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전문적으로 짐을 나른다.

태도에 관한 기록

by 새벽 시선
나는 공항 속 소방대에 속해 있다


내가 일하는 곳은 공항의 사설 소방대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공항 관계자의 신고나 건물 감지기의 작동으로 출동한다.


현재 나는 항공기 화재 대처 차량 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국가 공무원 소방대가 아니기에, 지원 요청이 없는 한 공항 바깥으로 나가지는 않는다.


이곳에서 나는 틈틈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운동하고, 미래를 계획한다.


가끔은 출근이 정말 하기 싫어질 때도 있다.

잠이 많은 나에게 이른 새벽 출근은 여전히 고단하다.

24시간 동안 사회와 단절되니 답답할 때도 있다.


오후, 소방서 차고지.

차고지에 서 있다 보면

때로는 고대 사원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커피 한 잔을 타서 향초대신 향을 내본다.

백색소음을 뚫고 내려앉은 고요함.

컵을 들고 서성이는 나를 잠시 관찰해 본다.


주변을 둘러보니,

붉고 초록한 거대한 기계들이 숨을 죽인 채 도열해 있다.

마치 거인들이 잠들어 있는 동굴 같다.


나는 그 정적을 틈타 물탱크차에 올랐다.

운전원 교육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제대로 손대본 적 없는 차량이다.

내가 운용하지 않는 장비였기에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소방관에게 장비는 훈련된 신체의 연장 같은 것 아닐까.

위급한 순간에 손발처럼 움직이게 하려면

비록 지금 내 것이 아니더라도 차가운 금속에 시간을 들여야 했다.


높은 발 받침대를 딛고 거인의 등에 올라탔다.

문을 닫자 ‘터억 하는 소리와 함께 바깥의 소음이 단절됐다.

침묵 속에서 핸들을 잡았다.

꺼진 계기판, 수많은 버튼과 레버들.

이 고요한 기계와 처음으로 완전한 독대를 하는 순간이었다.


역할이 제각각인 스위치들이 여전히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비상 출동 시 켜야 하는 스위치를 하나씩 눌러본다.

불이 들어오는 걸 확인하며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때 낯선 버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 버튼은 뭐지?’


처음 보는 스위치였다.

아니면, 나의 분명한 한계인

낮은 기억 저장 능력이 놓친 파편일지도 모른다.

일단 눌러보면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가벼운 ‘딸깍’ 소리.

손끝에 남긴 감칠맛.

그러나 돌아온 출력은 예상밖이었다.


날카로운 고주파음이 차고지를 찢었다.

단순한 경고음이 아니었다.

잠자던 거인의 코털을 건드린 것처럼

기계는 악을 쓰며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그대로 멈췄다.

‘어? 어? 이거 어떻게 끄지?’

당황한 손이 허공을 헤맨다.

그 3초가 3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대기실 문이 터지듯 열리고 선배들이 뛰쳐나왔다.

출동 벨도 울리지 않았는데 차고지에서 비명이 터졌으니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운전석에 앉아 식은땀을 흘리는 내 모습은

영락없는 고장 난 신병이 되어 버렸다.


소음의 원인이

화재도, 장비 고장도 아닌 막내 운전원의 ‘호기심 버튼’ 임이 밝혀지자 차고지의 공기는 빠르게 풀렸다.


조장 선배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많이 궁금했어요?”

그 말에 굳어 있던 어깨가 내려갔다.

등 뒤로 뜨거운 용암이 흘렀다.

민망함은 온전히 내 몫이다.


하지만 그 순간, 이 일이

왜 이렇게 반복되고, 왜 이렇게 지루하고,

왜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지를

알 것 같았다.


세상사람들은 지루한 시간을 서로를 위해 나누고 있다


일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드라마틱하지 않다.

진짜로 화재가 나서 불을 꺼야 할 출동도 거의 없고,

그렇기에 박수도 없고, 성과라고 부를 만한 장면도 없다.


나는 쉽게

“내 일이 아니잖아”,

지금 당장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시키면 하지 뭐”라는 말 뒤에 몸을 숨겨왔었다.


진급하기 전,

최근까지도 그래왔었다.


항상 어떤 것이던,

소극적임을 합리화하며 내 책임의 경계를 그어왔다.


하지만

나와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 위해서

누군가는 이 지루한 하루를 전문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하는 일이 PT트레이너였을 때도, 쌀 배달 기사였을 때도, 이전의 내가 하던 모든 직업에서도 동일함을.


재미없는 일에도 어려움 없이 대응할 수 있을 때까지.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말하지 않아도.


궁금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일.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해보는 일들.


억지로 호기심을 가지고 일을 대하면서


되돌아보니, 미워할까 봐

질문을 하지 않을 때.

소극적으로 일을 대할 때.

사람들은 그런 태도를 미워했었다.


지루하고 귀찮음을 적극적으로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게 바로

이 평범한 일상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조금 늦게 배웠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거창해지려 하지 않는다.

신 매일 더 작아지기로 했다.

개미처럼.

내 속의 불평과 핑계의 목소리를 죽이고,

내 일이 아니라고 지나치지 않고,

내 역할이 아니라고 외면하지 않고,

누군가의 하루, 아주 작은 틈까지

부지런히 메우는 존재로.


나와 같은 개미들이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기에,


그렇게만 해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느꼈다.


나는 오늘

아주 비싼 신고식을 치렀다.

그리고 아주 조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일의 무게를 이해하게 되었다.


알아가는 것에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다시 차고지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나는 핸들을 한 번 쓸어주고

차에서 내려왔다.


나는 매일 개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