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앞에 선 소외의 감정 느끼기
최근 이사를 준비하며 동사무소에서 여러 서류들을 발급받을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다들 편하다고 하는 무인민원발급기가 계속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리 찍고 또 찍어도, 손가락에 입김도 불어보고, 침까지 발라보아도 기계가 지문인식을 못하는 것이었다.
내 뒤로 점점 길어지는 줄을 의식하며 열 번 넘게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때 조급했던 내 마음과 화끈거리던 얼굴.
다음부터는 더 정확하게 지문을 찍으리라!
아무리 굳게 다짐해봐도 무인민원발급기는 단호했다. 내 지문을 계속 거절했다.
결국 나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괜스레 민망한 웃음을 보이며 여러 장의 서류를 요청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원래 무인민원발급기가 지문인식을 잘 못하나요?"
음.. 잘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 집안일이나 고생 많이 하신 어르신들 지문은 잘 못 읽어요.
아차 싶었다.
나는 고생 많이 한 어르신은 아니지만, 20대 후반부터 시작된 결혼생활과 서른부터 열리게 된 육아의 문이 이 손을 닳게 했다는 것을 잊고 있었구나. 주부습진을 달고 사는 건조한 손이 집안일과 세월의 습격을 피해 갈 리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 새로운 지문을 등록해보려고 열 손가락을 다 찍어보았지만 모두 흐려서 안된다고 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동사무소를 나왔다.
그 후로 나는 무인발급기만 보면 시도하기도 전에 안된다는 생각이 들고, 내 손을 갖다 댄다는 것이 괜히 창피했다. 또 나로 인해 뒷사람이 혹여나 오래 기다리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못하는, 느리고 답답한 내가 서글펐다.
그러는 내 모습에
얼마 전 뉴스에서 보았던 패스트푸드 매장의 키오스크 앞에선 한 노인의 실루엣이 겹친다.
젊은이인 내가 보아도 복잡한 그 화면과,
무언의 압박이 느껴지는 대기 줄 앞에서
그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리고 그는 얼마나 서글펐을까.
키오스크는 노인의 두려움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것은 노인의 서글픔을 읽어주지 않는다.
그는 직원에게로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간다.
햄버거를 하나 먹고 싶어서, 주로 젊은 애들만 먹는 음식인 것 같긴 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해보고 싶어서, 때로는 이 음식이 내 입맛에 맞는 것 같기도 하다는 마음을 표현하러 간다.
하지만 그 직원의 얼굴도 차가운 키오스크 화면과 비슷하다. 그 노인은 마음 한켠에 서늘함을 느끼고는 애써 웃음 지으며 가게문을 나선다.
그런 모습으로 나도 무인민원발급기 앞에 서있다.
이 기계 앞에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자신의 지문을 여러 번 내밀었는가?
읽어내지 못하는 기계가 원망스럽기보다는
건조하고 투박한 손이 얼마나 더 원망스러웠는가?
무인민원발급기는 노인의 세월을 읽지 못했다.
학창 시절 엄마의 주민등록증과 내 것을 비교해 본 적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민증 뒷면에 엄마의 지문에는 흰색 선들이 이리저리 그려져 있었고, 내 지문은 비교적 선명했다. 그때는 그 선들이 세월의 흔적인지 알지 못했다.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우리 엄마도 키오스크 앞에선 한 노인 일수 있구나.
엄마의 지문도 닳고 있고,
그 기계들은 우리 엄마의 세월을 읽지 못할 수 있겠구나.
이제야 나는
혹여나 무인기계 앞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누군가의 엄마나 아빠였던 노인이 있지는 않을지
둘러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기계는 못 읽어도 나는 그의 지나간 세월을 이해한다는 뜻에서 어깨를 감싸주고 함께 기계 앞에 서주기로 조심스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