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의 아침

by 제이언

가끔 하는 방 청소에 집먼지진드기 알러지성 비염은 더욱 지독해졌다. 환한 새벽에 눈은 늘 건조했고, 깎지 않은 손톱은 잠들기 전에는 없던 혈흔을 이마와 미간에 남겨 악몽에서 벗어나도 따가웠다. 야한 상상을 자주 해도 몽정은 오지 않았다. 이 퀴퀴한 일상을 뒤집으려면 두껍게 쌓인 먼지부터 뒤집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왜? 키스하는 혓바닥 위로도 먼지가 비집고 들어갈 텐데? 똑같은 결론을 내고 아직 출발할 때가 아님을 확인한 뒤 다시 누웠다. 우주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구나. 나를 재채기하게 하는 것들. 매일 아침 토해내도 줄어들지 않는 응어리. 묽은 콧물처럼 축 늘어지는 허리가 쿡쿡 쑤셔왔다.


감지 않은 머리를 모자에 쑤셔 넣고 찡그린 운동화 앞에 섰다. 새똥이나 진흙이 앉을까 노려보던 시기는 지났다. 눈부신 권태기에 재채기하며 정거장으로 향했다. 나와 함께 먼지를 나누던 여인이 있었다. 운동화를 구기며 산책하고 도중에 무지개 고인 물도 밟고, 마지막 코스 근처 골목의 그늘에서 뿜던 연기는 공중 여기저기에 흩어졌다. 그때의 중력은 가벼웠고 콧물도 흐르지 않았다. 냄새 나는 키스를 통해 콧대가 눌리고, 혀는 녹고, 종종 앞니끼리 부딪쳐 약간 거슬려도 그 불편함은 우주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침과 진공으로 쫙쫙 소음이 울리고 하필 금연구역 딱지가 없어 담배 피기 좋은 그 골목으로 다른 사람이 왔다가 귀가 빨개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기분 좋은 충돌은 아무리 비행해도 더 이상 닿지 않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 아스팔트 균열이나 작은 경사에 고인 무지개 물을 밟는 건 불쾌했다. 양말이 젖으니까, 먼지가 들어오니까. 그래서 이 길이 싫어졌다. 껍질 안이 아늑하던 노른자로 돌아가 그 안에서만 흐르고 싶어졌다. 어쨌든 부화했고, 까진 계란 껍질을 다시 생명의 그릇으로 복원할 기술력은 없으며, 이 먼지 국물 안에서 평생 호흡하는 건 이 삶의 한계였다. 직립 보행을 해도 여전히 허리는 ㄱ자가 편했다. 도착하면 허리를 펼 수 없는데 왜 미리 숙이고 있는 걸까? 아직 정거장은 멀었다.


키스를 찾아 비행하면 결국 끝은 추락이었다. 떠올리기 싫어도 몸은 자꾸 떠올랐다. 하지만 이 길은 지름길이고 익숙했다. 그녀가 떠난 후로 변하지 않은 것은 키스하면서 피던 담배였다. 감지 않을수록 그녀의 정수리 냄새는 좋았다. 그래, 부유하게 냅두자. 중력을 벗어날 유일한 수단은 회상이었다. 하늘에 있으면 나는 작은 존재였다. 이 누런 거리를 배회하면서 구부정하고 퀴퀴하고 재채기하는 행인은 나밖에 없었다. 우주복으로 단단히 무장한 것 같아도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왜? 키스하는 입술 안으로 먼지가 퍽퍽 쌓일 텐데? 월세를 꼬박꼬박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향하는 걸음에는 찡그린 운동화를 다시 필 수도, 새로 구매할 수도 없는 빈곤함이 꾹꾹 담겨 있었다. 재채기를 멈추게 할 병원비도 없었다. 그 좁아터진 방이 안락한 보금자리니까. 숨을 누일 곳도, 숨을 곳도 없는 이 우주에서 중력이 그나마 얇으니까. 도착해서 번 돈으로 더 나은 행성을 찾아 떠날 여력은 없었다.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남들과 달리 지독한 비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렇게 10년을 더 살아도 그건 생존이 아니라 연명이었다. 산소호흡기 달랑 달린 채 꿈만 꾸며 자위할 수밖에 없는 식물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지, 돈이 부족하거나 합법이 아니거나 표현할 수 없어 안락사를 선택하지 못하는 그들은 자위조차 할 수 없구나. 이 삶에 발전은 없어도 그녀가 있을 땐 쾌락이나마 있었는데. 슬슬 정거장에 도착할 때가 됐다.


똑같은 아침이다. 따가운 햇빛은 거리를 더 누렇게 물들이고, 코를 더 간지럽게 만들고, 쉴 수 없는 꽉 막힌 작업장을 스포트라이트로 비추고 있다. 호흡을 유지하려면 저 문턱을 밟을 수밖에 없다. 탈출해도 산소 없는 우주가 광활히 펼쳐져 있을 뿐이다. 적어도 집먼지진드기는 없겠네. 콧물을 흘리며 운동화 끈을 고쳐 맨다. 아성체였을 땐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았지. 건강을 유지할 돈이 없고, 사고가 닥쳤을 때 마련할 돈도 없다. 여기는 푸른 지구가 아니라 숨도 쉬기 어렵고 몸이 무거운 거야. 죽어서 구부정한 몸 밖으로 영혼이 나와도 결국 우주를 떠도는 먼지 조각이 되는 걸까? 우주 바깥은 어떤 곳일까? 노른자였던 나는 보호 받고 있던 껍질이 깨져 추락해 신의 프라이팬에 지지고 볶고 달궈지고 있고, 그게 지금의 아픈 일상이고, 버티다 결국 죽으면 입속으로 들어가는 게 인생인 걸까? 목성도, 지구도 결국 불판에 달궈진 웍인 걸까? 우주는 신의 목구멍인가? 이제 떠오르는 단어들을 잠가야 한다. 평온한 저녁을 맞이하기 위해 똑같은 아침으로, 그 각본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목성의 중력은 두껍다.






(메모 : 수필로 쓰려다 뭔가 좀 애매해서 단편소설로 분류. 이 글의 탄생 배경은 여기를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