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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청구서가 아니다.

SNS 생일알림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by 조은주

단언컨대 온 국민의 98% 정도는 사용하고 있을 노란색의 채팅어플.(정확한 통계치는 아니고 그냥 내 추측)


이 어플은 처음엔 심플했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단순한 기능만 있다가, 어느 순간 여러 가지 기능이 추가되더니 작년쯤인가? 부터는 매일 생일인 사람들을 알려준다. 그것도 내 프로필 바로 밑에, 못 보고 지나 칠 수 없는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선물하기 기능이 연결되어있으니 꽤 높은 매출로 연결되는 알림인듯하다.

이 기능이 추가됐을 때,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매일 생일자가 누구인지 알려줘서 좋다는 의견과 괜히 부담감을 주는 기능이라는 의견. 설정에 들어가 생일 알림 기능을 꺼버리면 간편하게 이 '부담감'을 없앨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쉽게 그렇게 할 수 없게 만드는 뭔가 불편한 마음이 느껴진다.


생일 알림에는 분명 순기능이 있다. 이 분주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 속에서,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을 알려준다는 건 너무 유용한 기능이다. 나도 몇 번이나 아차! 하면서 축하해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쿠폰으로 선물을 보내주었다. 또는 내 친구 목록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던 그 혹은 그녀가 생일을 맞이한 기념으로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와서, 그동안의 근황을 담은 프로필 사진을 넘겨볼 수 있는 기회? 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이 기능이 슬쩍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야 신나서 이 쿠폰, 저 쿠폰을 쏘아댔지만, 아이를 키우고 여러 가지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면서 매번, 그리고 매일 생일인 사람들에게 축하 선물을 보낸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일 알림이 청구서처럼 다가온 것이다.

어떨 때는 하루에 5명 이상의 생일자가 화면에 떠있어서 한참을 이들의 프로필 사진만 구경하다가 아무 결심도 하지 못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은 적이 있다.

그래도 축하의 멘트라도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왠지 내 마음은 결혼식에 축하하러 가면서 축의금을 안내는 하객의 심정처럼 뭔가 부끄러운 마음이다. 왠지 헛헛한 그 느낌.. 애엄마로 살아가면서 장문의 메시지를 남길 에너지도 없는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오늘 그 혹은 그녀의 생일이 이렇게 지나가버린다. 아.. 오늘도 결국 아무것도 못해줬네. 꼭 물질적인 것을 해줘야만 한다고 느끼는 내 성격 탓인 건가.


내 생일에도 이 알람이 어김없이 사람들에게 뜰 텐데.. 괜히 부담 주는 것 같아서 작년엔 내 생일을 지워버렸다. 슬프게도 내 생일날에는 단 2명의 사람들에게서만 축하 메시지가 왔다. 이게 현실이구나. 온라인에서 알람이 뜨지 않으면 누군가의 소중한 생일을 정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 나는 작년의 그 생일을 괜스레 씁쓸하게 보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이 생일 알림을 대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에겐 이런 질문이 참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 별거 아닌,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고민하는군. 그냥 무시하면 될 것을.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소중한 탄생을 무시하고 싶지 않다. 그 혹은 그녀가 이 땅에 태어나줘서 정말 고맙고, 행복하다는 것을 축하해주고 싶다. 또 그 생일자가 작년의 나처럼 쓸쓸한 생일을 보내지 않도록(다행히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줘서 덜 외로웠다. 그리고 그 2명의 사람에게도 너무 고맙다) 의미 있는 것을 해주고 싶다.


나는 곰곰이 나에게 의미 있었던 축하를 돌이켜본다. 미소와 함께 건네어진 작은 손편지.. 한 글자 한 글자 고민하면서 적었을 상대방의 마음. 그 글씨체.. 나에겐 기억에 남는 축하가 그런 손편지의 축하다. 내가 누구에게 어떤 선물을 받았고, 그게 얼마나 비싼 것인가 보다...

물건은 곧 사라지거나 익숙해져 버리지만, 마음을 담은 편지는 빛을 잃지 않고 오래간다.


생일 알림이 청구서로 느껴지지 않기 위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한번 해보려 한다. 생일인 사람의 특별한 장점 3가지를 잘 적어서 축하의 메시지와 함께 보내는 것이다. 또는 그 사람과 행복했던 기억이나 추억들.. 고마웠던 순간들..

넘치는 축하의 마음을 담아, 그이의 지친 일상에 차 한잔을 선물하고 싶다면 커피 쿠폰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혹은 그녀를 더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내 진심을 담은 감사와 격려 혹은 축하의 메시지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혹은 더 좋은 다른 방법이 있다면 저에게 알려주시라)


내일부터 다시 용기를 내봐야지.

쿠폰을 보내는 건 30초 안에도 할 수 있지만, 진심을 담은 격려와 축하의 글을 쓰는 건 조금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신경 쓰느라 머리가 살짝 아플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축복처럼 와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 정도 수고는 해줄 수 있지 않은가.


그동안 용기가 없어서 미처 축하하지 못했던 내 소중한 사람들이여.. 미안합니다. 내년엔 다시 용기 내보겠습니다.


글을 맺으며, 정현종 님의 시 한 편을 다시 되새겨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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