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1일 화요일

빌어먹을

by 제이언

아마 이 소식을 듣지 못했다면 오늘의 일기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게으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얼마 전 우연히 발견한 것뿐일 브런치스토리에 평소처럼 쓰는 글이나 구상 중이던 습작을 꾸준히 올리는 것이 내 인생에 변화를 줄까?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거늘, 퇴근 후 들려주신 이 소식에 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성공한 작가 안 되기만 해봐, 신이고 염탐 중인 조상이고 싹 다 모가지를 분질러버릴 거니까.


아들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어머니는 미인이시다. 눈부신 둘째 이모 전성기에 비하면 명함 내밀 수 없겠지만, 또 객관성을 방패 삼아 불효를 저지르게 되지만 그렇다. 그러나 외모는 어느 정도 답이 있더라도 결국 취향이기에, 실제 내 절친 중 한 명은 두 분의 전성기 시절 사진을 보여주니 어머니를 택하기도 했다. 아버지 또한 집 나가기 전에 어머니가 더 예쁘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이제 와선 의미 없는 말이지만.


우리 식구 자랑하려고 늘어놓은 건 아니고, 아니 티끌만큼은 맞긴 하지만, 어쨌든 어머니는 환갑을 넘으시고 피부암으로 인해 하필 얼굴에 수술을 받긴 하셨어도 최소한 코는 미인이다. 아무도 물어보진 않았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얼굴 부위는 눈이 아니라 코다. 그 두툼하면서도 오뚝하고 서양 분들처럼 마냥 뾰족하게 마감된 것도 아닌, 동서양이 어우러진 그 코는 1자로 반듯하다. 아버지처럼 학창 시절 싸우고 다닌 것도 아닐뿐더러, 교통사고 같은 외상도 없었고, 선천적인 질병 같은 것도 없었으니 당연하다.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던가. 최근 스트레스성 대상포진이나 피부암을 포함해 이상한 잔병치레가 잦아져 병원에 종종 다니시다가 이 빌어먹을 소식을 갑자기 듣게 되고 만다.


갑자기다, 드라마 속 애틋한 첫 만남이나 교통사고나 암 따위 같은 건. 그 예쁜 코가 실은 뼈가 한쪽으로 90% 넘게 치우쳐져 이미 수술할 시기마저 지났다고 한다. 저는 코 같은 건 안 고는데요? 어머님, 그건 다른 사람이 얘기하지 않으면 모르는 겁니다. 확실히 새벽에 물 마시러 부엌을 지나가다 들려오는 깊은 잠소리에 나는 발소리를 죽였을 뿐, 그걸 듣고 아 코뼈가 휘었으니 당장 병원에 가야겠구나, 라는 발상을 할 턱이 없었다. 인생은 잘 만든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그 어떤 복선도 없다. 더구나 갑상선도 좋지 않고 목이 많이 부었으므로 어머니의 몇 안 되는 취미이기도 한 본당 성당에서의 성가대 활동도 앞으로 할 수 없게 되었고, 일상에서도 되도록 말을 하지 말 것을 당부 받았다고 하신다. 뒤늦은 병원과 수술 일정을 함께 알아보며, 한편으로 이런 사람들 많이 보지도 않을, 당장 돈이 되는 것도 아닌 글 따위를 쓰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글 따위라, 소중함을 모르는 너는 결코 성공한 작가는 못 되겠구나~ 상상 속 신의 음성이 귀를 때리기 시작한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분명 이를 통해 삶의 큰 교훈을 얻는 거라고, 성경에도 있는 구절이라며 어머니께서는 내게 긍정과 감사함을 알려주려고 잦은 노력을 하셨고, 역시나 불효자인 나는 잔소리로 치부하며 귀 아파하고 있던 과거의 일상. 사실 오늘날까지도 변함없는 일상. 도대체 무슨 놈의 교훈을 주려고 자꾸 시련을 내리는 거지? 너는 불효자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셔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겠구나~ 그걸 바탕으로 글짓기도 더 많이 해서 훌륭한 작가가 되려무나~ 아니 씨발 누굴 엿먹이는 건가. 최초로 공개한 일기에서 딱히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내 수면 문제 및 심한 비염은 뇌에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뇌경색 및 청년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고 의사 쌤이 그랬는데 이게 어머니한테도 해당된다니. 나야 불효자고 나쁜 놈 맞는데 그럴 거면 내가 암에 걸리거나 죽을병 걸리면 될 것을, 왜 죄도 없는 어머니께?


나도 안다, 나 같은 것보다도 훨씬 더 삶이 퍽퍽하고 자살 시도 많이 해봤을 암울한 분들이 여럿 계신다는 거. 당장 내 주변에도 자살을 시도했거나 빌어먹게도 성공해서 장례식에 간 적이 두 번 있다. 존나 잘 안다. 이게 다 시련이고 끝난 후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극복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게 안 되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거잖아. 신의 뜻이 대체 뭔데? 당장 아프리카 난민들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죽는 사람들은 뭔데? 그들한테도 시련이고 삶의 교훈을 주려는 거냐? 언제 이런 비슷한 말들을 어머니 면전에다 한 적이 있고, 많이 혼나면서도 결국 납득은 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신의 뜻을 감히 인간인 우리는 알지 못한다? 너무 피곤하다. 수학 시간이 되면 이게 영어인지 수학인지 이해되지 않는 채로 졸기만 했던 고등학생 때 모습과 동일하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로 화가 나고 당장 내 삶이 피폐해지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다. 그것마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이런 스트레스들에 자꾸 물을 주게 되면 어머니처럼 나 또한 암이나 치매 같은 질환이 탄생하게 되겠지. 그 평범한 연애 한 번 못 하고, 자가는 아니더라도 내 집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스팀 게임하거나 클리셰 같은 영화관 데이트, 식사 후 납득할 수 없는 가격의 비싼 커피를 쭉쭉 들이켜며 일상이 된 섹스 같은 건 내 삶에 없는 거겠지.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긍정적으로 살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러나 친할머니와 약간 유사한 예민함과 예술성 기질 때문에 혹은 나태함 때문에 어떤 계기가 없으면 나라는 인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그 어떤 것은 변하질 않겠지. 그러려고 네게 깨달음을 주고자 네 어머니께서 아프신 거란다~ 그다음은 네 누나란다~ 빌어먹을. 인생은 빌어먹을이다. 현실에서는 제대로 된 욕조차 구사하지 못해 솜씨 좋은 글짓기 능력을 보유해도 딱히 창의적이거나 강렬한 욕조차 뱉어내질 못하는 나는 빌어먹을 불효자다.


성공한 작가 안 되기만 해봐, 신이고 염탐 중인 조상이고 싹 다 모가지를 분질러버릴 거니까. 그렇다고 하루 종일 엉덩이 붙이고 있을 수만도 없다. 취업 준비도 해야 하고, 당장 생활비가 없으므로 쿠팡이나 다른 단기 알바를 또 구해야 한다. 돈이 없다는 것은 아픈 것과 같다. 당장 10만 원이 부족해 월세를 못 내거나 병원에 가기 망설이거나 하는 것은 마치 아플 때 이 아픔만 넘어가기를 하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 아프면 다른 생각이나 걱정을 할 수 없고 눈앞의 아픔만 그림자처럼 붙어있을 뿐이다. 당장 내 멱살을 쥐고 있는 이 고통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설령 운이 좋아 그렇게 된다 한들 그 감사함을 간직하기도 전에 다른 걱정거리들이 내 멱살을 쥐려고 순번표를 뽑아 대기 중이다. 그게 인생이다. 그걸 알면서 나를 낳았다고?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그냥 둘이 좋아서 섹스했을 뿐이잖아! 불편하고 쾌감을 줄인다는 이유로 콘돔 같은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나는 빌어먹을 불효자다.


원래 이렇게 끝내려고 했는데, 일기일 뿐이지만 결말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그 아픈 몸으로 어머니께서 구태여 크림파스타를 해주시니 또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노래가 재생되려고 한다. 이렇게 이기적이고 피부도 안 좋고 목소리도 갈라지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가방끈이 길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도 아니고 일기랍시고 남들 험담이나 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전히 불효자인 나한테 시집올 여자가 있을까? 더구나 이제 30살인데? 이제는 절박함에서 호기심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듯하다. 나의 어떤 면을 보고 좋아하는 걸까, 그거 전부 다 위선인데.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나 누나한테조차 괜찮은 척하는 잔뼈 굵은 위선자인데. 인생은 길단다 어린 양아~ 아니 그렇다고 80살 먹어서 뒤늦은 황혼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황혼 연애를 하는 분들은 죄가 없고 그들을 존중하지만. 늙어서 섹스도 못 할 텐데 그때는 질러둔 스팀 라이브러리로 게임이나 진득하게 하다가 죽어야지. 과연 그렇게 될 수나 있을까? 네가 80살까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거나 중간에 마음이 꺾여서 자살하거나 네 아버지처럼 믿었던, 겨우 찾은 네 미래의 배우자가 널 배신해서 그게 괘씸해 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가거나 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음 마지막은 장담해, 나는 빌어먹을 겁쟁이라 센 척하는 글과 달리 현실에서는 찍소리 못하는 존재니까. 또 위선이라는 건가.


결국 이렇게 끝내는 게 맞나? 뭔가 억지로 덕담이라도 끄적이고 마무리해야만 할 것 같다. 여러분, 인생이 그지 같더라도 힘내세요~ 그걸 극복하면 여러분은 반드시 성장할 거예요! 역시 위선이다. 현실이면 몰라도 글에서마저 위선적인 모습을 비치고 싶지 않다. 알고 보니 대단한 수술이 아니더라, 며칠 전 냈던 지원서가 잘 돼서 더는 단기 알바 안 해도 된단다, 네 아버지는 사실 속죄 중이란다, 누군가 속 시원하게 말해줄 사람 없을까. 아니면 아프리카코끼리 수컷 무게만큼의 위선을 토해내고 퇴근한 내 귓가에 섹스할래, 라고 말해줄 배우자는 없는 걸까. 헤밍웨이처럼 자살하는 수밖에 없나. 그 자식은 작가로서 성공하기라도 했지, 배부른 새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또 따지고 든다. 오늘 일기에 등장한 인물은 총 몇 명이지, 그들에게 나눠준 적도 없는데 어느새 그들 손에 들린 각본들. 내 머릿속은 항상 희극인 것 같다. 가까이서 보면 코를 고는 불면. 제발 오늘은 불면이 찾아오지 않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글 쓰느라 다 식은 크림파스타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현재 시각 오후 7시 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