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못 마셨지만, 마음만은 취했던 밤 (58)

by Jace

벌써 또 한 주가 훌쩍 지나갔다.

월요일 아침은 오너 회장 주간보고로 시작했고,

그 뒤로는 숨 돌릴 틈 없이 일정이 이어졌다.


오산 물류센터 첨단화를 위한 스마트 물류 업체 미팅 두 번,

본부장급 임원들 운영위원회,

오너 사장 지시사항 팔로업 보고,

법적 분쟁 관련 로펌 미팅,

중간중간 끼어드는 수시 보고까지.


내 직속 임원 둘과 팀장들 주간회의를

두 번이나 마치고 나니

어느새 금요일 저녁이 되어 있다.


그 와중에 수요일 밤,

개인적으로 꽤 기분 좋았던 자리가 하나 있었다.

예전에 호흡이 아주 잘 맞았던 아래 직원 한 명.

지금은 타사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친구다.

그리고 현재 내 밑에서 일하고 있는 부장급 두 명.


마침 그 두 명이 최근 나란히 승진을 했다.

겸사겸사 축하 자리를 가졌다.


1차는 횟집이었다.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무알콜 맥주로

분위기만 살짝 맞췄다.

싱싱한 숭어와 광어 회는 말할 것도 없었고,

오랜만에 얼굴 보며 웃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시간이었다.


2차는 꼼장어집.

꼼장어를 꽤 먹어봤다는 일행의 말대로

가격은 조금 있었지만 재료는 최상품이었다.

확실히 맛은 있었다.

서비스로 나온 생 간은

비위 좋은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후루룩 넘겼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수록

맨 정신으로 술 취한 분위기를 따라가는 일이

점점 버거워졌다.


적당한 타이밍에 먼저 일어나려 했는데,

승진한 두 친구가 혀가 꼬부라진 채

“저희 승진시켜 주신 분이

끝까지 함께하셔야죠”라며

나를 세게 붙잡는다.


결국 3차 치킨집까지 동행.

배는 이미 한계를 넘었고,

나는 여전히 맨 정신인데

일행들은 점점 더 취해 가는,

묘하게 고역인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명,

늦게 결혼해 아직 신혼인 친구가

조심스럽게 자기 집으로 우리 세 명을 초대했다.

요즘 사회 분위기가 일가친척이 아닌 누군가를

프라이빗한 자신의 신혼 집으로 초대하는게 흔하지도 않고,

특히 직장 상사는 더 어려울텐데 말이다.


결혼식 날 축의금만 전달하고

사정상 직접 가서 축하는 못 해줬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장가를 참 잘 간 것 같았고

아내를 참 잘 둔 것 같았다.


그 제안 하나로

그날 밤의 분위기는 꽤 달라졌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는데

아내 자랑은 잘 모르겠다.

아직 신혼이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만

듣는 내내 나쁘지는 않았다.


상하관계도,

직급도 잠시 내려놓고

정말 오랜만에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 앉아

두서없는 속엣말들을 꽤 나눴다.


일 이야기보다 삶 이야기,

계산보다 진심이 앞서는 대화.


피곤했던 한 주의 바쁜 일상 속에서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다.


사진 속 음식들처럼

과했던 하루였지만,

기억에 남은 것은

‘과로’가 아니라

‘사람’과

그날의 ‘진솔한 마음’이었다.


술은 한 잔도 마시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오랜만에 기분좋게 취해 있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