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마주한 허영의 해체
글을 쓰고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하자,
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 일지도 모른다는 단계.
그 지점에 서자,
아주 낯익은 욕구가 고개를 들었다.
다른 사람도 내 글을, 내가 생각하는 만큼 봐줄까?
나는 이 마음을 ‘약함’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본능’이기 때문이다.
아기의 첫걸음이
부모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오듯,
“나 좀 봐줘”라고 말하는 그 마음일 것이다.
나는 요즘,
이 어린 마음을 해체하기로 했다.
내 글에 대해 허영심 가득하고 냄새나는 자아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조마조마함이
허영과 피해망상이 되어
무덤 속에서 다시 손을 들었다.
오래전에 불태워 없앴다고 믿었던 그것이,
또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내 글을 보여주었다.
속으로는 조용히 집중해서 읽어주길 바랐다.
이 치열한 고민에 박수라도 쳐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건조한 반응뿐.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었다.
서운함일까, 아니면 무시당했다는 분노일까.
조금 더 들여다보니,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내가 쓴 이 글이, 내가 걷는 이 길이
아무것도 아닐까 봐 겁이 났던 것 같아 부끄럽다.
이렇게라도
타인의 입을 통해 “대단하다”는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태워버린 줄 알았던 허영심이
아직도 내 발목을 붙잡고 구걸하고 있었다.
“나 좀 봐달라”라고.
“나 좀 특별하게 여겨달라”라고.
나는 다시 앉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잠시 착각을 했다.
나의 기록은
칭찬을 받기 위해 적어왔던 글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칭찬을 먹이 삼아 쓰는 행동은,
그 사람이 칭찬을 멈추는 순간 행동이 멈출 것이다.
나는 타인의 감탄을 위해 쓰는 게 아니다.
나의 생존을 위해 쓴다.
그래서 나는
조회수 따위 신경 쓰지 않기로.
내가 올리고 싶은 시간, 글을 마무리 한 시간에
발행 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누가 읽는 것이 중요하지 않기에.
그들이 읽든 말든,
칭찬하든 비난하든.
내 문장은 나에게 가장 진실해야 한다.
내 글의 의미와 깊이,
진실은 나만이 진정으로
알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