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씨 Jun 20. 2024

넌 충분히 지금도 괜찮아.

현재에 머무르려고 노력하는 마음

[2021.09.16]


조심스레 고백하자면, 저는 사람과의 관계가 늘 어려웠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있었던 붉은색 모반 때문이었을지 아니면, 소심한 성격 때문이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건 좀처럼 친구들 사이에 섞이기 어려웠다는 점이었습니다. 또래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제 얼굴을 보면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습니다. 대부분의 말들은 걱정과 위로, 격려였지만 사람들의 좋은 의도와는 무관하게 오점이 있다는 것을 계속 확인받는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왜 나는 남들과 다르게 생겼을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하지 못할 때, 무력감이 함께 커졌습니다. 털어내지 못한 질문들이 마음속에 먼지처럼 쌓일 때마다, 저는 그 해답을 미래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신에게 하는 기도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기도는 일종의 자기 암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기도의 주된 내용은 "미래에는 꼭 행복해지게 해 주세요."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만 가면,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에 가면,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에 가면 모든 상황이 괜찮아지기를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제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때마다 말이 나오지 않았고, 머리가 새하얘졌습니다. 여전히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했으며, 많은 친구를 사귈 것이라 기대했던 대학생활에서도 친구를 사귀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기대와 소망이 계속 좌절되자 저는 그 무엇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없었고, 기도하는 일도 그만두었습니다.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던 20살의 봄, 저는 홀로 겨울에 남겨진 것 같았습니다. 수업 중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 강의가 끝나자마자 학교 뒤편으로 향했습니다. 혼자 울다 집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뜻밖에도 저를 위로해준 사람은 같은 교양 수업을 듣던 언니였습니다. 수업 외에는 따로 만난 적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언니는 제가 신경 쓰여 따라왔다고 했습니다. 언니와 저는 학교 뒤편의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던 이야기와 대학에 오면 좀 더 행복해질 것 같았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언니는 제 이야기를 묵묵히 듣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이 저와 같은 고민과 상황을 겪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혹시 치맥 좋아해?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면 치맥 하러 가자.”


언니는 교양 수업에서 대화도 몇 번 나누지 않은 저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치킨과 맥주를 사주었습니다. 맥주잔을 부딪치며 언니는 말했습니다.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충분히 지금도 괜찮아. 친구도 사귈 수 있고, 앞으로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을 거야."


충분히 지금도 괜찮다는 언니의 위로는 10대 시절부터 쌓여 있던 제 마음속 먼지들을 닦아주었습니다. 덕분에 기운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미래에 있지도 과거에 있지도 않고 오직 현재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도 제 마음이 현재의 감정들과 문제들을 외면한 채 미래에 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현재 저는 친구들에게 대인기피증이 있었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정도로 많이 밝아졌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언니의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노력 끝에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 요즘도 가끔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은 오직 '현재'를 위한 기도를 합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잘 보내게 해 주세요." 작은 읊조림이지만, 대체로 저의 기도는 이루어졌습니다. 때론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이전만큼 힘들진 않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로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아, 언니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잘 모르겠어요. 그때 언니가 해준 말과 행동들을 기억하고 언니처럼 꼭 다정한 어른이 될게요.)





+ P.S

이전에 사진 수업 때 진행한 과제의 주제가 "콤플렉스"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이 작업에서 메타포를 엉리본으로 표현했습니다.


엉킨 리본풀지 않고 방치하면 계속 엉키겠지만, 잘 풀어내어 예쁜 나비매듭을 지으면 선물 포장에 쓰이는 아름다운 장식이 됩니다.

콤플렉스를 나의 단점이 아닌 강점이 될 것이라 믿고 노력한다면 나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장식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꼬인 줄을 풀어 잘 묶어주면, 리본이 된다.

잘 풀어내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향을 만들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