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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8코스_염포에서 일산까지

울산구간 4

by 정순동


정갈한 염포산 길


성내 버스정류장에서 염포산을 오른다. 들머리는 채소밭이 계단식으로 이어진다. 밭과 밭 사이에 완두를 심어 놓았다. 완두 덩쿨은 울타리를 대신한다. 겹잎의 잎끝은 덩굴손이 되어 지주를 감고 오른다. 나비 모양의 흰 꽃이 피었다. 밭엔 고추, 대파, 잔 파, 호박, 상추가 자란다. 울타리 너머는 옥수수밭이다. 상추를 손질하던 농부는 인기척에 곁눈질을 한다.

고도가 점점 높아진다. 굴참나무, 벚나무, 사방오리가 우거진 숲은 하늘을 가린다. 종 모양의 흰 꽃을 단 때죽나무는 '겸손'하게 가지를 내민다. 때죽나무 꽃이 떨어져 산길을 하얗게 덮었다.


들머리의 급경사는 30분 정도 오르면 나타나는 샘터부터 수월해진다. 해파랑길은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피해 등고선 따라 우회하는 오른쪽 완만한 길을 선택한다.

때죽나무

임도를 만난다. 승용차가 교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다. 산사로 들어가는 길처럼 정갈하다. 빗자루 자국이 있는 잔자갈을 밟고 걷는다. 사각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상쾌하다. 단풍 든 것 같은 황록색 잎의 홍가시나무가 가로수처럼 임도 가장자리에 줄지어 섰다.

홍가시나무가 줄지어 선 임도

철탑 삼거리에 쉼터가 있다. 운동기구가 설치되었다. 훌라후프를 돌리는 아주머니, 정자에서 팔 굽혀 펴기를 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이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먹고 울산대교전망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전망대 바로 아래는 현대미포조선이다. 석유화학제품운반선, 중형 컨테이너 운반선, 자동차 운반선, LPG 운반선, 석유시추선, 해저 케이블 포설선 등 고부가 특수 선박을 제조한다.

전망대에서 본 미포조선

맞은편은 울산석유화학공단이고 장생포항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울산대교가 지나간다. 멀리 신불산, 문수산, 가지산, 고헌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울산신항, 온산공단,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가 자리 잡고 있다.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방어진항, 슬도, 툭 튀어나온 대왕암공원을 거쳐 일산해수욕장이 펼쳐진다. 오늘 우리가 걸을 길이 한눈에 보인다.

천내 봉수대

해발 120m인 봉화산 정상에 위치한 천내 봉수대를 지나간다. 울산만을 지키는 봉수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이다. 가리산에서 봉수를 받아 남목천(주전)으로 전했다고 한다. 초지 전체를 토끼풀이 점령하였다.



슬도의 매력에 빠지다


방어진항으로 들어간다. 남방파제와 북방파제 사이를 방어진 활어 센터와 수협, 방어진 위판장, 동진항이 둥글게 감싸고 있다. 어부 부부가 그물을 손보고 있다. 공동 어시장 앞 부둣가에는 비릿내가 난다. 생선을 말리고 있다.

방어진항

드라마 「욕망의 불꽃」, 「메이퀸」의 촬영지인 슬도. 방어진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이다. 아치형의 슬도교를 건너간다. 섬 주변에 널려 있는 왕 곰보 돌에 앉은 물새가 먹이를 쪼아 먹는다.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의 슬도는 노을과 등대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슬도의 매력에 빠지다.

'슬도 매력에 빠지다'라는 긴 이름의 천막 카페에 앉아 슬도를 바라본다.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만들었다는 조형물 <새끼 업은 고래>는 바다를 향해 튀어 오른다.


슬도에서 대왕암 가는 해변길은 명품 산책길이다. '계절이 주는 풍요'를 상징하는 갯무가 옅은 자주색과 흰색이 섞인 파스텔 톤의 꽃을 피우고 바람에 흔들린다. 깔때기 모양을 한 분홍색 갯메꽃이 자갈 해변을 덮고 있다.

대왕암공원 해변길

대왕암공원 초화단지를 지나간다. 핑크물리를 꽃 필 때를 기다린다. 유채밭에는 드레스 입은 신부가 웨딩 사진을 찍고 있다. '미인의 잠결'이라는 매력적인 꽃말을 지닌 해당화가 짙은 분홍색 꽃을 활짝 피운다.



천년 신비를 간직한 대왕암


소바위, 노애개안 해변, 고동섬, 털머위가 가득한 오토캠핑장을 지나간다. 솔잎 사이로 붉은 화강암 기암괴석이 드러난다. 천년 신비를 간직한 대왕암의 모습은 보는 장소에 따라 계속 바뀐다.

소나무 숲 사이로 드러난 대왕암

대왕암은 일출 명소이지 야경 명소다. 육지와 대왕암을 이어주는 대왕교에 불이 들어오면 승천하는 웅장한 용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제30대 문무왕은 경상북도 경주시 앞바다에 있는 수중릉에 안장되어 용으로 승화하여 동해를 지키게 된다. 왕비 역시 그 뒤를 따른다. 왕비의 넋도 용이 되어 물에 잠겨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후세 사람들은 등대산 끝 용추암 일대를 대왕암(대왕바위)이라고 부른다. 죽어서도 뜻을 함께 한 문무왕 부부의 사랑 이야기는 울림으로 남는다. 대왕암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대왕암

해파랑길을 벗어나 대왕암을 잠시 들렀다 간다.


대왕암에는 바람이 거세다. 파도가 기암절벽을 세차게 때린다. 수천 년 반복되는 풍파는 화강암 바위섬을 정교하게 깎아 조각 공원을 방불케 한다. 물보라가 일자 다양한 모양과 색깔을 띤 거대한 수석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기도 하고.

대왕암의 신비로운 모습

관광객은 난간에 서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한다. 줄지어 앉은 3기의 불상, 암벽에 새긴 듯한 성모마리아 성화, 엄금 엄금 기어 나오는 거북 머리, 하늘을 향해 모은 손. 바다를 향해 돌출한 바위섬의 신비한 모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카메라에 담는다.


다시 돌아 나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울기등대로 올라간다.

옛 울기등대(왼쪽), 새 등대(오른쪽)

울기등대. 동해안 최초의 등대다. 또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설치되었다. 불을 밝힌 등대로 대왕암공원의 울창한 송림 속에 설치되었다. 1906년 처음 불을 밝힌 옛 울기등대(등록문화재 제106호)는 기능이 정지되고 새 등대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공원 북쪽으로 이어지는 해안은 기암괴석이 계속된다. 일산만 노란 등대 옆의 바위섬(민섬)을 바라보는 넙디기의 할미바위가 비스듬히 서있다. 마치 갓 속에 쓰는 '탕건'같이 생긴 바위가 넙디기 앞을 지킨다. 탕건암이다.

넙디기의 할미바위(위), 탕건암(아래 왼쪽), 용굴(아래 오른쪽)

용굴. 옛날 청룡 한 마리가 살았다는 동굴에 바닷물이 드나든다. 이 청용이 오가는 뱃길을 어지럽히는 용심을 부렸다고 한다. 동해 용왕이 신통력을 부려 굴속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큰 돌로 입구를 막아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굴이다.

긴 출렁다리는 일방통행이다. 일산해수욕장에서 들어오는 사람만 건널 수 있다. 우리는 사진만 찍고 간다. 해파랑길 8코스는 일산해수욕장에서 마친다. 반달형 일산해수욕장은 진하해수욕장과 더불어 울산의 양대 해수욕장이다.

출렁다리(위), 일산해수욕장(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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