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작은 공간에서라도 뿌리를 내려
바람이 불어도 버티려 한다
거센 바람이 불어 가지가 꺾이는 일이 있어도
중심은 그냥 그 자리에 두려고 한다
바위가 굴러내려 부딪혀 생채기가 나도
탓을 하지 않고 견디려 한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
오래전에 만났던 자리에 있으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어둠이 가득히 스며 있어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도
사람들의 생각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흐름의 실상을 만나기 때문이다
이제 또 하루가 흘러가고 바람이 불어오고
꽃들이 가득히 피어나는 세상에 서 있을 게다
그러면 순간은 또 세상이 내 것인 양
집착과 열정에 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다시 바람은 불 게고 더러는 비도 내릴 게고
시야도 아득히 흐려질 게고
시간은 성큼 달려가 있을 게다
어제 같은 10년 전의 바람 불던 시간을 만난다
어제 같은 8년 전의 꽃이 피던 시간을 본다
오늘은 그 모든 일들이 다름이 없다
스쳐지나는 세상의 말들이 어깨에 무겁게 앉고
흐르는 세상의 일들이 가슴에 눌림으로 다가든다
바람은 바람대로 이기심은 이기심대로 노래는 노래대로
제 갈 길로 가는 세상의 걸음에
난 나무가 되어 뿌리를 내리며 흡수하는 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