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는 쓰고 버리는 것이다

자아/정체성에 대한 생각

by 새벽 시선

자아는 쓰고 버리는 것이다.

권투를 하다 보면 손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글러브에 정이 든다.

사용할수록 손에 맞춰지고, 가죽은 점점 내 손의 형태를 닮아간다.

수많은 훈련과 전투를 함께하며, 어느 순간엔 손과 글러브의 불편함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함께한 글러브도 결국 교체된다.

참을 수 없는 땀 냄새가 배고, 가죽이 찢어지고, 쿠션이 터지면 더는 쓸 수 없다.

정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사용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자아를 존중하라 말하고, 사랑하라 말한다.

어쩌면 내가 말하는 자아와는 다른 개념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 자아는 신성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자아는 글러브와 같다.

쓸 만큼 쓰고, 역할을 다하면 교체하는 도구다.

필요한 순간에 나를 보호하고, 상황에 맞게 기능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권투의 연차가 쌓일수록 글러브는 더 손에 잘 맞는 것으로 바뀐다.

더 오래 버티고, 더 정확한 보호와 타격감을 주는 것으로 교체된다.

자아도 마찬가지다.

상황과 책임이 바뀌면, 그에 맞는 더 나은 자아로 갈아입는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자아를 신성화하지 않는다.


버리지 못하는 자아는 보호가 아니라 냄새나는 족쇄가 된다.

자아보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어떤 자아를 쓰든, 버리든, 끝내 남아 있는 나라는 지속성.

그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전부이다.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경을 보는 것도 중요했다.


들지도 못하는 무게로 운동을 하면 탈이 나듯이, 나도 내가 짊어질 수 없는 책임은 내려두기로 했다.


1. 책임에 대한 질문
“모든 결과가 내 잘못이라는 전제에서 이제는 한 발 물러나도 되지 않을까.”
이만큼은 내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이 원인만큼은 내 책임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너무 자주, 통제할 수 없는 결과까지 내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계속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선언을 하기로 했다.


​2. 자아에 대한 선언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자아를 신성화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 자아를 선택하고 교체한다.
자아를 선택한다는 건 삶의 결과 앞에서 비겁하게 남 탓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내 ‘존재’와 내 ‘상태’를 분리하겠다는 선언이다.


​나는 자아를 부정하지 않았다. 자아에 매달리지도 않았다. 결과를 운명이나 타인에게 넘기지도 않았다. 다만, 삭제할 자아와 나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기로 했다.


​3. 정체성의 정의: 지속성에 대하여
그렇다면 진짜 나는 무엇인가?
정체성은 그 모든 자아를 품었던, 남아 있는 ‘지속성’이다.


정체성을 감정이나 기분 위에 두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버전의 내가 실패해도, “나 자체”는 실패하지 않는다.


​4.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간을 기계에 비유하자면, 자아는 ‘소프트웨어’이고 존재는 ‘하드웨어’다.


소프트웨어는 바이러스에 걸릴 수도 있으며, 구버전이 되어 폐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바뀐다고 하드웨어가 바뀌지는 않는다.


​당신의 하드웨어는 어떤가. 자아(소프트웨어)의 오류에 흔들리지 않는 하드웨어가 된다면, 그것은 안정된 금속의 자체에 가까워진다. 들뜨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하지만 분명하게 고체화된 상태.


​5. 한계의 인정과 선택
우리는 시간에 따라 낡아가는 기계처럼, 자주 써주고 충분히 기름칠해줘야 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녹슬고 고장 나기 마련이다. 모든 고장을 내가 고칠 수는 없다. 기계가 정비사를 비판할 수 없듯, 창조자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도 없다.


​그래도 나는 고장을 방치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관리한다. 나는 나에게 맞는 소프트웨어를 받아들이기로 ‘선택’한다. 그저 돌리는 대로 돌아가고, 소프트웨어를 심어주면 알아서 동작한다. 그 적절한 소프트웨어의 교체가 기계의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다.


​6. 결론: 무너지지 않는 평화


자아라는 개념에서 자유로워진 나는 어떤 날도 평화울 것이다.
기쁜 날이어서 평화로운 게 아니다.

잘된 날이어서 평화로운 게 아니다.


“무너질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에” 평화롭다.


이 평화는 들뜸이 없다, 그래서 오래간다.


​이 글을 읽는 지금이 그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나에겐 글을 적는 지금이 하드웨어의 정비 시간이다.


그래서 난 자유롭다.


그저 묵묵히 나라는 하드웨어를 기름칠하고, 어떤 사유로 더 나은 버전으로 업데이트되기를 다.


나라는 자아와 하드웨어에는 책임이 없다.

그만큼은 안 해도 된다.


정리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 나로 살려면, 숨 쉴 틈은 필요했다.

비가 그치고 혼란스러운 구름과 하늘 사이, 틈을 벌려놓는 무지개가 있듯이.


할 수 있는 한,
기준을 잡고 기록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