위에 맞게 줄을 설 수 있도록 품계석이 놓여있다. 근정전을 바라보면서 오른쪽(동쪽)에는 문신들이 차례로 줄을 서고 왼쪽(서쪽)에는 무신들이 품계석에 따라 줄지어 선다.

"품계석은 정조대왕이 창덕궁 인정전에 처음 만들었다고 합니다. 위계질서를 잡고 왕권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시쳇말로 '군기 잡기' 용도가 아니었나 합니다."

품계석 좌우에 차일(천막)을 쳤던 고리

품계석 좌우에 차일(천막)을 쳤던 고리가 정2품과 종2품 사이에 설치되어 있다. 고리와 월대, 기둥에 묶어서 행사 때 비나 햇빛을 막아주는 차일을 쳤는데 이 또한 위계를 엄격히 하였던 흔적이다.



답도와 월대


답도. 월대 중앙에 어도와 이어져 임금의 가마가 올라가는 '답도'가 있다. 아름다운 봉황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 석수는 아마도 경복궁 복원 전부터 있었던 물건인듯하다.

답도

월대. 근정전은 경복궁의 핵심 건물이다. 근정전에서는 왕의 즉위식, 세자 책봉식, 외국 사신을 맞는 등의 중요한 일을 하던 공간이었다. 근정전은 권위 건축물답게 돌로 쌓은 2단의 높은 월대 위에 지어져 왕의 권위를 높였다. 상ㆍ하월대는 난간석으로 둘렀다. 난간석을 받쳐주는 하엽석이 아름답다.

아월대의 난간석과 하엽석


월대의 석상. 월대로 올라서면 월대 주위에 동물 조각상들이 앉아 있다.

상월대에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청룡(동)·백호(서)·주작(남)·현무(북)가 있다. 이를 사방신이라 한다.


하월대에는 시간과 방향을 나타내는 12지상이 조각되어 있다. 12지 동물들 중에서 개와 돼지는 보이지 않는데, 왜 그런지 그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월대의 동서 양쪽 모퉁이에 근정전을 지키는 성스러운 동물 가족이 보인다. 어미와 새끼가 붙어있는 것은 '대(代)를 이어 근정전을 지키라'라는 뜻이라고 보고 있다.

월대의 석상


드므. 월대 모퉁이에서 계단을 내려서면 가마솥같이 생긴 물통이 놓여 있다.

"중건 후에도 몇 차례 화재가 났습니다. 화재를 막고자 하는 상징물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드므란 ‘넓적하게 생긴 큰 독’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고요, 화재에 대비한 방화수를 담는 통이지만 불을 끄기에는 통이 작지요. 상징적인 의미가 더 컸습니다. ‘화마’가 드므에 채워진 물에 비친 자기 얼굴에 놀라 도망친다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드므 밑에서 숯불을 피워 물이 얼지 않도록 했다고 하네요."

드므. 출처 : 궁능유적본부


근정전의 '부지런함'이란​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들은 신하들의 조력과 견제로 이상적인 왕도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 1395년 경복궁의 최소 공간인 3문 3조를 확보 후, 정도전은 모든 건축물에 백성들과 신하들의 염원을 담은 이름을 지어 바친다.


근정전은 정치하는 공간이다. "정도전은 '근정전 기문(記文)'에서 '임금이 부지런하게 정치를 하되, 부지런할 바를 알아야 한다. 어진이를 찾는데 부지런하고, 기용하는데 부지런해야 된다'라고 근정전의 뜻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강조하였습니다. 신진사대부들이 조선 건국으로 추구하려고 했던 왕도정치의 이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팔작지붕. 근정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다포집 팔작지붕이다. 팔작지붕은 사방으로 지붕면이 있다. 좌우 양측 지붕면 위에 삼각형의 합각이 있고, 처마 끝은 하늘 높이 곡선을 그리며 솟아오른다.

한옥의 지붕 모양

근정전 내부

"근정문과 근정전이 이층으로 보이지요. 한번 들어가서 보시겠습니다. 안은 이층이 아니라 통층입니다. 이런 구조로 된 건물을 중층 건물이라 합니다."

근정전은 외부는 2층이지만 내부는 층의 구분이 없이 통째로 트여 있다.

뒷면 중앙에 어좌가 정면을 보고 있고 그 뒤에는 군왕의 권위에 대한 칭송과 왕조의 번영을 기원하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의 병풍이 받치고 있다.


바닥에 전돌이 깔려있다. 흙을 고온에서 구워 만든 것으로 내연성, 보온성이 뛰어난 재질이다.

근정전 내부

"천정을 살펴보려면 측면이 수월합니다. 왼편으로 갈까요."

왼쪽 문에서 반대편 벽면을 들여다본다. 외부와 달리 내부는 층의 구분이 없이 통째로 트여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천정을 바라본다. 중앙에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고 황색 칠조룡 한 쌍이 매달려 있다. 군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조각이다.

근정전 천정의 황색 칠조룡 장식

"발톱이 7개인 것은 '북극성(왕)에 대비된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왕조의 자존심이었던 근정전은 일제 때 겨우 살아남지만 내부가 크게 바뀌고 일제의 행사장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이제 점차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경복궁의 심장인 근정전의 외부와 내부를 둘러보았습니다. 이제 임금의 집무실인 사정전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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