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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연대를 향한 비상(飛上)

영화 <베일리와 버드> 리뷰

by 제이바다

▷한줄평 : 우리는 모두, 언젠가 펼쳐질 위로와 연대를 위한 감춰둔 날개를 품고 산다

▷평점 : ★★★

▷영화 : 베일리와 버드(Bird), 2025.10월

※ 본 글은 씨네랩(http://cinelab.co.kr) 초청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화는 10/29(수) 개봉합니다.


새의 날개는 영화와 문학작품 속에서 자유와 초월, 영혼, 꿈, 희생, 추락 등 다양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사랑과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욕망을, <버드맨>에서는 다시 비상(飛上)하려는 자아의 욕망을, 이상의 <날개>에서는 잃어버린 자아의 회복과 현실 초월의 욕망을 상징한다. 반면 <블랙 스완>에서는 예술적 완벽함에 대한 집착과 자기 파괴적 욕망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새의 날개는 희망과 초월의 이미지이자, 때로는 추락과 파멸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년)>, <버드맨(2014년)>, <블랙 스완(2011년>

영화 <베일리와 버드>는 쇠락해 가는 영국 남부 해안 도시 켄트의 한 빈민촌을 배경으로, 해체된 가족 속에서 안정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려 애쓰는 열두 살 소녀 베일리의 시선을 통해 현실의 좌절과 희망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이 작품에서 ‘새의 날개’는 어떤 의미로 날갯짓할까.


벗어나기 힘든 현실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들

갓 초경을 시작한 베일리(니키야 애덤스)에게 놓인 환경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가혹하다. 어린애나 탈 법한 전동 킥보드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는 철없는 아빠 버그(배리 케오간)는, 만난 지 석 달도 안 된 여자친구 케일리(프랭키 박스)와 주말에 결혼하겠다며, 베일리에게 보라색 점프 수트를 입고 참석하라고 통보한다. 버그의 폭언을 피해 찾아간 엄마 페이튼(재스민 좁슨)의 집엔 또 다른 불안이 기다린다. ‘넌 태어난 게 문제야!’라며 독한 말을 퍼붓는 엄마와, 금방이라도 폭력을 휘두를 듯한 그녀의 새 남편, 그리고 그 사이에서 불안에 떠는 어린 세 동생들. 이 집마저 베일리에게는 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유일한 의지처인 오빠 헌터(제이슨 부다)마저 자경단과 어울려 불법을 일삼고, 임신한 여자친구와 스코틀랜드로 도망칠 궁리만 한다.


핸드헬드(Handheld) 카메라의 흔들리는 영상처럼, 폭력과 마약이 난무하는 환경과 무관심과 방치로 일관하는 무책임한 부모 아래에서 베일리의 내면 역시 불안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어느 날 베일리는 아빠 버그에게서 “왜 내 꿈에는 관심이 없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을 받는다. 어린 나이에 준비 없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아빠 버그는, 결국 미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해 버린 또 하나의 아이일 뿐이었다. 누가 자식이고, 누가 부모인지조차 모호한 현실. 이 어린 두 영혼에게 세상은 너무도 냉혹하다.


영화 <베일리와 버드> 스틸 컷 – 베일리의 가족들, 이들은 영국 남부 해안도시 켄트 빈민층의 해체된 가족의 모습을 극명하게 그려낸다.

나이답지 않게 일찍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뭔가 단단해 보이는 베일리는 자신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능숙하다.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니는 새를 카메라에 담고, 손등 위 나비의 날갯짓을 조심스레 지켜보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을 배운다. 위태로운 순간엔 휴대폰을 꺼내 자신을 지키고, 벽에 쓰인 낙서와 그래피티 속에서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의 문장을 찾아낸다. 지저분한 벽 위로 자신이 찍은 영상을 비추며,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희미한 희망의 빛을 찾아내는 일상이 그녀의 유일한 위안이다. 어린 베일리가 이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견디거나 도망치거나, 아니면 사라지거나.


영화 <베일리와 버드> 스틸 컷 – ‘Hope’와 ‘Don’t you Worry’라는 낙서는 역설적이게도 벗어나기 힘든 현실을 암시한다.


보호와 위로, 그리고 내 안의 버드

그러던 어느 날, 베일리는 수풀이 우거진 황량한 들판에서 자신을 ‘버드’(프란츠 로고브스키)라고 소개하는 정체 모를 청년을 만난다. 홀연히 나타난 그는 마치 베일리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듯 새처럼 부드러운 몸짓과 따뜻한 말로 그녀를 다독인다. 단 한 번도 아름답다고 생각지 못했던 ‘오늘’이라는 하루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정말 아름답지 않니?” “뭐가요?” “오늘……” 그의 이 한마디는 베일리의 시선을 바꿔 놓는다. 늘 불행한 오늘 속에 갇혀 있던 그녀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건넨다. 버드는 베일리에게 세상을 조금 멀리서,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라 말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게 우리네 인생 아닌가.


내가 태어난 곳과 부모, 형제라는 가족의 관계는 우리 스스로가 선택할 수 없다. 그저 그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기에 가족의 굴레는 내가 견뎌내야 할 숙명과도 같다. 그러므로 가족을 벗어난 새로운 관계는 자신을 갇힌 세계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존재가 된다.


버드는 결정적인 순간에 숨겨놓았던 날개를 펼쳐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베일리를 온몸으로 감싸 안는다. 영화 <베일리와 버드>에서의 새의 날개는 다름 아닌 ‘보호와 위로’의 상징이다. 그의 날개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을 품어주는 ‘위로의 공간’이다. 커다란 날개 속에 푹 안겨 안식하는 베일리는 어쩌면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걸 느끼는 것 같다. 버드는 그런 자유와 안식을 갈망하는 베일리의 또 다른 자아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어느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할 존재는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영화 <베일리와 버드> 스틸 컷 – 버드는 베일리에게 새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도록 이끈다


나를 지켜내는 힘, 그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비밀

위기의 순간을 이겨내고 한 단계 성장한 듯 보이는 베일리는 당당하게 아빠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새엄마가 사준 점프 수트를 입고, 스스로 화장을 한 채로. 가족들을 바라보는 눈 빛에는 더 이상 분노가 없다. 이제는 그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갈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새로운 아내를 맞아 들떠 있는 아빠를 바라보며 그저 조용히 그의 행복을 응원할 뿐이다. 이제 그녀는 안다.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존재는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버드 - 다정히 나를 품어주고 눈을 맞춰주는 그 존재 - 그가 내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용기가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은 더 이상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인생을 슬퍼하거나 좌절해 주저앉지 않아야 한다. 칙칙하고 비루한 현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고개를 들어 맑고 쾌청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새의 날개’다.


어느 날 주어진 현실에 어찌할 수 없어 눈물이 앞을 가릴 때, 나를 감싸 안으며 위로하고 자유를 향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감춰둔 새의 날개가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본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로 해두자.



[참고자료]

(주1) Video essay: “Andrea Arnold: Birds of Her Feather” | MUBI

https://youtu.be/KWd2pRTEbw0?si=s4VoF7DGP2ftFz5T

영화의 배경이 된 영국 남부 해안도시 켄트의 빈민촌의 현실과 영화 <베일리와 버드>에 대한 스토리


20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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