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녕전과 교태전, 그리고 자경전

경복궁 7

by 정순동


치조 공간인 사정전 뒤로 돌아가면 강녕전이다. 중심축을 살짝 벗어났던 우리의 탐방길은 경회루 쪽에서 다시 '3문 3조'의 마지막 권역인 연조 공간으로 들어간다.




임금의 침소, 강녕전​

"연조 공간은 임금과 왕비의 생활공간입니다. 보통 내전 또는 침전이라 하지요. 반갓집에 사랑채와 안채가 있듯이 강녕전과 교태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먼저 사랑채에 해당하는 강녕전으로 들어갑니다."

향오문

향오문(嚮五門). ‘향오(嚮五)'는 서경 홍범 편에 나온 ‘향용오복(嚮用五福)’에서 빌려온 말로 ‘다섯 가지 복을 권유하여 누린다’는 뜻이다. 오복(五福)은 수(壽, 목숨), 부(富, 재물), 강녕(康寧,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함), ‘유호덕(攸好德, 덕을 베풂), 고종명(考終命, 제 명에 편히 죽음)을 말한다.

"향오문 안쪽으로 강녕전이 보이지요. 강녕이 오복의 바탕입니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여야 나머지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정도전이 전각의 이름을 지을 때 강녕전의 이름을 가장 먼저 지었다고 합니다. 강녕전은 임금이 홀로 있는 침전입니다. 홀로 있으면 자칫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임금이 심신을 바로 닦아 오복을 편하게 누리시어, 백성들 역시 오복을 누릴 수 있도록 선정을 베풀라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

해설자의 설명에 툭하고 받아넘기는 일행이 있다.


"그러니까 밤새 술 마시고 의관도 제대로 정제하지 못한 채 까치집을 지은 머리로 조회에 지각하는 일은 하지 말라는 거네요."


"그렇게 말하니 알아듣기 쉽네."​


침전은 사적인 공간이지만 임금의 사생활은 사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민본주의 정신에 입각한 유교국가를 세우려던 신진사대부 정도전의 간곡한 염원을 담은 작명이다. '향오문', '강녕전'이란 현판을 연이어 걸어 군왕의 바람직한 자세를 넌지시 강조한 것이다.



강녕전(康寧殿)의 역사

1395년(태조 4) 경복궁 창건 당시 함께 지어져, 1433년(세종 15) 고쳐지었으며, 1553년(명종 8) 불탄 것을 이듬해 새로 지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타 없어진 채 한동안 방치된다.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 1920년까지 이어졌으나 일제에 의해 다시 수모를 당한다. 강녕전을 해체하여 그 건축자재로 1917년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 내전을 재건한다. 이렇게 헐린 이후 터만 남아 있다가 1994년 복원되었다.

강녕전

구조. 팔작지붕이 올려진 정면 11칸, 측면 5칸의 건물은 단층이지만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대단히 장엄하고 무게감이 느껴진다. 장대석을 높게 쌓은 기단과 건물 가운데 만든 넓은 월대는 강녕전의 위엄을 돋보이게 한다.



분합문과 무량각. 대청의 출입문이 위로 올려져 있다. 공간을 필요에 따라 개방하거나 분리할 수 있게 한 분합문이다. 강녕전과 교태전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다. 용마루를 올리지 않은 이유로 여러 설이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강녕전의 분합문과 무량각

"임금과 왕비의 침전 건물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용마루가 없다는 점이지요. 이런 집을 '무량각(無樑閣)'이라 합니다. 용은 임금을 상징하지요. 용이 깃든 건물인데 용마루를 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강녕전 지붕 위의 잡상(雜像)과 토수(吐首)​.

궁궐의 지붕을 자세히 보면 동물 모양의 조각처럼 보이는 것들이 올려져 있다.

강녕전 지붕의 장식기와. 용두, 잡상, 토수(오른쪽 위에서부터)

"장식기와라고 합니다. 상상의 동물들이 궁궐에 불이 나지 않도록 지키고 있지요."


강녕전에는 없지만 다른 궁궐의 지붕에는 맨 위 좌우 끝에 있는 ‘취두’라는 장식기와가 있다. 아래로 내려오면 ‘용두’가 있고, 둘 다 용 모양이다.

"용두 앞으로 일렬로 늘어선 '잡상'은 서유기의 주인공인 삼장법사,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 등 상상의 동물들로 되어 있어요. 잡상 아래 추녀 끝을 보세요. 용 모양을 하고 있는 게 ‘토수’ 예요."


토수(吐首)는 비바람에 목재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추녀 끝에 끼워 놓은 부재를 말한다.



연생전(延生殿)과 경성전(慶成殿)

강녕전의 동쪽과 서쪽에 두 개의 소침이 있다. 연생전과 경성전으로 보조 침전이다.

동쪽에 있는 연생전의 '연생'은 '생명의 기운을 맞이한다'라는 뜻이다. 오행에서 동쪽은 봄을 의미한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결과적으로 동쪽은 생명, 탄생을 의미한다.

강녕전 동쪽의 연생전

서쪽의 경성전은 '완성을 기뻐하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서쪽은 가을이고, 가을은 결실을 맺는 계절이다. 가을은 완성과 결실을 의미한다. ​


"연생전과는 경성전은 뜻이 서로 연결됩니다. 생명의 태어남과 결실 맺음이라는 천지 만물의 생성 이치를 본받아서, 임금이 좋은 정치를 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

강녕전 서쪽의 경성전


응지당(膺祉堂). 강녕전과 경성전 사이에 응지당이 보인다. 가슴膺 복祉. '복을 받는다'라는 의미의 응지당은 임금의 음식을 데우던 곳이다.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과 강녕전은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수라상을 나르는 사이에 음식이 식을 수 있지요. 참 꼼꼼합니다. 중간에 음식을 한 번 더 데울 곳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

응지당


어정(御井). 강녕전의 좌측 응지당과 경성전 사이로 들어서면 우물이 자리 잡고 있다. 임금의 전용 우물이다. 원형 몸통은 태극을, 팔각 테두리는 우주의 팔괘를 형상화하였다.

어정과 흠경각

흠경각(欽慶閣). 담장 너머로 흠경각이 내다보고 있다. 흠경각에는 시간을 알리는 천문 기기들이 있었다.

"이곳은 흠경각입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들에게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때를 알려 준다는 뜻이지요. 조선은 농업국가였습니다. 세종은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정확한 절기와 시간을 알려주고자 했습니다."

세종은 관노비 출신인 장영실을 등용하고 자신의 거소 인근에서 연구하게 한다. 흠경각은 당대의 과학자들이 모여 연구하던 곳으로 자동 천문시계, 해시계 등 기상관측기구들을 모아 두었다. 요즘으로 치면 과학관이다.




왕비의 침소, 교태전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 북쪽에는 왕비의 침전이자 사무실로 쓰이는 교태전이 있다. 보통 중궁전이라 한다. 교태(交泰)는 ‘하늘과 땅의 음양의 기운이 잘 어울려 왕조를 번성케 한다(天地交泰)’는 의미이다. 64괘 중 가장 좋은 ‘태(泰)’ 괘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여성의 영역인 교태전은 아늑하고 단아한 느낌을 준다.


양의문(兩儀門). 교태전의 정문이다. 양의란 음양(陰陽)을 의미한다. 동양의 전통적 관념에서 여성은 음, 남성은 양을 뜻한다. ‘양의’는 임금과 왕비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살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양의문

"양의문 양옆의 담장에 굴뚝이 있습니다. 어느 전각의 굴뚝일까요. 강녕전의 굴뚝입니다. 굴뚝을 빼낼 만한 공간이 마땋치 않지요. 교태전 행랑채에 붙여 기둥처럼 서 있습니다."


굴뚝은 주황색 전돌로 쌓아졌다. 동쪽 굴뚝에는 '천세만세(千歲萬歲)', 서쪽 굴뚝에는 '만수무강(萬壽無彊)'이라는 전서체 글자 무늬가 새겨져 있다. 문은 다른 문과 달리 여섯 짝의 작은 접이식 문으로 되어있다. 여인들이 여닫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

양의문에 설치된 굴뚝(우)과 접이문(좌)

교태전(交泰殿)의 역사.

1443년(세종 25)에 증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던 건물로 여겨진다. 불이 자주 났다. 1553년(명종 8) 불탄 것을 이듬해 중건했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에 탄다. 1865년(고종 2) 중건 후에도 다시 불탄 것(1876년)을 1887년 다시 짓는다. 1920년 일제는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 대조전을 다시 지으면서 강녕전과 함께 철거하여 건축 부재로 사용한다.

교태전의 무량각

무량각(無梁閣). 교태전의 지붕도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이다. 그래서 양쪽 지붕이 만나는 용마루가 없는 꼭대기 부분에 비가 스며들지 않게 말안장이나 멍에처럼 생긴 특이한 모양의 곡와(曲瓦, 안장기와)를 덮었다. ​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외에도 임금과 왕비의 침전인 창덕궁의 대조전과 창경궁의 통명전에도 용마루가 없다. 그러나 대한제국 때, 아관파천 했던 고종이 환궁하면서 지은 경운궁 함녕전에는 용마루가 있다.​​


원길헌(元吉軒). 교태전 동쪽의 부속 전각 원길헌은 '크게 선하여 길하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으며, 임금과 왕비가 합궁할 때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처음 지어졌다. 고종이 건청궁에 머물던 시기엔 약원(藥院), 외국 공사 접견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다가 일제강점기에는 교태전과 같은 운명의 길을 걷는다. 지금의 건물은 1995년 복원된 것이다.

교태전과 원길헌

함흥각(含弘閣). 교태전 서쪽에 있는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던 부속 전각이다. 주역의 '함홍광대(含弘光大)'에서 유래했으며 '포용하고(含) 너그럽다(弘)'는 뜻이다. 역사는 원길헌과 같다.

함흥각

함원전(咸元殿). 교태전 서쪽, 흠경각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함원전은 세종이 궁궐 내에 설치한 불당으로 알려져 있다. ‘원기(元)를 간직(含) 한다’는 뜻을 품고 있는 함원전은 단종이 거처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이 건물 역시 임란으로 소실된 것을 흥선대원군이 중건합니다. 후에도 화재로 인한 소실과 복원을 거듭하지만, 일제강점기 창덕궁 희정당의 복원을 위해 해체됩니다. 지금의 이 건물은 1995년 경복궁 복원사업으로 복원되었고요."

함원전


아미산 화계와 굴뚝​

교태전 후원으로 돌아가면 아름다운 꽃동산이 있다. 아미산이다. 그 꽃동산이 시작되는 모서리에 우물이 있다. 왕비의 우물로 추정된다. 강녕전의 어정과 달리 우물의 높이가 낮고, 테두리가 둥글다. 어정의 팔각 테두리에 비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도 어정과 마찬가지로 북악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이 막혀 물은 없다.

왕비의 우물. 오른쪽으로 아미산 화계가 시작된다.

"후원은 왕비를 위로하는 공간입니다. 드라마에서 왕비가 투기를 일삼거나 왕의 허락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걸 종종 보는데, 실제로는 격무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왕비가 우리가 생각하는 화려한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왕비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미산. 경회루의 연못을 파면서 나온 흙을 쌓아 작은 가산을 만든 것이 아미산이다. 장대석으로 석축을 쌓아 4단의 화계(꽃계단)를 만들어 놓았다. 꽃과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꽃동산을 만들고, 또 화계 위에 기이한 형상을 한 돌을 담은 석분(石盆), 물을 담는 석지(石池)인 낙하담(落霞潭, 노을이 지는 연못)과 함월지(涵月池, 달을 머금은 연못), 화려한 무늬로 장식한 교태전 굴뚝 4기가 배치되어 있다.

아미산의 굴뚝, 석분, 함월지와 낙하담

교태전 굴뚝. 아미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4기의 육각형 평면을 한 굴뚝들이다. 교태전 온돌방 밑의 구들을 통과한 연기가 나가는 굴뚝을 이렇게 예쁜 모습으로 꾸며 놓았다.


육각 굴뚝의 각 면에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등의) 십장생, 사군자,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아미산 굴뚝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한 굴뚝의 위쪽 연기에는 기와를 얹었고, 그 위에 작은 창을 내어 연기가 빠지게 하였다.

"굴뚝은 기능을 중시하는 딱딱한 이미지가 있지요. 아미산 굴뚝은 각종 아름다운 문양과 뛰어난 조형미로 경직된 이미지를 상쇄하였습니다. 꽃동산과 잘 어우러진 훌륭한 예술품입니다."​


"왕비의 전용 산실인 건순각을 거쳐 자경전으로 갑니다. 실제는 이 산실에서 탄생한 왕손은 없다고 합니다."​



조대비의 침소, 자경전과 꽃담장


고종의 양어머니 신정왕후 조 씨의 침소다. 조선 초기 자미당(紫薇堂)이란 침전이 있었던 빈터에 흥선대원군이 조대비전으로 지었다.

만세루

"매우 추운 날도 이곳에 오면 따뜻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아들이 왕으로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신정왕후에 대한 고맙게 여겼던가 봅니다. 조대비의 침소로 양지바른 자리에 큰 규모의 전각을 지어 드립니다. 침전의 이름은 정조가 혜경궁 홍 씨의 침전으로 지은 창경궁 자경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자경전. 자경(慈慶)은 '자친(慈親, 남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이 복(慶)을 누린다'라는 뜻이다.

자경전

건물이 지어진 후 두 차례에 걸친 화재로 소실되어 재건을 거듭했으나, 일제의 경복궁 건물 해체와 한국전쟁의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아 몇 차례의 수리를 거쳐 고종 때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자경전은 대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다. 중앙에 자경전, 좌우에 복안당과 청연루가 자리하고 있다.


"서북쪽에 온돌 침실이 있는 복안당이 있는데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한 것이고요. 동남쪽의 청연루는 자경전에 딸린 누마루입니다.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지요."


꽃담장. 자경전 꽃담장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주황색 벽돌로 쌓아 삼화토로 마감하여 기와가 올려져 있다.

꽃담장

"부산에서 오셨다고 했죠, 서울 택시 색깔이 어떤 색깔이던가요?"


그렇다. 서울역에 내리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택시의 색깔이었다. 수도 서울의 택시 색깔이 뭐 저렇게 촌스럽나 했는데, 자경전 '꽃담황토색'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느낌이 따뜻하고 친근감이 느껴진다.

꽃담장의 문양

교태전 아미산에서 말했듯이 중전을 거쳐 대비가 되기까지 겉보기에는 화려한 것 같아도 격무와 외로움에 시달리는 남모르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자경전의 담장을 아름답게 두른 것은 아마 대비를 위로하려는 뜻이 담겨 있을 것이라. 그냥 아름다운 꽃담장이 아니라 장수를 기원하는 글자와 문양으로 장식해 놓았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 자경전의 굴뚝은 담장 일부를 한 단 앞으로 내밀어 만들었다.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 무늬와 당초문, 그리고 박쥐문을 정교하게 새겨 넣은 집 모양의 굴뚝은 담장의 일부로 처리했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

자경전 꽃담장과 십장생 굴뚝은 건축을 공학적 영역에서 예술적 영역으로 승화시켜 경복궁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경복궁 해설은 보통 여기까지 하는데 눈도 내렸고 하니, 눈도 구경하고 향원정도 보고 건청궁까지 갑시다."

눈 덮힌 자경전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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