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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토 May 23. 2020

자전거

총각네 장보러 갔더니 고기 담당 총각이 물었다. "애기 이제 자전거 타요? 엄청 열심히 가르치시더라고요." 아이고. 민망했다. 동네 소문나게 자전거를 가르쳤나보다. 본 사람이 많기도 할 것이다. 이틀 동안 자전거를 잡고 45000보를 걸었다. 그런데 사실 가르친다는 말은 부적절하다. 정작 나는 자전거를 못타니까. 엄마는 도울 뿐. 


둘째 친구들이 9살이 되면서 한명 두명 두발자전거를 타더니 자전거 열풍이 불었다. 갑자기 누나 자전거를 가지고 나가서 연습하더니, 그날 저녁부터 타게되었다. 둘째가 붙잡지 말라기에 붙잡지 않았다. 따라다니기만 했다. 자전거 문외한이지만, 나도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페달 밟지 말고 중심잡는 연습부터 해봐"  "손에 힘 빼봐" "발을 계속 굴려야지" 등의 잔소리를 했다. 둘째는 하나도 안 들었다. 하기야. 못타는 사람의 하는 충고에 무슨 무게가 있겠는가. 그러다 아빠랑 통화하여 이런 저런 설명을 듣더니, 곧 탔다.     


막내는 의외로 의연했다. 형아가 하는 건 자기가 못하는게 당연하다는 경험적 진리 덕분이었다. 그러다가 -아마도 어린이날이었는데- 누나 형아 아빠 셋이서만 자전거타고 한강에 다녀오자 내내 우울했다. 대신 막내는 나랑 차를 타고 한강에서 다녀왔는데, 이 수다쟁이 녀석이, 돌아오는 길에 단 한마디도 안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막내도 데리고 나가 가르치기 시작했다. 


막내는 형아와 달리 내게 무척 의지했다. 첫날 자전거를 잡고 30000보를 걸었는데, 밤에 무릎이랑 발바닦이 몹시 아팠다. 다음날 15000보를 걸었다. 그때서야 5미터 정도를 가는데 성공했다. 그 다음날 자기보다 늦게 시작한 앞집 형아가 자전걸 탄단 소리를 듣더니 갑자기 혼자서 스타트까지 성공하고 오후엔 턴도 했다. 그렇게 막내도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보름정도 지났는데 지금은 날래게 잘 탄다.   


아이들이 걸음마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세상에 직립보행은 다 하는 것이건만 내 자식이 두발로 걷는 건 어쩜 그리 대견하던지. (그리고 저 스스로도 얼마나 기뻐하는지.) 자전거를 타는 순간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나 없이도 할 수 있는 게 생겨나고, 나보다 훨씬 앞으로 달리게 될 일이 많아지겠지, 라고 "엄마 먼저 가 있을 게"하고 씽- 지나가는 아이들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며 생각한다. 


나도 자전거 연습을 하고 있다. 애들처럼 빨리 몸에 익진 않고 겁도 많아서 쉽게 안 는다.막내는 "엄마랑 다 같이 한강에 가는 게 소원이야"라며, 응원의 말을 쫑알대면서 따라다녀 주었다.  동네 쑥쓰럽긴 했지만 연습끝에 그래도 두발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돌 수 있게 되었고 어제는 턴까지 성공했다. 스스로도 엄청 기뻤다. 그리고 왠지, 우리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어진다. 나도 이제 자전거 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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