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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토 Apr 27. 2020

오랜만의 외출

후배

후배가 결혼했다. 이 시국에 결혼식이라니. 하지만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2월 이후에 나 혼자 어딘가 외출을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신부만큼 설레었던 것 같다. 


친하게 지내는 다른 후배에게 한시간 더 일찍 오라고 했다. 마침 시댁에서 올라오셔서 점심을 챙겨주신다고 하시기에, 나는 두시간 일찍 갔다. 책을 보고 앉아있자니 후배가 들어왔다. 꽃핑크색 바바리를 입고. 평생 입을 생각도 못한 컬러. (그날 나는 검정 자켓) 그밖에도 그 후배는 나와 참 다른 점이 많다. 매사에 당당하고, 확고한 의견이 있고, 주저함이 없다. 이상형도 정반대. 후배는 결혼을 안 해서 사는 모양도 정반대. 후배가 아니고 선배였다면 내가 견디지 못했을 간극이다.


심난한 회사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키친타올이 어디있지?"  "키친타올 없어. 다썼어." 전화를 끊고 후배를 얼굴을 보니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그런 것도 대답해줘야 하는군요." "어..." 잠시 후 부엌가위가 집에 하나밖에 없냐고 또 전화가 왔다. 어... 왜 이 때 키친타올도 없고 부엌가위도 하나밖에 없지? 왠지 억울했다.


이런 저런 회사 이야기 끝에 후배는 코로나땜에 여행을 못 가는 대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는 요새 둘째 아들이 피아노에 재미붙였다고 대답했다. 나로 얘기하면 자식으로 대답하고. 사생활의 영역에서, 그렇게 우리 대화는 어딘가에서 겉돌았다.


그러다 시간이 되어 우리는 같이 결혼식장으로 갔다. 신부에게 인사하고, 신부 입장을 보고, 연회장으로 가서 밥을 먹었다. 둘 다 사진은 안 찍었는데, 그 점만은 우리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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