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새벽에 능소화를 만났다

by 이성진
VlEI4PRt3E34UHjM.jpeg
agUe2SVjPwS6pXrD.jpeg

공항에 갈 일이 있었다


추석 새벽에 공항에 갈 일이 있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새벽 5시, 자차도 없는데


공항에 새벽에 갈 일이 있었다


이곳에서 카카오 택시 타는 것은 생각도 안 하고 있다


30분을 걸어서 갈 수밖에 없는 상태였고


늦더위는 걸음을 쉽지 않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야 하는 길이었고


공항길은 그리 낯설지 않아서 어둠살이 가시지 않은 길을


마음 넉넉하게 걸을 수 있었다


공항으로 가다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엿보이는 공간을 만난다


바로 공항을 둘러놓는 돌담길과 그것에 어울리게 심은


능소화 나무줄기들이다


그 농소화는 지금 한창 꽃이 피어 있다


그 꽃들이 내 가볍지 않은 걸음을 위로하는 듯했다


아련하기도 하고 화사하기도 하고


무엇을 하소연하는 듯, 무엇을 기억하게 하는 듯


지나는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었던가?


그리움이 스며 있었던가


능소화는 그리 마음에 많은 말을 들려주고 있었다


추석날 새벽에 공항길을 걸으면서


능소화와 정담을 나누고


하루를 걸아갈 힘을 얻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달을 그리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