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게 섞여 있으니 보기가 좋네요.
세상이 갈수록 팍팍해진다. 다른 것이 팍팍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만남과 관계 형성 등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코로나가 해가 바뀌어도 여전한 상황에서 움직임 자체가 무척 제한적이다. 일터에 가는 것은 그래도 놓여있는 상황이 되는 듯한데, 그 외의 일상적인 일은 모두가 윤리적,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뭔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가는 것은 금기시되는 듯하다. 특히 공공의 시설에 들어가는 것은 마음 내기가 무척 어렵다.
그런 가운데 하나가 사우나에 가는 일이다. 난 머리카락 자르는 일을 사우나에 소속된 이발관에서 한다.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두발 정리, 염색까지 손쉽게 할 수 있고, 깨끗하게 몸까지 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옵션이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있으면서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이용해 오고 있다. 그런데 사우나 가는 게 문제가 되었다. 그곳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아닌가. 특히 요주의 장소로 인식되고 있는 곳이 아닌가?
사우나에서 마스크를 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지 아는가?
사우나에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보통 내가 들어갈 때 10여 명 이상은 만난다. 모두 마스크를 하지 않고, 가까이 스쳐 지날 수도 있다. 만약 손님 중에 누군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면 장담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사우나가 진원지가 되었다는 말도 더러 방송에서 흘러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쉽게 사우나로 발을 옮길 수 있겠는가? 더구나 옆 동네에서 확진자 얘기가 막 쏟아지는데 말이다. 요즘의 일상을 가지고 쓴 시가 한 편 있다.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는 시다. <핸드폰의 노래>라고 제목을 붙였다.
핸드폰이 너무 울린다./ 그렇다고 꺼놓을 수도 없다.// 그냥 바라보고 들을 수밖에/ 확인할 수밖에// 거의가 코로나다./ 내가 원하는 반가운 소식은 1/10 정도다
보험이나 코로나나 모두/ 지금의 나에겐 통화 바이러스다.// 당국에선 알리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당연히 그렇게 타당성을 주장하리라//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불안감과/ 피곤함이 쌓여 간다.
오랜 시간 집에서 몸을 씻었다.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길었다. 두발을 정리해야 하는데, 사우나 가기가 마음으로 힘이 든다. 그렇다고 늘 가던 곳을 제처 두고 나의 머리카락을 맡기던 사람에게서 다른 곳으로 가기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한 번은 다른 곳에 가볼까 하면서 이발소의 문을 두드려본 일이 있다. 하지만 문 앞에 적혀 있는 가격이 생각 외로 높게 잡혀 있어, 마음에 합당하게 다가오지 않아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이발을 하기 위해선 사우나에 가야 했다. 하지만 최대한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머물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마음을 내어 조용한 시간을 빌어 늘 가던 사우나에 갔다. 발열 체크를 하고 정상 체온이라는 진단을 들으면서 4층에 있는 사우나 실로 올라갔다. 평소 같으면 사우나에 들어가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몸도 좀 씻고 나와서 두발 정리를 했는데, 오늘은 들어가면서 바로 두발 정리부터 했다. 그러면서 시간도 줄일 겸, 염색은 하지 않기로 했다. 염색을 하면 씻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씻어야 하는 시간 등으로 30분 이상 더 소요되기 때문이다. 흰 머리카락을 그대로 좀 둬보자는 생각도 작용했다. 나이가 들어가면 머리카락에 흰색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작용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늘 염색을 하던 머리카락을 그대로 두니 영 불편하기는 했다.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빠르게 사우나를 한 후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뭔가 물건을 놓아두고 온 것처럼 뒤가 자꾸만 당기는 것이었다. 다시 염색하러 들어갈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 먹었던 마음이 흰색을 그대로 두고 보자는 것이었고, 사우나 사정도 그렇고 그대로 집에 돌아왔다. 집의 식구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그것도 걱정이다. 다른 사람들은 안 보면 되니까? 그런데 식구들은 봐야 하지 않은가?
흰 머리카락이 집에서도 자꾸 마음이 갔다.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감추려는 본능이 있듯이 드러내지 않으려 내 방에만 있었다. 그런데 식사할 때는 같이 모여야 했다. 어두운 곳에서 나왔기에 저녁을 같이 먹는 시간에 별로 머리카락에 대해 식구들의 얘기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잊어버리고 식사를 했다. 그런데 식사를 하는 도중에 아내가
“괜찮네요. 보기가 좋네요. 그래도 둬도 좋을 것 같네요.”
딸이 거든다. 집에는 3명이 같이 살고 있다.
“검은 머리카락만 있는 것보다 보다가 흰 게 섞여 있으니 더 나은 것 같아요. 훨씬 품위도 있어 보이고.”
내 마음은 평안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괜찮구나. 그래 이렇게 생활해도 되겠구나. 구태여 눈에 영향을 주면서 염색을 할 필요가 없겠구나. 물론 염색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나이를 몇 살이나 더 먹은 것처럼 보이게 할 게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보이는 것도 괜찮지 않으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염색이 눈에도 이롭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이야기도 많이 듣고 있었으니까?
식구들의 한 마디는 바이러스로 힘들었던 내 마음에 찬란한 빛이 되어 들어왔다. 그래 이제는 이발도 가볍게 할 수 있겠구나. 염색을 하는 것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으니까? 이발의 생각 전환을 통해 마음이 가벼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거기에는 식구들의 한 마디가 위로가 되고 능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