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의 이야기>
• 나는 절망하지 않기 위해 내 안의 우울을 이해하려고 한다
장맛비가 계속되고 있다. 어제는 온종일 잠을 잤다.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내리고 노래를 듣는다. 감상적인 상념이 나를 좀 더 깊이 사유하게 한다. 나는 절망하지 않기 위해 내 안의 우울을 이해하려고 한다.
한동안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다시금 떠올리고 곱씹었더랬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 성내고, 남을 탓하고, 상처를 받고… 나를 가로막고 있는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에 대해 의문했다. 거기엔 물론 필요하지 않게 느껴지던 인연들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세상에 구역질이 났다. 모순덩어리의 세상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시선을 내 안으로 돌리게 되며 이따금 찾아오는 허탈감이 나를 괴롭힌다. 내 안에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아이를 바라보며 부끄러워진다. 가슴에 느껴지는 쓰라린 통증. 잠에서 깬 어두운 방이 공허하다.
나는 무엇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법을 몰랐다. 나의 가벼움은 섣부른 선택들로 이어졌고, 원하지 않는 만남들로 이어졌다. 많은 곳을 헤매보았지만 그것을 자유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상대를 진심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우정을 나누기 위해 나는 혼자가 되는 법을 연습한다. 한 자리에서 지금, 여기, 숨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는 인간이고, 나의 감성은 연약하다. 후회와 불안으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 간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어린아이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독인다.
타인의 기대와 사회의 관념들에 의존해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다. 노력해보지만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결국은 자신에게 충실해지려는 노력이 진심이 아닐까.
• 화에서부터 슬픔까지 알아차린다
뜻밖의 일을 만난 마음은 길을 잃고 방황한다. 의기소침하다가 폭발한다.
분하고, 답답하고, 치욕스럽고, 인정할 수 없어 화를 낸다. 상처가 난 마음은 슬픔에 빠진다.
화에서부터 슬픔까지 억울한 심정이 반영되어 감정의 소리를 내고 있다. 억누르지 못한 감정들의 표출. 짐짓 충만되지 않는 욕구가 내는 성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치를 떨며 소리를 치고,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르고, 정신적 고통이 지속되고 마는 그런 감정이다. 언제까지 그럴 수만은 없으니 화가 났구나, 슬픔이 찾아오는구나, 알아차린다. 벗어난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한 발짝 벗어나면 그 안에 맨발로 뛰어들지 말아야겠다고 본다. 내가 소용돌이의 안과 밖을 선택해 서 있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 잠잠하게 아무말도 하지 않네
당신의 沈默.
오랜 움추림에
가슴 속을 파고들어
극적인 자연의 선율에 반응하는
뜨거운 눈물 한줄기,
여기에 닿아보려고
파악되지 않는 더 깊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도.
마주하고 앉아 마시는
뜨거운 차,
오고가는 침묵.
열정
그리고 따라오는 냉정,
마음과 몸을 분리해 살지 않는 천성과
그에 못지 않는 의지에 의해서
그렇게 살아가고
그것이 길이 되어주지.
• 진심의 종자
종종 착하지 않아도
매일 정직하게
진심의 종자를 심으며
살아가고싶어.
더 깊은 진실은
고독 속에 있지만
그만큼
기만이나 가식으로 쉽게 더럽혀지지 않거든.
• 安
할 말이 없을 땐 침묵.
확신이 서지 않을 땐 멈추기.
마음과 몸을 분리하지 않을때 편안하다.
• 선함 언저리 풍경
역시나 어려운 일이지만서도 그 의미를 들추어보기 위해서라면, 내가 얼마나 착해질 수 있는지는 가늠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얼마나 선해질 수 있는지까지는 좀처럼 가늠이 안 된다.
그 깊이가 아득하여 쉽게 헤아릴 수 없게 느껴진다. 착하다는 것은 보다 행동에 관한 것이며 선하다는 것은 보다 마음에 관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착한 아이가 되어 친절을 베푸는 일은 상대가 마음에 없어도 나의 예의 바름을 강조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태도이지만, 때때로 선량함으로써 나와 다른 세계를 거슬러 올라가기도 해야 하는 선한 진심은 쉬이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의 차이를 대화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자꾸만 마음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착하게 굴어도 속수무책인 사람 앞에서는 손을 드는 게 정당해 보이지만 선함으로써 겪을 수 있는 억울하고 쓸쓸한 기분은 용기를 내는데 주춤하게 한다.
오후에는 서점에 간다. 걷다 걷다, 선하게 자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어 간다.
폭풍이 올는지 해는 쨍하지만 바람은 서늘하다, 너는 여름 더위를 선량하게도 누그러뜨리는구먼.
서점에 도착해서 신간 에세이집을 훑고,
싸가지고온 미싯가루를 마시며,
창밖으로 몰려오는 먹구름을 보고 서 있다.
비둘기들의 선한 날개짓이 마음에 쓰인다.
• 간소한 식사
아침은 죽 또는 누룽지와 찐 채소를 먹고, 점심은 잡곡밥과 양념 반찬으로 하루 중 가장 든든하게, 저녁은 미숫가루나 두유를 마시고 있다. 허전하다면 볶은 콩이나 귀리를 씹기도 한다. 소화가 쉽고 위와 장에 쉬는 시간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습관은 나에게 건강 외에도 먹는 일에 쏟는 에너지와 시간을 절약 할 수 있어 좋다. 비슷한 식단을 규칙적으로 먹음으로써 수시로 먹을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필요한 하루 양을 정해 놓은 시간 안에서 조절한다.
• 밥을 먹을 땐 밥만 먹는다
숟가락을 들면서 숟가락을 드는구나,
밥을 뜨면서 밥을 뜨는구나,
음식을 씹으면서 음식을 씹고 있구나,
지금 여기에서 하는 행위에 집중함으로써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핸드폰을 보거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은 무엇을 먹는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관심을 두고 생각을 키워나가지 않는다.
소리가 들려 쳐다보게 되면 고개를 돌려 다시 나의 밥상으로 돌아온다
생각이 머리에 스치면 더 깊이 생각하지 말고 다시 나의 밥상으로 돌아온다
어느새 지난번 밥을 먹으러 갔던 식당이라든지 밥을 먹고 할 일에 대해 생각하는데 빠져있는 자신을 알아차리면 내가 다시 지금 여기를 벗어났구나 알아차리고 다시 밥상으로 돌아온다.
음식이 맛있거나 짜다고 의견을 붙여 분별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 나를 지켜보는 일이다
지금 숟가락을 드는구나, 밥을 뜨는구나, 음식을 씹는구나,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머문다.
도인은 이렇게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고 한다
지금 여기에 현존한다는 것이 이런 뜻이라고 한다.
• 반짝반짝
이곳은 외길을 따라 들어와야 하는 산속 깊은 마을이다. 밤이 깊어지기 전 잠을 자고 풀벌레와 닭 울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보다 고요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직도 많은 생각들을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장마철이라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짙게 깔려 있다. 따뜻한 곡물로 아침을 먹고 잡일을 한다.
풀도 뽑고, 빗질도 하고, 빨래도 할 수 있다. 잡초를 뽑던 사무장님이 씨가 날라와 마음대로 자라난 꽃을 한 줄로 옮겨 심어 주었다.
메리골드라고 부른다고 한다. 손질된 화단 앞에 서서 나도 그 이름을 불러본다.
커피를 내리고 지난 밤에 쓴 나의 글을 읽어본다.
그사이 생긴 거리감으로 생각하는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인정받지 못해 상처받고 조급한 마음에 불안해하는 내 안의 성내고 욕심내는 아이를 쓰다듬어 준다.
선방에 앉아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느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점심으로 쌀밥과 두부, 여름 김치와 채소로 소박하게 먹는다. 많은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으로 행복해진다.
비가 내리는 날은 좀 더 한가롭다. 숲속의 녹음을 가로지른다. 잎에 보석이 맺혔다.
• 언덕을 올라가는 스님의 뒷 모습
주말의 막히는 길을 뚫고 집에 다녀오신 사무장님이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선원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깨끗해진다고 말씀하신다.
오늘은 자율정진 날이라 선원이 더 조용했다. 나는 종일 멈추었다 내리길 반복하는 비에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커피를 서너 잔이나 내려 마시며 듣고 싶은 노래 몇 개를 반복해서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저 멀리서 우산을 쓰고 여러 개의 긴 다리로 걷는 곤충처럼 산뜻해 보이지만 소리가 없어 어딘가 기이해 보이는 모습으로 언덕을 올라가는 스님의 뒷모습을 보았다. 별 풍광이라 할 게 아니었는데 마음이 평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