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내려오는 지시는 대부분 선의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지시를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은 언제나
생각보다 복잡하다.
이 글은 AI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지시와 현실 사이에서 실무자가 마주하게 되는 고민과
판단의 무게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글은 AI를 반대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AI가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상황은 이렇다.
40대 중반의 오너 2세가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AI 도입 성공사례들을 듣는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우리 회사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내부에서는 이런 걸 검토하거나 시도하지 않았지?”
회사에 돌아온 그는 관련자들을 소집한다.
그리고 본인이 들은 성공사례를 기준으로,
우리 회사에도 AI를 도입해 보자는 지시를 내린다.
실무자들이 지시 내용을 차분히 검토해 보니,
현실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초기 투자비는 크고, 전담 인력이 필요하다.
회사의 재무 상태를 고려하면 결코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예산의 규모가 아니다.
더구나 성공사례로 언급된 회사와 우리는 업종도,
사업 구조도 다르다.
그들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으로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여기에 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우리는 2년 전 구조조정을 거치며,
매출 부서가 아니라는 이유로 디지털 분야 인력을
상당 부분 감축했다.
현재 인원만으로는 신규 AI 프로젝트를 전담할 인력을
배정하기 어렵고,
진행 중인 이슈에 대응하며
현행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빠듯한 상황이다.
지시는 분명하다.
불이행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이행하기도 쉽지 않다.
지시를 내린 이면에는 분명
‘회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 싶다’는 전제가
깔려 있을 것이다.
그 의도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다만 실무 검토를 통해 확인된 내용은,
해당 방식이 ‘지금 당장’ 회사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가깝다.
그래서 선택한 방향은 이렇다.
확인된 사실과 현실적인 제약을 설명하고,
지시한 내용과 형태는 다르지만
회사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현실적인 AI 활용 방안과
단계적 추진 계획을 제시한다.
전면 도입이 아니라,
현재의 인력과 재무 여건에서 감당 가능한 범위부터
시작하자는 접근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시사항을 기계적으로 따르다 보면,
의도와 달리 예산과 자원을 낭비하고
오히려 회사에 부담을 남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금력이 충분한 대기업이라면
미래를 위한 R&D 비용으로 감내할 수 있겠지만,
중견기업에게는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꽤 큰 부담으로 남는다.
문제는 지시를 따르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시의 본질을 고민하지 않은 채
형식만 따르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오너의 지시와 현실 사이에서
실무자가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