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빠의 신기루 체험

<나의 출가 이야기> 프롤로그

by Jei



운명이라고 믿는다. 애타는 마음으로 행복을 찾았다. 나에게 집은 아버지의 침묵과 어머니의 히스테리를 의미했다. 부모님의 사랑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는 억압과 긴장 속에서 사랑이 잔인할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조차 나는 희망과 절망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내가 처음 집을 나올 수 있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다. 여름방학 동안 미국으로 여름학교를 갔다가 입학서를 받아와 계획에 없던 유학을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입시 미술을 시작해서 예술중학교에 입학했고, 그때부터 나에게는 학교와 학원,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시험점수가 인생의 전부였다.



사립 예술고등학교의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학교의 친구들 역시 결함 가정이 대부분 이었고, 자살 사건이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일어났다. 내 방짝도 내가 자고 있는 동안 약을 한 웅큼 삼키고 병원에 실려 갔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만의 자유 또한 누렸다. 나는 장난과 같은 사랑에 종종 빠졌고, 예술이라는 표현의 도구를 배웠다. 그림으로 내 안의 고독을 표현하고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완전한 사랑을 갈망했다. 학부 졸업 전시 작품은 조건 없는 사랑의 의미를 쌀과 거울, 부처의 얼굴로 표현한 입체 회화였다.



직장생활을 하는 어머니는 졸업 후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학비와 생활비를 넉넉히 보내주었다. 그러나 나는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회생활을 견뎌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일 년도 안되는 생활을 마치고 지방으로 직장을 얻었다. 그림으로 생활을 하고 싶었고, 그동안 여러 차례 인도로 장기 배낭여행을 떠나며 눈을 뜨게 된 삶에 대한 태도를 내세웠지만, 사실 정말로 가능하게 했던 건 신념을 구현해 보겠다는 것보다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는 강한 의지였다.



나는 슬펐다. 내가 서 있는 곳을 끊임없이 혐호하고 막연한 세상을 헤매는 일은 피곤했다. 영원한 사랑을 찾아 떠났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다. 하지만 언제나 많은 고민이 따르지는 않았다. 내 안에는 후회하고 불안해 하는 우유부단한 성격과 동시에 미련 없이 떠나고 쉽게 사랑에 빠지고 마는 나 역시 있었다. 상처 받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한국으로, 도시에서 시골로, 한국에서 태국으로, 태국에서 독일로, 독일에서 한국으로, 집에서 절로, 절에서 집으로 -알고 보니 그렇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찾고 있던 것이 신뢰가 있는 마음의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장소의 집은 별 의미가 없었다.



일기를 쓰듯 글을 모은다. 너무나 이기적인 독백일까… 블로그를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공유한 문장들이 새로운 인연을 맺게 해주었다. 다른 장소, 다른 사람, 다른 생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출가를 거듭하고 계속해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갈대 같은 마음이 운명적으로 겪는 사건은 꽤 드라마틱하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그리고 한 사람이 이렇게 성장해 가는구나, 누군가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FROM. jei







*
이제 그것은 그저 일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짜릿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땠는지 기억합니다.
불확실성이 있었습니다. 희망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뭔가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슬픔이 있었습니다.
삶은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내 가슴에 극심한 고통, 찢어지는 듯한, 짓이겨지는 고통조차 의미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것은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었습니다.
완벽한 항복, 철저한 버림,
완전한 이해와 완전한 용납,
하나가 되고 싶은 둘의 갈망,
계획되지 않고 계산하지 않은 자연발생적인 뭔가.
그것을 가졌을 때
나는 뭔가가 빠져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빠진 것은 무엇입니까?
알고는 있지만 정의 내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꿈꾸기만 하는 무엇인가요?
손에 닿지 않을 때에는 너무나 완벽해 보였습니다.
막상 손 안에 들어오고 나니 뭔가 빠져있습니다.
신기루.



<여름에 내린 눈> 우 조티카 사야도 저 & 위무띠 법주 스님 역, 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