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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Sep 18. 2022

결혼 40주년 기념 여행

단양

결혼 40주년이다. 참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다. 온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시작한 결혼 생활 40년. 살면서 해직의 아픔과 건강에 대한 심각한 고통도 있었지만 힘겨운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아이들도 건강하게 성장하여 사회의 일원으로 제 몫을 다 하고 있다. 손녀가 자라는 모습도 하루가 다르다.


층층시하에 동생들까지 함께 살던 대가족이라 결혼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 가족들의 눈치도 보이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쑥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흔한 꽃다발 하나 사서 들고 온 적이 없었다. 그러다 이것이 일상화되었다. 결혼한 날짜도 잊어버려서 딴 사람과 숙직을 바꾼 일도 있었다. 아내는 왜 섭섭하지 않았겠냐만 겉으로는 크게 표를 내지 않았다. 해가 지나면 또 잊어버리는 결혼기념일을 '9.11 테러'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9.11 다음날이라고.


참 무심하게 살아온 세월이다. 나는 이제야 결혼 기념 여행을 계획한다. 공자는 50이 지천명이라 했는데 일흔이 넘고서야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는가 보다.


여행이란 것이 그렇다. 기분 좋게 출발하지만 다니다 보면 싸우기 일쑤다. 여기 가자, 저기 가자. 이거 먹자, 저거 먹자. 사소한 일로 다툰다. 거기다가 이젠 나이가 니 머릿속의 생각이 행동을 앞서간다. 말이 두서없어 뒤죽박죽되어 눈치로 이해하다 보면 짜증이 난다. 모처럼 잡은 여행인데 이번에는 계획을 꼼꼼히 세워 불편한 일이 없도록 하련다.


아내가 평창에 숙소를 예약한다. 주변에선 1일 숙박료 150만 원의 서귀포 포도호텔을 권하는 사람있었다. 재일 한국인 이타미 준이 설계한 아름다운 포도호텔은 우리에게는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5일간의 여행 일정표를 작성한다. '강 따라가는 길'을 테마로 잡는다. 메밀꽃, 적멸보궁, 단종애사가 소 주제다. 나의 여행 계획서를 보고 아내는 흡족해한다.




집을 나서는데 짐이 장난이 아니다. 여행 가방 3개, 음식물이 든 아이스 백 3개, 취사도구 꾸러미, 워터픽, 괘종시계까지 아예 이삿짐이다. 나는 불평을 한다. 아직은 코로나가 완전히 간 게 아니라 외식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살짝 꺼내다 거두어들인다. 결혼 40주년 여행이니까. 아내도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한 건데'라며 볼멘소리를 하려다 참는 눈치다. 여행 일정표를 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단양 IC에서 내려서니 산세가 다르다. 오른쪽으로 소백산 줄기인 실금산과 왼쪽으로 월악산 줄기인 덕절산 사이로 죽령천이 흐른다. 대강면사무소 앞에서 남조천과 합류한 죽령천은 단양역 앞 시루섬 근처에서 남한강이 되어 충주호로 들어간다.


대강면이란 지명이 눈길을 끈다. 매사에 일 처리를  대강 대강하라는 것인가. 앞으로 닥칠 일을 예고한 듯하다. 지나고 보니. 아무튼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을 따라 단양역, 단양군청이 있는 시가지를 지나간다. 석회석 광산이 있고 고수동굴로 유명한 곳이다.  


복잡한 단양 읍내를 벗어나 다리를 건너고 강을 따라가길 반복한다. 가곡교를 지나니 플라타너스 길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가대교까지 5km의 강변 둔치는 고운골 갈대밭과 유원지, 생태공원이 이어진다.   

남한강. 가곡면 사평리의 가곡교가 보인다.

군간교를 건너 사이곡천으로 들어선다.

별방초등학교 오른쪽 지류를 거슬러 올라간다. 내비게이션은 좁은 농로를 가리킨다. 무언가 이상하다. 5대 적멸보궁의 하나가 있는 정암사 가는 길이 너무 허술하다. 주변을 몇 바퀴 돌며 길을 찾아보다가 다시 그 갈림길로 돌아온다. 안내판이 있다. 단양 정암사다. 계획 세우면서 지도 검색을 잘 못했다. 정선 정암사까지는 66km, 1시간 반은 족히 더 걸리는 거리다. 또 정암사에서 아우라지, 변방치를 거쳐 숙소까지는 3시간.


급히 서둘러 정암사 적멸보궁으로 달려가다가 일정을 수정한다. 강을 따라 시간대별로 촘촘히 마련한 계획이 어그러진다. 출발하면서 내비게이션에 '정암사 적멸보궁'이라 쳤더라면 이런 실수가 없었을 것을. '대강'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2022.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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