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둔 한 주였다.
유난히 정신없이 바쁘고 길게 느껴졌다.
사업부별 1월 재무실적 보고만 세 차례.
오너 회장 보고와 이어진 날 선 질문들.
숫자는 간결해야 하고, 설명은 명확해야 한다.
표 하나, 문장 하나에도 책임이 실린다.
그 사이에 정보보안 ISMS 인증 심사.
그리고 2025년 재무제표 회계감사까지 겹쳤다.
낮에는 보고,
저녁에는 정리,
밤에는 다시 검토.
야근이 이어졌다.
오십 대 후반이 되니
밤샘 근무는 확실히 예전 같지 않다.
젊을 때는 가끔 밤을 새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몸이 먼저 말을 건다.
“이제는 좀 조심하라”고.
그래도 끝은 온다.
회계감사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감사에 참여한 회계사 세 분,
그리고 회계팀 직원 세 명과 저녁을 함께했다.
포항 요리 전문점이었다.
막회와 과메기, 그리고 아귀 수육이 상에 올랐다.
며칠간 숫자와 문장으로만 마주하던 사람들이
따뜻한 국물을 앞에 두고 비로소 웃기 시작했다.
그날의 베스트는 단연 아귀 수육.
부드러운 살과 개운한 국물.
긴장이 풀리는 데는
거창한 위로보다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면 충분했다.
2차는 맥주 전문점.
벽에 걸린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난 네 편이야.”
“쓰담 쓰담.”
괜히 마음이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평소 자주 지나는 반포대교 야경이
대형 모니터에 떠 있었다.
늘 보는 풍경인데도
그날은 유난히 다정하게 느껴졌다.
나는 알콜 알러지 때문에 무알콜(0.0%) 맥주로 기분을 냈다.
일행들은 생맥주를 여러 잔씩 기울이며,
얇은 피자와 먹태, 노가리, 취포, 그리고 반건조 오징어를
안주로 곁들였다.
대화가 무르익어 갈 즈음 갑자기 MBTI 이야기가 나오자
각자 예상과 다른 유형에 놀라며 웃음이 터졌다.
회계감사 기간 내내
우리는 서로를 ‘직책’과 ‘역할’로 불렀다.
그날만큼은 이름으로 웃었다.
밤 10시가 넘어 자리를 마쳤다.
다음 날 점심은 콩나물국밥으로 속을 달래고,
디저트는 아포카토로 마무리했다.
치열했던 한 주의 끝.
생각해 보니
나를 버티게 한 건
성과도, 숫자도 아니었다.
함께 고생한 사람들,
따뜻한 국물,
그리고 네온사인 속 한 문장.
“난 네 편이야.”
그 말 한마디면
다음 보고도,
다음 회계감사도,
다음 한 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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