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수정전, 한글 창제의 산실인 집현전이 있던 곳

경복궁 5

by 정순동

"이제 3문 3조의 축선을 잠시 벗어납니다. 사정전에서 서쪽으로 나갑시다. 행각 밖에 궐내각사가 있던 곳에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수정전이 있습니다. 근정전 서쪽이자 경회루 남쪽에 위치한 편전으로 세종 때 한글 창제의 산실이 된 집현전이 있었던 곳이지요. 집현전은 학자를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던 곳인데 임금이 참여하는 경연, 서연이 주로 열렸던 장소이고요."

수정전

슬쩍 끼워 넣어 손녀 자랑 좀 해 보자.

태블릿 PC로 유튜브 '티니핑'을 보던 다섯 살 먹은 손녀가 "할아버지, 글자 놀이해 볼게요"한다. 아직 손가락에 힘이 없어 연필을 잘 잡지 못하니 자판을 치겠단다.


"할아버지, 글자가 만들어지지 않는데요"


"왼쪽 오른쪽 왼쪽으로 손가락을 번갈아 쳐야 글자가 된다"


손녀는 금방 자판 쓰는 법을 익힌다. "왼손 오른손 왼손" 하면서 ㅈ, ㅓ, ㅇ을 쳐서 '정'을 만든다.

한글 단모음 키보드

한글은 여러 면에서 그 우수성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도 컴퓨터에 딱 맞는 문자다. 어떻게 몇 백 년 후에 컴퓨터가 생길 줄 알고 초성, 중성, 종성을 조합하여 왼손, 오른손을 바꿔 가며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 그 한글이 여기서 만들어졌다.

세조가 집권한 후 집현전은 폐지되고 전각의 이름은 예문관으로 현판을 갈아단다. 집현전 학자들과의 불편한 관계가 그 이유라고 보고 있다. 주변의 궐내각사와 함께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사라진다.


수정전은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1867) 시 내전과 외전의 대부분 전각이 준공된 후에 복원된다.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앞면 10칸에 팔작지붕을 올렸다. 정면에 정전과 정침에만 설치되는 월대를 갖추고 있고, 답도는 없지만 어도를 갖추어 사정전 못지않은 편전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수정전

1867년(고종 4) 경복궁의 중건 후, 경복궁에서 전각의 위계는 근정전, 수정전, 사정전으로 자리매김된다. 이즈음 임금은 향과 축문을 내리고, 승지의 소견이나, 입격한 유생의 소견과 신하의 예를 받는 것을 수정전에서 하였다고 한다. 수정전은 사정전 외에 또 다른 편전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종 초기에는 사정전과 수정전을 같이 운영하다가 점차 수정전으로 그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1872년(고종 9) 고종의 어진을 수정전에 보관하였다.


"1875년(고종 12) 어진을 건청궁의 관문각으로 옮긴 이후, 수정전은 (다시 고종 초기와 같이) 편전의 용도로 사용됩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의정부를 경복궁 안에 옮기되 내각으로 고쳐 부르고, 장소는 수정전으로 하였다. ​​/ 고종실록 31년 12월 16일

​고종 31년(1894) 갑오농민전쟁 이후에는 군국기무처를 이곳에 설치하고 내각 본부로 사용하면서 '갑오경장' 조치를 단행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북궐도형,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북궐도형」에 의하면, 이곳에서 영추문까지 (왕을 근저에서 보필할 필요가 있던 관원들이 근무하던 관청인) 궐내각사 200여 칸의 행각들이 모여 있었다. 비서실 승정원, 정책 연구기관 홍문관, 의료기관 내의원, 학술연구 및 서적 출판을 관장하는 규장각,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는 예문관 등이다.

일제는 흥선 대원군이 복원한지 48년 후인 1915년에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궐내각사를 모두 철거하여 민간인에게 팔아넘기고 지금은 달랑 수정전 한 채만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수정전은 전시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내부의 바닥 구조가 변형된다. 2000년 보수 공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26년부터 궐내각사 일부를 복원할 계획이다.


수정전 월대 앞에 장영실이 발명했던 '자동 시보 장치가 붙은 궁중 표준 물시계인 자격루를 설치했던 보루각의 옛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이 표지석에는 '장영실 선생은 자격루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측우기, 천체관측기 간의, 천문시계 혼천의, 태양 고도 측정기인 규표 등을 만든 위대한 과학자'로 소개하고 있다.

보루각 옛 터를 알리는 표지석

세종 16년에 만든 자격루는 물의 흐름을 이용한 시보장치를 갖춘 물시계로, 복원하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여기쯤 오면 다리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날씨가 따뜻하면 수정전 앞의 나무밑에서 수정궁의 영욕과 풍운의 세월을 생각하며 쉬어가기도 합니다. 카페도 있습니다."


해설사는 안내만 하고 경회루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따라 갈 수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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