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구간 5
슬도, 대왕암공원, 일산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방어진 해양관광벨트는 고늘지구에서 미포국가산업단지와 만난다. 산업역사 문화거리 안내판이 우리의 걸음을 멈춰 세운다.
"방어진순환도로를 따라 고늘사거리에서 남목 안산사거리까지 이어지는 4.3km의 담장은 오랫동안 산업단지와 시가지의 경계 역할을 해왔습니다."
담쟁이덩굴과 덩굴장미로 덮인 현대중공업 담장에 설치된 산업역사 문화거리 안내판은 1972년부터 현재까지 동구 발전에 기여한 기업, 노동자, 주요 시설물에 대해 소개한다.
현대 울산조선소의 기공식이 1972년 3월 23일 동구 미포만에서 열린다. 전하동의 조용한 어촌 마을 해안이 매립되어 세계 1위 조선산업도시로 발전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1974년 대한민국 최초의 유조선 '애틀랜틱 배런호'를 건조하며 세계 조선시장에 진출했다.
'말뫼의 눈물'
2003년, HD현대중공업은 스웨덴 말뫼 코쿰스(Kockums) 조선소에서 골리앗 크레인(Gantry Crane)을 사들였다. 높이 128미터, 폭 165미터, 중량 7,560톤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코쿰스 크레인은 친환경 에코도시 말뫼의 자랑이었다.
스웨덴에서 3번째로 큰 항구도시 말뫼는 과거 세계적인 조선 업체 코쿰스를 중심을 크게 발전했지만 1980년대 조선업의 불황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한다. 코쿰스는 조선업을 접는다. 세계 1위의 상징이었던 골리앗 크레인(Gantry Crane)의 해체를 결정하고 현대중공업에 매각한다. 단돈 1달러에. 물론 막대한 해체 비용은 현대중공업이 부담하지만. 당시 스웨덴 국영방송은 "말뫼가 울었다"고 보도하며 조선업의 몰락을 슬퍼했다. 세계 조선산업의 중심이 북유럽에서 한국으로 옮겨진 것을 상징하는 이 일은 '말뫼의 눈물'로 알려졌다.
2023년을 기준으로 'HD 현대중공업'은 조선 엔진 부문 점유율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방어진순환도를 건넌다. 울산대학교병원, 현대예술공원, 현대백화점이 차례로 있다. 전하동이다. '현대'라는 명칭이 많은 것은 당연하지만, 전하와 함께 바드래문화관, 바드래공원, 바드래체육관 등 '바드래'라는 명칭이 유독 많이 보인다. 전하(田下)마을은 '밭 아랫마을'이라는 뜻이다. 옛날 염포산 기슭에 밭이 많았고, 그 아래 바닷가에 촌락이 이었다. 밭아래(전하)를 발음 나는 대로 표기하여 바드래다.
방어진순환도로 건너편 전하동은 대규모 주택단지다. 1983년 현대조선소 노동자들의 거주를 위해 5층 규모의 만세대 아파트가 들어선다. 사실은 1만 세대보다 작은 규모였지만 "사원들에게 1만 세대의 아파트를 지어주겠다"고 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을 반영해 그냥 '만세대 아파트'로 불렀다. 실제 이름은 일산아파트(현재는 재건축되어 e편한세상, 아이파크, 푸르지오)였다. 이어 학교, 병원, 상가, 백화점, 관공서 등이 들어서면서 조선산업도시 동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미포국가산업단지는 안산사거리에서 끝난다. 방어진순환도로는 직진하여 남목고개로 계속 이어진다. 이 길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시작한 길이다. 1987년 8월 노조 민주화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던 현대 계열 노동자와 가족 약 6만여 명은 남목고개를 넘어 울산종합운동장까지 16킬로미터를 행진했다. 그 대열은 무려 4킬로미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길에서 시작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우리나라 노동조합 운동의 보편화를 이끌었다.
도심 곳곳에 21대 대선후보들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각 당 후보들의 유세차가 지나간다. 현재 전하동 지역에는 3만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고 남목동으로 시가지는 넓혀졌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대기업에 있고 전국 각지 출신의 주민들이 함께 사는 지역이다. 영남이지만 표심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는 곳이라 후보들이 표심 잡기에 신경을 쓰는 지역이다.
남목마성
우리는 한국무브넥스 사이를 잠시 걷다가 동부현대패밀리아파트를 거쳐 봉대산을 오른다. 들머리에 남목체육소공원이 있다. 큰금계국 사이에 말이 달린다. 조형물이다.
소공원을 오른쪽으로 끼고 봉대산을 오른다. 바위산이다. 천연 바위 계단길이 계속된다. 고도가 높아지니 소나무 사이로 주전 앞바다가 보였다 사라진다.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재잘거리며 따라온다. 아이가 오르긴 힘든 길인데 힘들어하지 않는다.
이 일대의 행정동은 남목동(南牧洞)이다. 조선 시대 감목관(監牧官)을 파견하여 왕실의 말을 기르던 국마장이 있었던 곳. 원래 지명은 '남목(南木)'은 목장이 설치된 후 '남목(南牧)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전한다. 말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장 둘레에 돌로 담장을 남목마성이라 했다.
임도가 지나가는 삼거리에 남목관비(碑)가 서 있다. 놀이터와 쉼터도 마련되어 있다. 오른쪽 마성으로 올라가는 오솔길까지 실제는 사거리다. 돌무더기처럼 보이는 것이 마성의 흔적이다. 성 같은 돌담을 상상하다 초라한 흔적에 실망한다.
주전봉수대
해파랑길은 남목역사누리길과 함께 간다. 남목마성 전망대, 주전봉수대, 해수관음보살, 망양대, 주전가족휴양지로 이어진다.
봉호사 앞 삼거리를 만난다. 봉호사 뒤에 돌로 둥글게 쌓은 연대가 남아 있다. 지름 5미터, 높이 6미터의 주전봉수대는 천내에서 봉수를 받아 유포로 전했다고 한다. 봉호사 터는 봉수대의 부속 건물인 봉대사(烽臺舍)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해수관음보살이 동해를 바라보다"
주전봉수대 앞의 계단을 내려선다. 소원을 이루게 해 준다는 해수관음보살이 인자한 모습으로 바다를 내려다본다.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왼쪽은 주전항이다. 오른쪽은 멀리 대왕암에서 가까이 현대중공업이 한눈에 들어온다. '말뫼의 눈물'로 화제가 된 골리앗 크레인이 어디 있는지 살펴보지만 여러 기의 크레인 속에 섞여 확인이 안 된다.
이제부터 주전해변까지는 내리막이다. 호젓한 오솔길과 포장도로가 번갈아 나타난다. 어느덧 '쏴~차르르'하는 파도에 몽돌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와 시원한 바닷바람이 우리를 반긴다. 어촌 부부가 거센 파도에 밀려오는 미역을 건져 올린다.
바다를 돌로 빙 둘러막아놓은 어촌체험장. 아이들은 맨손으로 소라와 고동을 잡는다. 유료 체험장이다.
빨간 등탑이 유난히 눈에 띄는 주전항을 지나면 몽돌해변이다.
"바다가 들린다. 주전 몽돌해변. 부딪치며 단단해지고, 맞닿으며 둥글어진 몽돌 자갈은 바다가 지나온 오랜 시간의 얼굴입니다. 푸른 파도가 건네는 맑은 소리는 덤이랍니다."
몽돌이 깔린 맑고 깨끗한 해변과 캠프장은 선돌바위, 노랑바위, 가는골바위, 갈막덤바위, 굴밑바위를 지나 어물항에 이르기까지 이어진다.
금천교를 지나 용바위길을 따라간다. 용바위와 넘섬을 연결한 긴 다리가 바다로 뻗어 있다. 당사해양낚시공원이다. 다리에 앉아 낚시한다. 일 인당 만 원인 유료 낚시터다. 그냥 돌아보고 나올 수도 있다. 입장료는 천 원이다. 다리 중간쯤 가면 유리 다리다.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용바위의 용 조형물은 하늘을 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해파랑길은 편한 해안 길을 두고 산으로 오른다. 강동누리길을 가고 싶은 갈등이 생기지만 묵묵히 우가산 까치봉을 넘는다.
제천 장어마을에서 다시 강동누리길을 만나 정자천까지 함께 간다. 판지항을 지난다. 카페, 펜션, 젓갈상회, 구이 단지가 줄지어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모자가 날아간다. 더욱 거센 파도가 몰아친다. 곽암(藿巖, 미역이 붙어서 자라는 자연 바위)이 나타났다가 파도에 잠긴다. 판지마을 바닷속 곽암은 자연산 미역 채취장으로 울산시 자연유산이다.
정자천교를 건너 정자항 들머리에서 일정을 마친다. 9코스는 19킬로미터에 7시간이 소요되고, 산을 두 개나 넘는 다소 힘든 여정이었다. 당사항 정도에서 마쳤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10코스가 상대적으로 짧고 해변을 따라가는 단조로운 코스라서 더욱 아쉽다. 정자항의 명성이 시종점을 정하는 기준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