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의 공간인 근정전을 지나서 뒤로 돌아가면 임금의 집무공간인 '사정전(思政殿)'이 있습니다. 치조에 해당합니다. 사정문으로 들어갑니다."
깊이 생각해서 정치를 하라
"사정이란 이름은 정도전이 지은 것으로 '깊이 생각해서 정치를 하라'라는 신하들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의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얘기다. 생각이란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도전은 "천하의 이치를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 임금이 진실로 깊이 생각하고 세밀히 살피지 않으면 어떻게 사리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더욱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사정(思政)'의 뜻을 설명했다고 한다.
사정전
"왕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경연과 정사를 주로 하던 공간인 편전에 걸맞은 이름이지요. 현판은 경복전 중건 때 이조판서 조석우가 썼다고 합니다."
사정전 내부
3단 석축 위에 올라앉은 사정전은 고종 4년(1867)에 중건한 편전 영역의 중심 건물이다. 어좌를 어탑 위의 가운데 설치하고, 왕이 앉는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가 그려진 병풍이 세워져 있다.
어좌 앞쪽의 좌우에는 낮은 탁자가 각각 하나씩 놓여 있다. 실록의 원고가 되는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이 앉았던 자리다.
일월오봉도.
조선시대 궁궐의 어좌 뒤에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 폭포 등이 그려진 병풍이 놓여 있다. 조선 임금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오봉병, 일월오봉병, 일월오악도, 일월곤륜도라고도 한다. 지나온 근정전의 것이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일월오봉도
사진을 확대하여 일월오봉도를 살펴보자.
오봉. 그림의 중앙에 가장 높은 산봉우리가 솟아있고, 그 양쪽에 작은 봉우리가 각각 두 개씩 자리하여 큰 봉우리를 모시듯이 서 있다.
해와 달. 해는 오른 편의 작은 봉우리 사이에, 달은 왼편의 작은 봉우리 사이에 떠 있다.
폭포. 양쪽의 작은 봉우리 사이에서 시작한 폭포의 물줄기는 파도치는 물결을 향해 떨어진다. 병풍의 하단을 채운 물은 물결무늬로 반복되는 문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하얀 물거품들이 무수히 일어난다.
소나무. 키가 큰 적갈색 소나무 네 그루는 병풍의 양 구석에 배치된 바위 위에 서 있다.
어좌. 이 모든 그림의 소재들이 좌우대칭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그 중앙에 어좌가 놓여 있다. 매우 장엄한 느낌을 준다. 어좌에 임금이 앉으면 비로소 일월오봉도가 완성된다. 조선시대, 항상 임금의 뒤에 이 그림은 있다. 임금이 죽으면 함께 묻힌다고 한다.
운룡도
운룡도. 용상 앞쪽 좌우 기둥을 연결한 보 위에는 구름 속에 놀고 있는 용을 그린 '운룡도(雲龍圖)'가 걸려 있다. 이는 경복궁에서 하나밖에 없는 벽화라고 한다. 이 벽화와 병풍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
사정전은 벽이 없다. 문 위에도 격자형 창호를 달아 전각 안을 밝게 했다. 편전은 직무 공간이라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다. 날씨가 추울 때는 사정전 좌우에 있는 보조 편전인 만춘전과 춘추전을 이용했다. 이곳에는 사정전과 달리 온돌이 있다. 두 건물 모두 동쪽과 서쪽 기단 가운데에 각각 2개씩 아궁이가 있다. 건물 뒤편에는 기단과 이어진 굴뚝이 있다.
3단의 석축 위에 사정전(좌)이 있고, 동쪽에 만춘전(가운데)이 있다. 사정전 앞쪽은 내탕고(우)다.
만춘전.
겨울과 초봄에 주로 편전으로 사용했던 보조 전각으로 사정전 동쪽에 있다.
"만춘(萬春)이란 '만 년(萬)의 봄(春)' 즉, '길고 오랜 세월'을 뜻합니다. 오랫동안 바른 정치를 하기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오행에서 동쪽을 나타내는 계절이 봄이므로, ‘봄 춘(春)’ 자를 넣었다고 합니다."
만춘전은 세종 때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다시 짓는다. 일제 때는 조선물산공진회 심사실로 사용되는 수모를 당한다. 해방 후에도 국립박물관에서 유물 창고로 사용되고 한국전쟁 땐 폭격으로 전소된다. 현재의 건물은 1988년에 복원되었으며, 현판은 경복궁 중건(고종 4년) 시 좌승지 송희정이 쓴 것을 달았다.
천추전
천추전.
가을, 겨울에 주로 사용하던 보조 편전으로 사정전 서쪽에 있으며, 만춘전보다 크기가 작다.
"천추(千秋)란 '천 년의 가을'로 이 역시 '길고 오랜 세월'을 뜻하며, 만춘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바른 정치를 하기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고요. 이 또한 오행에서 서쪽을 나타내는 계절이 가을이라, ‘가을 추(秋)’ 자를 넣었다고 합니다."
천추의 운명 역시 만춘전과 비슷한 길을 걷는다.
천추전 온돌방
"현판을 올려다볼래요. 현판 글씨는 경복궁 중건 때, 이조참의 정범조가 썼고요. 철망 같은 게 보이지요. 언제 만들어진 걸까요."
천추전 현판과 부시
부시. 현대에 설치한 것 같지만 조선시대부터 있던 구조물이란다. "경복궁을 둘러보다가 건물 기둥과 지붕 처마 밑에 이런 것들이 쳐져 있어요. 그물인데 부시예요"
"새들이 날아와 처마 밑에 둥지를 틀거나 앉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지요. 새들이 날아들면 새똥 때문에 나무 기둥과 주위가 지저분해지고 단청이 훼손되겠지요."
내탕고. 사정전 권역은 사방으로 행각이 둘러싸고 있다. 동서의 행각은 일반행정을 보는 직원들의 사무실이다. 남쪽의 근정전 영역과 사정전 영역을 구분하는 긴 행각은 왕실의 개인 재물을 보관하던 창고인 내탕고다.
내탕고
내탕고 문은 사정전을 마주 보고 나 있고, 문 앞에 천 자고(天字庫)·지자고(地字庫)·현자고(玄字庫) 등의 이름이 붙은 창고는 10개가 있었다.
임금은 천재지변이 나거나 극심한 흉년이 들면, 내탕고의 재물을 풀어 백성들을 구휼한다. 뿐만 아니라 신하들에 내리는 특별포상에도 이를 사용하여 왕실의 품위와 권위를 유지하였다. 요즘으로 치면 판공비, 기밀비에 해당한다.
예나 지금이나 기밀비의 사용이 도덕성의 척도가 된다. 어느 정치인은 부적절한 금품의 출처를 의심받게 되자, 기밀비를 자신의 부인에게 주어 살림에 보탰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변명하고 지금도 살아남아 현란한 혓바닥을 놀려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