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순간 기록
"너를 위해 놓아준다."
나는 그 말이 꽤나 어른스럽고 배려 깊은 사랑인 줄 알았다.
가진 것 없는 집안,
빚만 남은 현실,
200만 원 남짓한 월급.
반면에 창창한 미래가 기다리는 24살의 대학생 연인.
언젠가 그녀가 사회로 나가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면,
결국 초라한 나를 떠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1년의 만남이 지나고
그녀에게 혼인신고를 서두르자고 졸랐다
아니면 차라리 지금 헤어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물론
두서없이 그대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 말 뜻은 그러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새벽에 마주한 나의 내면에는
"비겁함과 나약함을 가진 예언가"가 살고 있었다.
나는 미래를 안다는 듯이 굴었지만, 사실은
겁에 질려 있었던 것이다.
초라한 나라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 상처가 너무나 무서워서,
'배려'라는 포장지로 도망칠 구석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먼저 놓아주는 척,
내가 먼저 상황을 통제하는 척해왔고,
꽤나 잘해왔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채워나가는 과정이 무서워서,
미래의 실패를 미리 확정 짓고
주저앉아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나는
예언가를 멈추기로 했다.
동시에 해체하기로 했다.
떠날지 머물지는 그녀의 몫이다.
내가 미리 겁먹고 뺏을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비겁한 일이었다.
내가 온전히 받아야 할 상처를
상대에게 들게 하는 일이었다.
나약한 행태였다.
사랑을 시작한 것도, 만남의 우연도
모두 각자에게 책임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미래를 점치는 능력이 아니라
오늘을 버텨내는 '증명'이었다.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이별로도,
성급한 결혼으로도 도피하지 않는다.
그저 빚을 갚고,
글을 쓰고,
단련하며
나의 가치를 올리는 것.
그녀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돌아왔을 때,
여전히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활주로가 되어주는 것.
뻘에서 거대한 몸집으로 헤쳐나가는 것은 괴롭다.
개미의 가벼운 발로 하루 1cm라도 전진하는 것.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
그 불안한 시간을 버텨내는 힘.
그것이 내가 갖춰야 할 진짜 '가장의 그릇'임을
나는 오늘 깨닫는다.
연애라는 것은
사랑으로 시작해서 새로운 사랑이 탄생하는 일의 시작점.
사랑이 사랑을 낳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은 시작부터 어려운 것이다.
나의 부모, 당신들께서 이뤄온
그 어려웠던 여정을 나는 이제야 체감하기 시작한다.
당신들께, 가장 큰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기록을 마무리한다.
오늘, 비겁하고 냄새나는 예언가의 화형식을 거행했다.
그냥 계획대로 연인의 부탁을 들어주고,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먹으러 갈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미래의 나의 후손에게
유일하고도 가장 확실한
"지탱"의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