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의 이야기>
• 사랑을 사랑
공동체 생활은 때때로 시간을 온전히 자신에게만 쏟을 수 없어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효율을 따지면 낭비되는 것들을 용납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간에게 관계는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존재는 관계를 통해서만 증명된다.
물건에 대한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삶 속의 관계에 오롯이 존재하기 위해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한다. 그리고 단순해진 생활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시간을 갖고 마음을 들여다본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공감하는 우정을 그리워한다.
인간관계는 행복뿐 아니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서로를 성숙시키는 관계를 위해 우리는 마음을 솔직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이해하면 상대도 두려움 없이 다가올 수 있다.
많이 가지거나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마음이 작을수록
더 큰 충만이 있음에 대한 공식.
내린 비로 수분을 머금은 초록을 따라 산책하며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을 공식화하는 일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손해 보지 않고 더 많이 누려보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는 그 가치들을 꿰뚫 수 없었던 것이다.
세상의 배신과 실패 속에서도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하나가 모든 것을 무력하게 한다. 나는 숨과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당신도 영원하지 못한 사랑을 사랑하는가?
• 모든 것의 소중함
채운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빈 것을 원하는 마음이 드러나고,
가치를 따져보는 과정은
나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기분.
그런데 알고 보니
보다 낳은 것을 찾는 당연한 나의 마음을
나는 스스로 너무 괴롭히고 있었나 보다.
욕심내고 성내는 일 보다
감사하고 아끼며 환희한다.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아 주고
쉬움과 어려움은 서로를 이루어 주며
길고 짧음은 상대를 드러내 주고
높고 낮음은 서로를 닿게 하며
음과 소리는 화답하고
앞과 뒤는 서로를 뒤따른다."
법정스님
• 아침 안개가 화창한 오후 날씨를 예상해준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로 어지러워진 마음을 깨끗이 한다.
고요해진 마음이 불필요한 생각들을 알아차리면 훌훌 털어내고 싶어 한다.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알고 행복을 행복으로 알 때 지혜가 드러나듯 아침 안개가 화창한 오후 날씨를 예상해준다.
• 미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가장 큰 이유
관계 속 미움은 일방적인 감정이지만 미워하거나 미움을 당하는 사람 모두를 고심참담하게 한다.
미움 때문에 타오르는 마음은 전전긍긍 불안해 하고 있다. 불안은 악으로 쉬이 번져버린다.
그래서인지 미움은 보다 은밀히 이루어지나 보다.
미움이 당당해지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명되어 버리고, 둘은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 간다.
미워하기 시작하면서 굳어진 인상은 미운 사람의 숨 쉬는 모습만 보아도 정이 툭툭 떨어지게 되어버리고 그런 미움을 받는 사람은 서럽고 억울하고, 결국 미워하고 미움을 받는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에 악업을 쌓고 있다.
미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타인에 대한 선한 마음을 일으키기 이전, 자신의 마음을 편안히 하고, 마음에 대해 떳떳해지고 싶기 때문이겠지.
응, 스스로를 위해, 미움이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이유는 사실 상대로부터 미움이 일어난게 아니라
내 안의 열등감과의 싸움이었단 걸 바라본다.
나에게는 편지를 썼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편지가 읽히지 않은데에 안도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미 써 내려간 편지가 두렵다. 구겨진 종이에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한 어머니에 대한 글을 솔직히 쓸 수 없음>” 이 적혀있었고,
그건 손톱 정리를 하다가 살점까지 잘라낸 쓰라림이었다.
•
낯짝이 두꺼워 수치를 모르고
뻔뻔스럽고 어리석고 무모하고
마음이 때묻은 사람에게
인생은 살아가기 쉽다.
수치를 알고 항상 깨끗함을 생각하고
집착을 떠나 조심성이 많고
진리를 보고 조촐히 지내는 사람에게
인생은 살아가기 힘들다.
<법구경 244~245>, 법정스님
• 오늘은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다
선방에서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쏟아지는 잠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다리가 저리도록 앉아있지 않는다.
앉아있는 일이 힘들어지면 걷기 수행을 이어간다.
그리고 문득 같은 뜻을 말하고 있지만, 절제라는 표현은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다.
미니멀라이프의 본질에 충실한 집착을 이겨내는 생활을 실현하고 싶다고 하여도 스스로에게 매정하게 굴 필요는 없었다...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해로움을 이해하고 내려놓으면 된다고 한다.
스님께서는 “물질과 정신의 법들이 괴로움임을 꿰뚫어 알면 그것들이 집착할만한 가치가 없음을 꿰뚫어 알 수 있음으로 해로운 법들이 버려진다”고 경을 펼치며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나는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가 멸진한다고 말하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에게 번뇌가 멸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알고 보기 때문에 번뇌가 멸진하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알고 보기 때문에 번뇌가 멸진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알고 보기 때문에 번뇌가 멸진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알고 보기 때문에 번뇌가 멸진한다.”
[번뇌의 멸진 경] (S56:25)
오늘은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다. 순간순간 자신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려는 노력으로 충분해.
그러다 들뜨고 후회하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마음의 욕심과 성냄, 어떤 작용이 나를 이끌고 있는지 알고 미소 짓는다. 중도 수행은 벗어남의 행복이 함께하므로 처음도 행복하고 중간도 행복하고 끝도 행복한 수행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