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노트와 버킷리스트를 버리기로 했다

목표 대신 태도를 선택하다

by 새벽 시선


​2025년까지만 해도 나는 생각에 묶여 있었다.
원하는 미래를 무조건 정해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으로 살기에 격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있었다.


​이름 붙여왔던 수많은 미래들.
올해 나는 새해 목표를 정하지 않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우고 찢고, 다시 적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던
나의 목표 노트와 버킷리스트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매해마다,

어떤 삶을 살겠다고 떵떵거리고

나는 얼마를 벌겠다는 말을 하고,
근육량을 얼마큼 증량하겠다고 선언하고,
정확한 결괏값까지 도달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약속해 왔다.


​그리고 그 목표들은
추위가 사그라들 때쯤이면,

벌써 눈이 녹듯이 사라져 갔다.


​결과는 매년 늘 비슷하다.
그 과정은 의지가 약했던 것도,

내가 너무 게을러서도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상상 가능한 범위에서 만든 목표이기 때문일까.
목표란 나에게 그저 착각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연말은 그렇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의 의미를

느낄 틈도 없이 지나갔고,

새해는 밝아왔다.


이제는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2026년 1월 1일 새벽,

집 앞,

출근 시작을 하지 않고

차를 멈추어 있던

나와 새벽의 대화가

'목표보다 무엇이 중요한지'

에 대한 답을 주었다.


​최근 3개월,

계속해서 나는 내가 ‘개미’ 임을 상기시켜 왔었다.
2026년은 나의 개미 철학이

드디어 행동으로 완성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목표는 없지만

태도와 하루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


개미의 삶과 태도

그 자체로 가보자는 생각.


목푯값없는 성실함과 지독함.
그 자체로 나는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2026년 나의 목표는

‘개미 그 자체’다.


​아직 걸어보지 못한 삶이

결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매일 나의 태도와,

그로 인해 만들어질 시스템으로

2026년을 채울 것이다.


​그리고 결말이 만들어진다면,
아직 만나보지 못한

연말 끝자락에 서 있는 나는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 예측할 수 있었다.


​목푯값에만 집중해 온 걸음은

항상 실패에 가까웠다.
그 결과를 위한 계획표 안에

미래의 내가 들어오지 못했었기 때문에.


​그래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삶은

한 해 멈춰보기로 했다.


대신 나는 매일의 태도를 지켜나가기로 했다.
태도를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이

곧 나의 정체성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래는

그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2026년 시스템: 태도 유지]

​정체성 유지,
자아와 행동 파악이 중점.
계획이 우선이 아니다.


​[직면 - 인지 - 활력 - 평가]


​1. 직면
새벽 기상 시 먼저 키보드를 세팅한다.
나의 태도를 약하게 하는 자아와 행동을

한 줄로 적어둔다.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적어둔다.


​2. 인지
2시간 간격으로 가계부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1시간 간격으로

내가 무얼 하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3. 활력
오후 6시 30분,

일단 운동화를 신고 줄넘기를 손에 든다.


​4. 평가
매일 저녁

오늘의 시간별 기록을 평가하고

짤막한 일기를 적는다.


​나는 결과를 바라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미래의 나에게.


​지금과 과거의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
힘을 써야 하는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인식 그 자체만 바라고 싶다.


​비난하지 않는다.
교정하려 들지도 않는다.


​아무리 힘든 날이어도 딱 10분,

심박수를 올리기로 했다.
운동이라 부르지 않아도 좋다.


여기서 오늘 운동을

더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몸의 혈액만 돌리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공항 소방대 대기실의 한 구석.


이곳에서 “오늘 불을 몇 건 끄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 없다.
화재는 예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장비를 체크하고,

손질하고,
훈련 후에 물탱크를 채우고,

내 몸을 점검하는 것뿐이다.


그 시스템이 유지되어야

화재와 사고에 대응할 수 있다.

생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미래는 점칠 수 없기에

나는 오늘의 태도를 정비한다.


태도를 위해

글을 쓰고,

고민하고,

몸을 단련한다.

이제 나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묻지 않을 것이다.

대신

태도를 위한 시스템만

실행할 것이다.


​보기에는 느릴 것 같다.
눈에 띄는 성과도 없을 수 있다.
남들에게 설명하기도 애매하겠지.


하지만 대할 수 있다.
​나를 거짓말하게 만들지 않는다.

​목표를 세우던 어제의

나는 항상 미래의 나에게 빚을 졌다.


“나중에 잘 되면”,

“오늘만 놀고 내일부터”,

“조금만 더 버티면”.


그렇게

매일매일 오늘을 희생시켰다.


​개미는

오늘의 목표치를 정해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주마처럼 결승선을 보지도 않는다.


그저 턱 밑만 보고,

냄새에 따라

순간순간

개미 그 자체의 태도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길을 잃은 자리에서
뜻밖의 먹이를 발견하기도 하지 않을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랬다.
‘작가’가 목표였던 적은 없다.


기록하다 보니

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쓰다 보니 나를 알아가고 있다.


​나는 아직

어떤 목표를 이루게 될지 모른다.
어쩌면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삶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시스템은 목표를 향해 가는 장치가 아니라,
목표를 발견하게 만드는 장치일 것이라

생각한다.

기분이 좋아지면 하겠다는

말 대신, 움직이게 설계하겠다.

비난하지 않고

인식만 할 것이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수많은 미래로,
작은 발을 여러 번 놀려

다가간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는
어디로 가는지 보다,
어떻게 가는지가

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