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터널을 지나며.
새벽 퇴근길.
운전대를 잡은 나의 시선에 거대한 물음표가 꽂힌다.
나의 새벽은 한 번도 나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은 적이 없다.
공항 소방대의 격일 24시간 근무.
하루는 공항에서, 하루는 집에서 생활하는 이른바 '퐁당퐁당' 근무는 사막에 얼음을 던져 놓은 것처럼 시간을 빠르게 녹여버린다.
퇴근길은 매번 군대에서 외박을 나오는 기분과 닮았다.
생활에 적응될수록 시간은 가속도가 붙고, 현실 감각은 조금씩 무너진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나의 20대 후반은 이 질문을 반복하며 벌써 반년이 흘러버렸다.
그리고 오늘도, 운전대를 꽉 쥔 내 손 위로 현실과 새벽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돈을 모아보지도 못했고, 이제는 모을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여자친구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고, 멀게만 느껴지던 결혼은 점차 현실의 청구서로 다가온다.
동생은 아직 방향을 잡지 못했고, 부모님은 수입이 없으시다.
노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우리 집은 '현실 무시'와 '좌절'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대로라면 몇 년 안에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할 가장(家長)으로 서 있다.
월 급여 200만 원 초반.
하는 일이 아주 어렵지는 않다.
내 주제에 딱 맞는 월급이다.
자조가 아니다.
내 삶은 바뀔 수 있을까?
내가 저들을 책임질 만큼 여유가 생길 수 있을까?
내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데, 가이드라인도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모두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시간, 나는 하루의 끝에서 매번 같은 질문 한다.
긴 근무를 마친 몸은 날이 갈수록 뻣뻣하고 무거워지는데, 마음은 그만큼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간다.
근무 끝 무렵 서 있었던 활주로 근처 흡연장이 떠오른다.
입사 초엔 이곳의 뻥 뚫린 하늘이 그렇게 좋았는데, 지금은 검은 구름이 내 속을 채우고 있다.
세상은 푸르스름한 여명으로 밝아오는데, 나는 더 깊은 어둠을 느낀다.
내 주변의 사랑이 사랑을 낳았던 그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늘 그랬듯, 사랑의 크기만큼 불안은 커지고 있다.
그 불안은 나의 무지와 '특별해지려던 시도'가 현실이 더해져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내가 좋아하던 수많은 위인들, 힘든 환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나에게서 흩어졌다.
나를 욕해봐야 해결되는 건 없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는 멈춘 지 꽤 되었다.
대신 나는 지금부터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러려고 이 글을 적었으니까.
사람이 미래를 확신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에겐 통장의 잔고도, 확실한 비전도 없다.
지금의 삶은 내 주제에 딱 맞다는 걸 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주제에 맞지 않게 소중한 이들이 너무 많다.
그들을 책임져야 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믿는 미래의 내가 지금과는 다를 거라는 생각.
그 믿음 자체가 이제 나에게 남은 유일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공항의 불빛이 백미러 뒤로 멀어진다.
차 밖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질문들이 두서없이 길게 이어진다.
하늘은 검정에서 조금씩 주황빛으로 변하고 있다.
그 어둠과 빛의 경계 속에서,
나는 여전히 물음표를 품은 채 액셀을 밟는다.
이 막막함 또한 내 인생의 거대한 플롯(Plot) 임을 믿으며.
그래서 나는 주제넘게 상상해 본다.
미래의 나로서 조수석에 앉아, 지금 운전대를 잡은 나에게 건네는 위로를.
내가 동생에게 하듯, 주먹으로 어깨를 툭 치며.
지금 막막해하는 것도 잘하고 있는 거야.
그게 네 인생의 큰 플롯 중 하나라고.
이 막막함 또한, 분명 나의 플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