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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자꾸 달아난다

by 이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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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비가 내리는 번영로를 달렸다


가시거리가 100m도 되지 않은 듯


앞차와의 거리에 온통 신경이 쓰였다


오다가 민오름 가까이 차를 머물기도 했고


번영로의 빈 공간에 차를 세우기도 했다


그렇게 4시간을 걸려 차는 표선까지 왔다


차가 내 언어처럼 걸어 다니는 모양이다


내일은 비가 종일 내린다고 한다


양도 엄청나다고 예보하고 있는데


거리에 나를 내어 놓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시간은 항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


그 하나가 아름다운 언어처럼 기분을 좋게 한다


내 언어의 빛나는 재료는 많은데


언어가 내 곁에서 사라진 모양새다


부드럽고 예쁜 언어들이 요즘 내 의식의 저변에 머물지 않고


단단한 언어들이 찾아와 나를 놀라게 한다


지금 내 언어가 바라볼 수 있는 바는


거리의 꽃들과 방불한데


내 언어에는 돌들만 가득하다


갈고닦아도 매끄럽게 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언어가 즐거움이었고


보람이기도 했는데


언어가 안개비처럼 아득하게 나를 내몬다


내일은 비가 가득히 내린다고 하는데


난 번영로를 달려야 하는가?


돌들을 갈아 보석을 만들어야 하는가?


비를 기다리며 내일을 정하지 못한다


그만큼 내 언어도 오름들에서 많이 만난


스러진 풀잎들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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