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구간 1
정자동. 팽나무가 숲을 이루어 정자 역할을 하는 마을이라 정자동(亭子洞)이다. 어수선한 정자수리조선소 터를 지나면서 정자항이 시작된다.
대게 직판장, ○○대게, 정자활어직판장, ○○횟집, ○○초장집 등 정자대게거리가 이어진다. 대게는 영덕인데 정자에 웬 대게거리인가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울산 연근해는 가가미 특산지다. 가자미 그물에 간혹 대게가 잡히곤 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동해안의 대게 서식지를 조사한 결과, 울산 연근해 해상이 대게 서식지임을 확인하였다. 이후 울산 연근해의 대게잡이가 본격화되었다.
정자항에 대게 거리가 생겨났다.
정자항 대게거리는 대부분 횟집과 초장집을 겸하고 있다. 연근해에서 조업한 대게와 제철의 신선한 회를 판매한다. 방파제 들머리 공터에는 말린 가자미를 파는 난전이 열린다.
산하교를 건넌다. 산하동이다. ‘산하’는 산 아래를 뜻한다. 무룡산 아래에 마을, 산하동은 산하와 화암 마을이 합쳐진 울산 북구의 법정동이다. 대게거리는 점점 카페 거리로 바뀐다. 정자몽돌해변은 계속 이어진다. 아름답고 긴 강동정자 몽돌해변을 바라보는 카페와 호텔이 이어진다.
몽돌해변 끝자락에서부터 화암길을 따라 강동화암주상절리가 시작된다. 현무암, 안산암, 유문암과 같은 화산암류가 지표면에서 갑자기 식어 냉각 절리가 생겼다. 절리는 육각형에서 삼각형까지 다양한 모양을 이룬다. 수직 또는 수평 방향으로 겹쳐진 기둥 모양으로 나타난다.
강동화암주상절리는 약 2000만 년 전인 신생대 제3기에 분출한 현무암질 용암이 냉각되면서 부피가 줄어들어 생성된 것이다. 해안을 따라 200m에 걸쳐 펼쳐져 있다. 주상절리가 해변에 누워 있다. 쌓은 목재 더미를 연상케 하는 암괴는 세찬 바람과 파도에 맞선다. 화암마을은 횡단면이 꽃처럼 아름다운 주상절리가 펼쳐진 갯마을이다. ‘화암(花岩)’이라는 마을 이름은 주상절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명천을 건넌다. ‘신명(新明)’은 ‘새로운 밝은 마을’이란 뜻을 지닌 신명동이다. 신명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계속 강동동이다.
신명항 굼바우방파제 들머리를 지난다. 우뚝 솟은 바위에 척박한 환경을 딛고 소나무가 자란다. 선돌바위다. 그 꼭대기에 마을 소식을 알리는 두 개의 스피커가 달려 있다. 하나는 오른쪽, 다른 하나는 왼쪽으로 향한다.
마을 뒷산 지경골에서 흘러내리는 개천이 있다. 이 개천이 마을의 경계다. 오른쪽은 울산의 북쪽 마지막 마을 신명, 왼쪽은 경주의 남쪽 마지막 마을 지경이다.
두 마을 해변은 형세가 닮았다. 개천은 복개되었고 경계가 되는 다른 지형지물도 없다. 한마을처럼 보인다. 실제로 여러 차례 울산 북구 신명동과 경주시 양남면 수렴리 지경마을은 합쳤다 떨어졌다를 거듭했다. 또 지경마을은 양남면 수렴리의 4개 마을 중, 유독 홀로 떨어져 있다.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오래전부터 신명과 지경, 두 마을은 물도, 전기도 나누어 쓰며 생활 영역을 함께 했다.
아무튼 모호한 경계를 넘어 경주로 들어선다
지질시대에는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곶이거나 섬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지경 앞바다의 기묘한 바위섬들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풍파에 깎여 나가고 강한 부분만 남은 것이다. 높은 파도와 바위섬, 그 위의 소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 아름답다.
해변길은 지경리해수욕장을 끝으로 막힌다. 붉은 등대가 서 있는 방파제 들머리에서 대나무 숲 사이의 계단을 오른다. 31번 국도를 만나 잠시 함께 가다가 해담은호텔에서 관성솔밭해변으로 내려간다.
관성솔밭해변은 몽돌과 모래가 반반인 백사장이 소나무 숲과 나란히 펼쳐진다. 깔끔하게 꾸며진 해수욕장이다. 해변에 심은 놓은 야자수와 야자수 건초처럼 보이는 재료로 만든 그늘막은 열대 휴양지를 떠오르게 한다. 그늘막 아래는 대리석 벤치를 준비해 놓았다. 야영하는 사람들이 그늘막과 벤치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쉼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수렴리 당산나무
수렴항을 지나간다.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병의 병영을 두었던 곳이다. 포구에는 단층 횟집이 연이어 나타난다. 낡은 횟집의 옆마당에 서 있는 예사롭지 않은 고목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수관이 아름다운 팽나무 몸통에 새끼줄로 금줄을 두르고 마른 명태를 매달아 놓았다. 할매 당산나무라고 한다. 할배 당산나무도 있다는데 확인은 못했다.
해파랑길 10코스의 하이라이트는 하서항에서 읍천항까지의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다.
길의 시작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이 서 있다.
주상절리(柱狀節理)
주상은 '기둥'을, 절리는 '암석의 갈라진 틈 때문에 나란히 생긴 결'을 말한다. 마그마(땅속 깊은 곳에 있던 1000°C 이상의 뜨거운 반액체 용암)가 지상으로 분출하여 차가운 지표면이나 공기를 만나면 빠르게 냉각된다. 빠르게 냉각하는 용암은 빠르게 수축한다. 용암의 표면은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이 오각형, 육각형 모양의 틈(절리)이 생긴다. 수직 방향으로 연장되어 발달하면 기둥 모양의 틈이 생긴다. 이를 주상절리라 한다.
기울어진주상절리
누워있는주상절리
위로솟은주상절리
부채꼴주상절리
양남주상절리군은 신생대 말기에 형성된 현무암질 용암이다. 기울어진주상절리, 누워있는주상절리, 위로솟은주상절리, 부채꼴주상절리가 차례로 펼쳐진다. 다양하고 독특한 모양의 주상절리가 에메랄드빛 바다, 소나무, 들꽃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주상절리 조망 타워가 있다. 주상절리를 제대로 관찰하려면 조망 타워에 올라 해안을 조망하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서 봐야 한다. 탐방로를 따라가며 자연이 만든 정교한 조각품을 감상한다.
위로솟은주상절리에 멋진 모양의 소나무가 자란다. 지나가던 길손이 바위 위에 돌을 올려놓았다. 들꽃도 함께 한다. 거대한 자연의 힘이 설치 미술품을 만든다.
해안단구 너머로 쏟아지는 석양,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 세찬 바람, 파도에 씻기며 쌓인 자갈 등 해안 전체가 작품이다. 탐방자는 감상하기보다는 체험하게 된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다.
지금 걷고 있는 언덕 위의 길은 한때 파도가 철석이던 해변이었다. 지반이 솟아올라 계단 모양의 해안단구가 생겼다. 오랜 세월 동안 속살이 깎이면서 노출된 자갈 퇴적층을 본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구의 역동적인 모습을 잠시나마 느낀다.
출렁다리를 건넌다. 그림이 있는 마을, 읍천항으로 들어선다. '바닷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행복', '읍천항 숨은 그림 찾기', '우리의 청춘은 푸른 잎사귀처럼 푸르다'. 벽화가 자칫 칙칙해 보일 수 있는 시골마을의 분위기를 환하게 바꾸어 놓는다.
나아해변에는 석탈해를 소개하는 조형물들이 늘어서 있다. 탈해왕은 철기를 최대한 활용해 태평성대를 구가한 인물이다.
신라와 아기 탈해의 첫 만남에 대한 설화는 대충 이렇다.
신라 남해왕 때인 기원전 5년 어느 날, 배 한 척이 아진포(阿珍浦)에 도착한다. 까치가 요란하게 울었다. 물질하던 아진의선 할멈이 배 안의 궤에서 어린아이와 일곱 가지 보물을 발견한다. 아진의선이 데려다 키운 아이가 훗날 신라 4대 석탈해왕이 된다.
거리를 두고 두 담벼락에 걸린 각각의 이색적인 펼침막이 눈길을 끈다.
하나는 한 할머니의 사진과 함께 "○○○ 할머니 백세 생일 축하합니다. _월성원전"이라고 쓰인 펼침막이다. 다른 하나는 불끈 쥔 주먹과 함께 "해상 풍력발전 결사반대"라고 쓰인 펼침막이다.
"아. 월성원전이 가까워졌구나."
바다 너머로 고개를 돌리니 원자력발전소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