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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Jun 05. 2023

'나바론 하늘길'을 나르샤

추자도

추자도는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상ㆍ하 추자도를 종단하는 능선의 동쪽 사면은 대체로 완만한 구릉성 산지인데 반해, 해식애가 발달한 서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해안 절벽의 풍광이 빼어나다. 그중에서도 첫손가락으로 꼽는 곳이 상추자도 서북쪽에 위치한 소위 '나바론 절벽'이다.

나바론 절벽

비록 정식 올레길로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이 나바론 절벽길을 걷지 않고 어찌 추자올레를 완주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먼저 후포 해안을 들른다.


후포 해안은 작은 몽돌 해변이다. 몽돌 해변 앞바다를 용둠벙이라 부른다. 코지 사이로 빨려 들어온 바닷물이 연못처럼 고여있다. 용둠벙에 원형 가두리의 설치물이 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새로운 소재를 이용한 항파성 가두리로 참치를 양식하고 있다.

원형 가두리가 떠 있는 후포 몽돌 해변 앞바다, 용둠벙의 풍광이 아름답다.

추자도 인근 수역은 청정해역으로 바다낚시의 천국이다. 감성돔, 돌돔, 농어, 우럭 등이 많이 잡히는 곳이라 바다낚시 애호가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곳이다.

용등봉과 전망대(왼쪽), 직구도의 저녁노을을 보는 곳(오른쪽)

용등봉 꼭대기의 용둠벙 전망대에 오르면 나바론 절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아내는 바위산 끝에 있는 정자를 보고 겁을 먹는다. 넘어가는 길을 몰라도 가파른 길을 갔다가 돌아오는 것은 손해 보는 기분인가 보다. 나바론길을 바로 가자고 조른다.


直龜落照(직구낙조). 원형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거북 모양의 직구도는 저녁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용등봉

'가지 않은 길'은 자꾸 돌아보는 법이다. 용등봉은 안경을 이마 위에 얹혀 놓은 고릴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왼쪽 아래가 턱이고. 그 위로 입, 콧구멍과 코, 콧등이 잘록한 위로 눈과 이마. 그 위에 안경을 올려놓았네. 오르내리는 길이 안경테로 보이는 것이 나만의 상상력일까?

독산을 오르는 가파른 계단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나만의 노하우.

하나, 둘, 셋 ㆍㆍㆍㆍㆍ 계단 수를 센다.

269계단을 오르고 산길 잠깐,

다시 97계단을 오르면 말머리 바위.

말머리 바위

다무레미섬. 가파른 절벽을 오르다가 뒤를 돌아본다. 직구도, 수령섬과 악생이가 떠 있고 봉글레산에서 이어져 나온 코지 너머로 다무레미섬이 보인다. 특히 다무레미섬은 썰물 때 바닷길이 생긴다. 굳이 낚싯배를 타지 않아도 건널 수 있어 갯바위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직구도, 수령섬과 악생이, 봉글레산과 다무레미섬, 항파성 가두리가 보인다.

다시 67계단을 오르고, 25계단을 내려가고ㆍㆍㆍㆍㆍㆍ그만 숫자를 잊어버린다. 아무튼 여러 번을 오르내리다가 우리가 묵었던 추자섬 민박집 뒤의 독산 꼭대기에 보이던 그 정자에 오른다.

추자항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서리 마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등대산과 봉글레산. 바다 위에 떠 있는 추자 군도의 모습은 섬세하게 묘사한 풍경화다. 염섬, 예도, 추포도, 횡간도, 흑검도 ㆍㆍㆍㆍㆍㆍ

대서리 마을과 추자 군도

고개를 용둠벙으로 돌린다.

용둠벙이란 용이 노는 웅덩이와 같다는 데서 유래된 것인데 여기서 '둠벙'은 '물웅덩이'의 방언으로 물이 고인 곳을 뜻한다.


마치 용둠벙의 용이 승천하는 듯 신비한 모습을 보인다. 깎아지른 듯 날카로운 모습을 한 절벽에 밀려와 부딪치는 파도로 하얀 포말이 일어난다.

용둠벙의 용이 승천하는 듯 신비한 모습으로 변신한 용등봉

보기만 해도 아찔한 기암괴석의 낭떠러지에 돈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고 바닷바람에 떨고 있다.

나바론 하늘길이 열린다.


나바론 절벽. 대서리 용둠벙에서 독산, 큰산 및 등대 전망대로 이어지는 능선의 바다 쪽 해식애를 나바론 절벽이라 부른다. 이 절벽 위에 난 길이 '나바론 하늘길'이다. 워낙 아름다운 풍광이라 추자 주민들이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추자의 비경이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기암괴석의 낭떠러지

해안에 수직으로 높게 솟은 가파른 절벽이 2차 세계대전을 다룬 그레고리 팩이 열연한 영화 ‘나바론 요새’에 나오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높고 험하다 하여 낚시꾼들이 '나바론 절벽'이라 불렀다고 한다.

나바론 하늘길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들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어지럽다. 난간을 잡고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천 길 낭떠러지의 아찔한 모습을 내려다보며 걷는 계단은 온몸에 오싹 전율이 일게 한다. 손에 든 핸드폰을 떨어뜨릴 것 같아 호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코끼리 바위. 코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코끼리 형상을 한 바위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두려운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사람들은 특이한 모습의 바위마다 이름을 붙여 놓았다.

코끼리 바위


추자나무 없는 추자섬

올레는 낭떠러지를 잠깐 벗어나 숲속 오솔길로 이어진다. 추자나무가 많아 추자도(楸子島)라 했다는데 정작 추자나무는 보이지를 않는다. 간혹 소나무와 까마귀쪽나무도 보이지만, 산 전체가 사방오리나무 군락이다. 나무 아래에는 청미래덩굴, 담쟁이, 천남성, 털머위 등이 지표를 덮고 있다.


사방오리. 솔방울처럼 생긴 열매를 단 사방오리는 자작나무과 오리나무속의 낙엽 활엽 소교목이다. 바닷바람에 잘 견디고 생장 속도가 빠르지만 추위에 약하다.

사방오리

나무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방공사에 많이 활용되는 수종이다. 원산지인 일본에서 1940년 경 도입되어 사방에 이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자도의 사방오리도 일제강점기에 들여온 것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지의류. 나무 둥치와 바위에 대기오염 지표종인 지의류가 붙어있다. 지의류(地衣類, Lichen)는 녹조류(혹은 남조류)와 균류의 공생체다. 조류는 광합성으로 만든 탄수화물을 균류에 제공하고, 균류로부터 수분을 공급받는다.

나무 둥치에서 자라는 지의류

툰드라, 사막, 바닷가의 돌, 숲속의 나뭇가지나 바위 등의 척박한 환경에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장수하는 생물이다. 심지어 화산 폭발로 분출된 용암 위에 맨 처음 나타나는 생명체가 지의류다. 지의류가 암석 표면을 토양화시키면 그 바탕 위에 다른 식물들이 자라므로 지의류를 '식물 군락의 개척자'라고도 한다.

나무에 붙어 자라는 지의류를 확대해 본다.

하지만 지의류는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대기오염 정도나 금속의 오염도를 산정하기 위해 지의류를 이용하기도 한다.

바위에 붙은 지의류

다시 해안 절벽의 능선 길로 나온다. 나바론 하늘길은 큰산을 오르면서 절벽 트레킹의 짜릿한 감동은 절정을 이룬다. 북서쪽의 직구도와 정자가 있는 독산, 동쪽의 추자 군도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다음에 다시 올 것을 기약한다.

큰산에서 본 독산과 추자 군도

해군 레이더 기지를 정점으로 다소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나바론 하늘길은 추자 처사각에서 올라오는 올레18-1길과 만나서 추자등대로 간다. 어제 지나간 길이다. 우리는 삼거리에서 추자 처사각으로 내려간다.

해군 레이더기지(왼쪽)과 추자 처사각으로 내려가는 삼거리

추자 처사각에서 영흥리 벽화마을로 내려서는 길 옆의 밭에는 털머위의 사촌 격인 머구를 재배하고 있다. 이웃하여 덩이괭이밥이 분홍색 꽃을 소복이 달고 있고, 흰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있는 사상자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 뒤에는 추자올레를 완주하고 돌아가는 우리를 환송하듯 대나무가 도열하고 섰다.

덩이괭이밥, 사상자, 머구, 대나무가 도열하듯 서서 추자올레를 완주하고 돌아가는 우리를 환송한다.

영흥리 벽화마을을 지나 추자항 여객선 터미널로 간다. 아직 배 시간이 조금 남았다. 뱃머리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이로써 제주올레 27코스를 모두 걸었다. 21코스에 '마지막 여정'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실제 마무리는 추자도에서 한다. 개인적인 견해로 27개 코스 중 가장 힘든 코스이기도 하고, 일기(日氣)에 마음을 졸였던 일정이기도 하여 그 감흥은 더욱 벅차다. (2023. 5. 12)




운동 시간 1시간 7분(총 시간 1시간 58분)

걸은 거리 3.13km

걸음 수 6,622

소모 열량 466kcal

평균 속도 2.7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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