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순동 Oct 09. 2023

도심 속의 옛길, 칠성로를 걷다.

성안올레2코스, 탑동광장에서 관덕정으로

'2023 성안올레 걷기축제'가 9월 16일, 17일 이틀간 제주시 원도심 일대에서 펼쳐졌다.

성안올레 개장식

제주시와 제주올레는 지난해 개장한 성안올레 1코스에 이어 올해 2코스를 개장했다. 원도심을 걷는 성안올레 2코스는 (구)새마을금고에서 출발하여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6km이고,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양한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접하고 원도심의 향수를 느낄 수 있게 구성된 길이다.

산지천 북수구광장에서 열린 개장식이 열렸다. 강병삼 제주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성안 올레는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제주의 역사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길”이라며, “올해 2코스 개장으로 더 확장된 성안 올레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힐링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란다"라고 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가벼운 스트레칭 한다. 생각과 다르다. 아이들은 유연한 동작으로 잘 따라 하는데 나는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발목 몇 번 돌리고 사진 찍기에 열중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빗속에 강행한 행사인데, 다행히 공식행사가 시작되자  비가 그쳤다.


테이프 커팅과 기념촬영을 시작으로 '익숙한 길을 걷는 즐거움' 성안올레 걷기를 시작한다. 어제보다 참가 인원이 훨씬 많다. 우리는 선두 그룹을 따라간다.

올레는 수산물 산지 위판장으로 연결된다. 제주 국제공항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서부두 수산시장. 새벽이면 부두를 통해 들어온 싱싱한 생선을 경매하는 곳이다. 경매를 마친 은갈치, 쥐치, 옥돔, 한치 등 싱싱한 생선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팔딱 뛰는 생선처럼 활기가 넘치던 곳인데 요즘 일본의 핵오염수 방출로 걱정이 많다.

제주 서부두

"수산시장을 찾는 손님들은 '괜찮겠나'하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생 갈치보다 냉동 갈치를 사는 손님이 많아졌고요." 하는 상인의 표정이 어둡다.


점심때가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줄지어 늘어선 횟집은 활기를 잃은 분위기가 역력한다.

탑동 서부두 방파제

서부두 방파제로 올라선다. 웃비는 완전히 그쳤다. 방파제 위에 고인 빗물을 피해 조심스레 걷는다.

서부두 등대

방파제의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테트라포드가 노란 등대까지 쌓여 있다.

바다 경관을 해치는 다리 네 개 달린 콘크리트 구조물이 자연의 한 구성체로 느껴진다. 그렇게 흉해 보이지 않는다.

제주공항에서 연신 항공기가 날아오른다. 탑동광장에는 농구장, 족구장 등 체육시설이 있고, 제주해변공연장이 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방파제를 걷다가 라마다플라자 제주호텔을 끼고 한두기마을회관 앞에서 용화사로 들어선다.

용화사와 서자복

서자복. 제주의 복신 미륵은 사람의 수명과 행복을 관장하는 신이다. 미륵신, 자복신, 또는 자복미륵, 큰어른이라고도 불린다. 제주성 동, 서쪽에 각각 1기씩 있다. 서쪽 미륵을 '서자복', 동쪽 미륵을 '동자북'(제주 특별자치도 민속 문화재)이라고 한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석불 입상(신장 약 273cm) 서자복은 해륜사 옛 터에 들어선 용화사 경내에 서 있다. 불상이 토속적으로 변화하던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제작 연대는 전해지지 않는다.


1990년대 말까지 서자복을 보호하기 위한 용왕각이 있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용왕 신앙과 결합하여 어업의 안전과 풍어를 관장하는 신이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서자복은 돌림병을 막아주고,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면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복 신앙의 대상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용연 구름다리

용연에 도착한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한 한천이 제주시의 중심부를 관통하여 제주 북쪽 바다로 흘러든다. 한천 하구에 비를 몰고 오는 용이 살았다는 작은 연못, '용연'이 있다. 용연 계곡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에 올라선다.

용연

용연은 병풍을 두른 듯한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맑고 짙푸른 물을 담고 있어 취병담(翠屛潭)이라고도 한다. 오늘은 짙푸른 물이 아니라 용이 몰고 온 비로 흙탕물이다.

용연계곡 산책길

계곡을 따라 걷는다. 구실잣밤나무 둥치에 오색천과 실타래가 걸려 있다. 신당이다. 신당에 우유와 한라산 소주병이 놓여 있다. 계곡 옆 잔디밭에서 쉬어간다. 첫 번째 인증 스탬프를 찍고, 나누어준 떡으로 요기한다.

멘도롱블랑의 미니 뮤지컬 공연

멘도롱블랑의 미니 뮤지컬 공연이 펼쳐졌다. 공연 장소를 잘 못 잡은 것 같다. 9월 중순인데 아직 햇빛이 따갑다. 잔디밭에는 벌레가 많다. 환경오염이 안 됐다는 반증이긴 하지만 오래 앉아 있질 못한다. 애써 공연하는 메도롱블랑에게 미안하다.

무근성길

6,70년대를 묘사한 영화 세트장과 같은 동네를 지나서 골목길은 제주북초등학교로 이어진다.


11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제주북초등학교 안에 자리 잡은 김영수도서관. 1968년 이 학교 20회 동문인 재일 사업가 김영수 씨가 후배들을 위해 기증한 도서관이다.

김영수도서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사용하지 않는 창고와 관사를 이용하여 도서관을 넓혔다. 새롭게 단장한 김영수도서관은 학교 도서관이자 마을 도서관으로 학교와 마을 사이에 교감을 이루는 공간이다. 평일에는 방과 후 수업과 아이 돌봄 공간으로  활용하고, 주말에는 주민에게 개방한다.    

제주북초등학교

조선시대 왕명을 받들고 온 관리를 접대하던 객사대청이 있었던 영주관 터, 근대교육의 효시인 제주 최초의 학교 터, 제주 최초의 초등 교원 양성소 터 등의 빗돌과 "백 년의 배움터, 천년의 희망"이란 명제가 붙은 개교 100주년 기념 조형물이 세워진 북초등학교. 제주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북초등학교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본다.

제주 최초의 초등 교원 양성소 터 빗돌(왼쪽), 개교 100주년 기념 조형물(오른쪽)

1947년 3월 1일, 제주북공립국민학교에서 3.1절 기념집회가 열렸다. 기념식을 마친 도민들은 가두시위에 나섰다. 이날 경찰이 시위 군중을 향해 발포하는 소위 '제주 3.1절 발포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의 총격으로 시위를 구경하던 6명의 주민이 사망하였다. 사망자 중에 북초등학교 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 제주 4.3의 단초가 되었던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 대한 흔적은  교정에 남아 있지 않다.


올레길은 옛 제주 관아 담장을 따라 발포사건의 현장, 관덕정으로 간다.

관덕정

제주에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인 관덕정. 제주의 전통적 중심지인 칠성로가 인근에 있고, 제주도 행정의 중심인 제주목 관아가 있었던 곳이다.

풍물 밴드 이상의 공연,  ‘길 위에서 풍류를 즐기다'

성안올레를 걷는 올레꾼들은 관덕정 광장에서 한판 놀고 간다. 퍼포먼스와 풍물판이 결합하여 굿, 판소리로 풍류놀이를 벌인다. ‘길 위에서 풍류를 즐기다'를 주제로 풍물 밴드 이상의 현대적 멋을 입힌 전통 공연이 펼쳐졌다.

호남제일정에서의 망중한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풍물 밴드 이상의 정열적인 공연에 점차 빠져든다. 흥겨움에 어깨를 들썩인다. 밴드와 관객이 함께 논다. 우리는 사방이 훤히 트인 호남제일정 관덕정 마루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며 비에 젖고, 땀에 젖은 옷을 말린다.


도심으로 들어오니 색다른 볼거리가 나타난다. 스타즈호텔 제주로페로에 이색적인 조형물이 서 있다. 정원 앞의 대형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을 매만지는 듯한 여인과 여행 가방을 놓고 차를 기다리는 남자. 거울도 사람도 모두 조형물이다.

스타즈호텔 제주로페로 조형물

옛 제주대학병원 녹나무(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4호). 옛 제주대학병원이었던 '예술공간 이아'의 주차장에 녹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시내 중심가에 있으면서 비교적 보존이 잘 되었다고 자평하지만, 승용차에 둘러싸인 환경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도 있다.

옛 제주대학병원 녹나무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했던 오현(김정, 송인수, 정온, 김상현,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던 유교 교육기관이다.

귤림서원

조선 말기 매계 이한우가 감귤이 노랗게 익어가는 규림 주변의 풍경을 영주 10경 중 하나인 '귤림추색'으로 선정하였다. 제주 전역에 감귤을 재배하는 지금까지 '제주의 아름다운 경치' 중 하나로 '귤림추색'이 전해지고 있다.

귤림추색

제주성(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호)

제주 시내 중심지를 빙 둘러싸고 있던 옛 제주성은 탐라국 때부터 축성된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연대는 확실치 않다. 조선왕조 태종 11년(1411년)에 제주성을 보수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조선시대부터 관리가 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1920년대 후반 제주항을 개발하면서 성벽을 허물어 바다를 매립하는 자재로 사용하여 제주성의 흔적은 사라지고 이곳에 일부 남아 있다.

제주성과 제이각

제이각(制夷閣), 오랑캐를 무찌르기 위한 지휘소). 1599년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제주성 남문 동측 치성 위에 세운 누각이다. 매우 가파르고 험한 낭떠러지 위에 세워진 누각에 올라서면 성안과 제주 해안을 한눈에 살필 수 있어 장대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제이각 성벽을 따라 산지천으로 내려선다.

산지천을 따라 오현교 밑을 지나면 동문 재래 야시장을 만난다. 전복 주먹밥집과 흑돼지만두집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먹거리 골목이다.

동문시장

성안올레는 제주 칠성로 쇼핑거리로 연결된다. 쇼핑거리의 끝은 아침에 출발했던 산지천 공원 북수구광장이다.

성안에 돌로 만든 옛 터 7개소가 있다. 칠성대다. 북두칠성 별자리를 따라 대를 세우고 일토, 이토, 삼토로 지역을 나누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의 일도, 이도. 삼도동 지역이다.

칠성로 쇼핑거리

칠성대가 있다 하여 칠성골로 불리던 제주시의 옛 도심 칠성로. 지금도 옛 명성은 이어지고 있다. 도심 속의 옛길은 도시재생사업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2023. 9. 17)


매거진의 이전글 비속을 걷는 제주 원도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