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깊어가는 자리에서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길이
요즘 부쩍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도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연두색 새순이 돋고,
길 양편으로 진달래와 철쭉이 붉고 분홍빛으로 번져간다.
노란 산수유가 봄의 문을 열어젖혔고, 그 뒤를 이어 벚꽃이 서둘러 꽃망울을 터뜨리며 바통 터치를 준비하고 있다.
나무와 꽃들은 그렇게 말없이 계절을 받아들이고,
제 자리를 지키며 조금씩 변해간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저 나무들처럼 담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오랜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거창한 자리를 마련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함께 점심을 먹었다.
불판 위에 올려진 제육볶음이 지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별말 없이 밥을 먹었다.
숟가락을 놓고 나서야 비로소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 고생했다는 말, 잘 될 거라는 말, 또 보자는 말.
말이 많으면 오히려 가벼워진다는 걸,
나이가 들수록 더 알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나눴다.
천천히 마셔야 하는 커피다.
따뜻한 김이 올라오다 어느새 잦아들고,
온기가 손바닥에서 조금씩 빠져나간다.
식어가는 커피잔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 아쉬움이란 것도 이렇게 식는 것이구나.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시간은 스스로 정리를 한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오래된 말이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그 말이 위로가 된다.
봄은 이별을 슬프게 만들지 않는다.
꽃이 지는 것을 비극으로 여기지 않듯,
사람이 떠나는 것도 계절의 한 장면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변화는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 변화 속에서, 또 다른 인연이 시작된다.
오늘의 커피 한 잔은, 오래 남을 것 같다.
#봄단상 #이별과만남 #직장생활 #퇴직 #회자정리
#중년의생각 #커피한잔 #삶의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