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톤과 향기를 이식한다.

시선이 내 안으로 향한다.

by 새벽 시선

새벽을 내 방에서, 내 마음으로 꽉 채워 옮겨본다.

출근하기 전, 이 조용하고 투명한 시공간을 내면 깊숙이 이식하는 작업이다.

나는 이것을 '새벽 톤(Dawn Tone)'이라 부르기로 했다.


​현관문을 나서며 출근길에 오른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더라도, 내 안에서는 새벽과 같은 향기가 나야 한다.

말수가 줄어들고, 외부 소음에 대한 반응이 한 박자 늦어진다.


남들 눈엔 지루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속은 완벽한 새벽이 된다.

외부의 소란이 차단된 곳. 오직 나만 존재하는 시공간.

​나는 그곳에서 나를 지킨다.

나만의 '정상(Normalcy)'을 유지하고 다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공항 소방대.

아무도 없는 차고지에서 붉은 거인들을 만난다.

내 담당 차량이 아니더라도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계를 켜고 만져본다.


나는 요즘 구석이 좋다.

눈에 띄지 않는 이 공간만큼은 새벽에 가깝기에.

새벽 시선은 구석에서 나로 향한다.

차가운 바닥에 매트를 깔고, 굳어진 몸을 풀어내며 기름칠을 한다.


​활주로 근처 흡연장.

조용히 차가운 공기와 하늘을 느끼며, 몸 안의 검은 구름을 뱉어낸다.


​그리고 다시,

퇴근 후 새벽이 지난 나의 방.

덤벨을 들어 가볍게 몸을 데우고, 잠깐 눈을 붙여 의식적으로 회복을 바라본다.

비번 날의 새벽부터 ㅡ 근무날 저녁까지 이어지는 작업.

새벽 톤을 입는 작업은 끝나지 않는다.

점심시간 이후부터는 더 이상 외부의 소리를 원하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건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외톨이가 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외부의 자극과 사건 속에서도, 내 몸과 마음이 '새벽인 상태'로 세상을 맞이하겠다는 의지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며, 지금의 자아를 해체하고, 조립하고, 정비한다.

지금 내 자아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 어떤 착각이 끼어들었는지 더듬어 본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우울함과 부끄러움,

좌절이 찾아오는 작업이다.

첫맛이 쓰기도 하고, 때로는 매운맛이 나기도 한다.

매일매일 다르다.


지루하기 짝이 없고, 정신적으로 힘을 많이 소모하는 치열한 '자가 정비'의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지켜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때, 비로소 새로운 내가 탄생하기 직전임을 느끼기에.

나는 나 자체를 값비싼 기계이자, 다루기 까다로운 예술품처럼 대한다.


​이런 태도를 '사회 속의 나'에서도 지속하려 한다.

나라는 존재를 관찰자로서 지켜보고 음미하는 것.


나에 대해서 까먹는 것이 없다.

나의 아주 미세한 변화에 예민해진다.


​외부의 손길이 아닌, 스스로의 해체와 조립이 반복되어

매일이 새로운 날이며, 새로운 내가 된다.

​그리고 이건 성공도, 실패도 아니다.

"지속성(Sustainabilit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