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공간, 채움의 시간

가본 곳 <병산서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by 제이바다

▷ 위치 :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 가볼만한 시기 : 연중 (하절기 09~18시, 동절기 09~17시)

▷ 함께 가볼만한 곳 : 안동 하회마을


안동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까지는 차로 불과 10분 남짓(4.3km) 거리지만, 그 길은 마치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비밀의 통로 같다. 아스팔트 도로가 끊기고 좁은 흙길로 접어들면, 어느새 시야는 낙동강과 낮은 산들로만 가득 찬다. 이전과 다른 세계로 들어섰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병산서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연 속에 교묘히 장치해 놓은 이 ‘시각적 단절’은 마음속에 남아 있던 것을 비우고 새로운 것으로 채운다.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진 풍경

'자기를 낮추고 예로 돌아가는' 복례문(復禮門)을 지나 '가르침을 바로 세우는' 입교당(立敎堂) 마루에 앉으면, 눈앞에는 만대루(晩對樓)와 그 뒤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깎아지른 듯한 병산(屛山)이 어우러져 한 폭의 병풍 속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세상 어디에 이보다 더 조화로운 풍광이 있을까?


마당에 서 있는 늙은 소나무와 붉게 피어난 배롱나무, 만대루 뒤 하얀 모래밭과 강물, 그 너머 산그리메와 파란 하늘까지. 이 자연의 모든 요소들을 서원의 앞마당으로 끌어당겨 놓은 듯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굽이쳐 흐르던 낙동강은 이곳 병산에 이르러 느릿느릿 흘러간다. 고요하다. 시간마저 멈춘듯하다. 시공감각이 모두 절제된 여백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이 평온함이 주는 멋에 취해 머물고 싶어진다.


자연과 하나 된 배움의 자리

문득, 이곳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중 하나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오늘날 기능적으로 말하자면 학교이다. 국가가 원하는 ‘국민’을 길러내기 위해 극도의 관리의 효율성을 강조한 지금의 학교 건물과 너무나도 대비가 된다.


자연과 어우러진 건물 속에서 그 옛 유생들의 배움은 어땠을까. 벽체 없이 사면이 뚫려있는 저 만대루에 울려 퍼졌을 선비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절제와 자연스러움이 만든 만대루의 미학

길이 69.5m, 7칸에 이르는 만대루는 200여 명이 함께 앉을 수 있을 만큼 웅장하다. 그러나 그 위용보다도 더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만대루의 ‘자연스러움’에 있다. 대들보와 서까래, 기둥은 나무가 지닌 본래의 휨과 결을 그대로 살려 썼고, 주춧돌 또한 낙동강가에서 바로 주워온 듯 자연 그대로이다. 장인은 정교하게 다듬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절제를 선택했다. “건물은 곧 자연의 일부”라는 우리 조상들의 건축 정신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은 디테일 속의 해학

돌아 나오는 길에 마주한 흙담 달팽이 뒷간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안의 사람이 보일 듯 말 듯 설계된 구조에서 선조들의 해학과 여유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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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통해 삶의 이상을 심어주고자 했던 배움터였다. 그 안에서 느낀 비움과 채움의 경험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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