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상태에서도 책임지는 법을 배웠던 시간 (43)

by Jace

요즘 들어 문득문득

“직장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그 다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화려한 성과보다 더 또렷하게 남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는 30여 년 전, 한 프로젝트가 그렇다.


1996년 말, H사 재경본부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연말 조직개편으로 팀 내 보고라인이 크게 흔들렸고

직속 사수와 파트장은 모두 이동했다.

팀장은 새로 부임했으며,

나는 해외투자파트에 홀로 남아

이미 CEO 승인이 끝난 인도 단독 투자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프로젝트는 단순하지 않았다.

인도 첸나이 공장 기공식 일정에 맞춰

캐나다 부르몽 공장의 생산설비를 해체해 인도로 이전하고,

1997년 초 현지 공장 건설 일정에 맞춰

그 설비들을 재설치하여 재활용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한국수출입은행의 특혜금융,

인도 정부의 EPCG 제도에 따른 무관세 혜택까지 연계된

당시 기준 약 4천억 원 규모의 사업이었다.


나는 대리 승진을 앞둔 말년 사원이었고

중간 관리자의 실무 가이드는 없었다.

경험도 부족했고, 판단 역시 지금 기준으로 보면 미숙했다.

솔직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선택지는 분명했다.

결국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절박한 심정으로

밤늦게까지 관련 자료를 뒤지고

제도와 계약 구조를 공부하며

하나씩 스스로 정리해 나갔다.


결과적으로 프로젝트는 일정에 맞춰 잘 마무리되었고,

신임 팀장과 임원으로부터 과분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수확은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정답을 알고 있어서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상태에서도 계속 찾아보고 연구하며

끝까지 책임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조직에서 신뢰를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경험과 성과를 계기로

1997년 초 회사 지원 해외 MBA 유학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같은 해 가을 IMF 외환위기가 닥쳤고

그 프로그램은 전면 중단되었다.


좌절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결국 1998년, 대리 승진을 앞두고

외국계 컨설팅 회사로 이직했다.

스스로 유학 자금을 마련해 보자는

현실적인 판단이었고,

또 다른 배움의 시작이었다.


컨설팅 업계에서 14년 넘게

FCM(재무·원가관리) 분야의 BPR, PI 및 ERP 구축을 넘어

SEM(전략경영), SCM, CRM 등 다양한 경영혁신 과제를

수행했다.

해외 유학의 타이밍은 놓쳤지만

직장과 병행하며 국내 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이후 컨설팅 업계를 떠나

다시 패션 대기업으로 돌아와

팀장급 관리자와 실장급 준임원을 거쳐

본부장급 임원이 되었고,

현재는 패션 중견기업에서

오너 대표이사를 보좌하며

경영 전반을 폭넓게 맡고 있다.


지금 되돌아보면

처음 계획했던 경로를 그대로 따라온 커리어는 아니었다.

외부 환경의 급변과 개인적 선택,

예상치 못한 좌절이

여러 번 방향을 바꾸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선택의 순간마다

지키려 했던 태도는 같다.

도망치기보다는 배우려고 했고,

회피하기보다는 책임지려고 했다.


비록 첫 직장을 떠났지만,

당시 나의 노력이 밀알이 되어

인도법인이 크게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지금도 묘한 뿌듯함이 남아 있다.


이제 직장생활의 후반부에 접어들며

화려한 성과보다

조직과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무리를 더 많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현직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직장생활 이후의 인생 2막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에

아쉬움은 여전히 크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언제까지일지는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직장생활의 시간만큼은

그때와 같은 태도로

일 앞에서 도망치지 않으며,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마무리하고 싶다.


*EPCG(Export Promotion Capital Goods):

인도 정부의 수출 조건부 설비 무관세 도입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