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가까이서 바라보기
다관 앞으로, 솥 앞에서, 냄비를 바라보며 우리는 잠시 침묵합니다. 인스턴트가 아니라면 맛을 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Lawrence Weiner 역시 말을 하기에 앞서 잠시 뜸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예술성을 감추는 것으로서 예술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2012년 런던의 Lisson Gallery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서 우리는 특정 문화의 맥락이나 개인의 세계관 앞에 서지 않습니다. 벽에는 광고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활자로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어구가 박혀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인지합니다. 공간이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도대체 ‘This As That(저것처럼 이것)’ ‘Be That As It May(되는대로)’이 무슨 뜻이지?
프랑스 아를의 원형 경기장에서 전시된 <To the Moon via the Beach>에서 작가의 작품 <& Then Untended As…>는 관객 앞에서 좀 더 침묵을 오래 유지합니다. 작가는 전시에대해 “채소와 치즈가 아니라 해변과 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달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죠? 달로 보내진 모든 것은 추락하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불시착륙한 UFO 마냥 모래성 위에 던져 놓은 CD를 집으로 가져갑니다. 어느 날 덩그라니 놓여있는 반짝거리는 공 CD를 보고 생각하겠죠. ‘대체 이게 뭐람!’
작가는 수수께끼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단지 아무도 당신에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은 무엇일 뿐입니다. 예술이란 아무도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야 합니다. 예술은 부유하는 것들입니다. 자신이 속하는 곳을 찾으려고 노력하지요... 그것이 그것의 기능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찾는 순간, 그래 여기가 맞아, 논리적으로 이 길이야 할 때는 역사가 됩니다. 거기에 배움은 있지만 그것이 더는 예술이 아닙니다. 여전히 존재 이유를 찾고 있는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그냥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 뿐이에요. 대부분의 시간 거기에 가치가 있는 것을 알고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젊은이와 같이 그것의 위치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는 것뿐입니다. 사회에 유입되면 어떻게든 그것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게 됩니다. 신만이 그것을 알겠지요.”
소비를 향해 달려가는 대중문화의 감상에 지쳐있다면, 예술을 통해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저는 그것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동시대 미술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예술사적 맥락을 생각해보기도 하였지만 이어지는 질문들 안에서 제 삶에 문제들을 생각해보는데 더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규정되지 않는 것에 불안해하며 더 많이 판단하고 짐작해 그 가능성을 묵살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보았습니다.
Lawrence Weiner의 작품은 우리를 생각으로 이끕니다. 잡다한 생각이 많은 것은 좋지 않겠지만 또 어떤 생각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예술이란 일상에 부차적이지만 인간답게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기르기 위해 예술을 통해 사유하는 연습을 합니다. Lawrence Weiner는 그 길에 표지판을 세워두는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