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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몇평이십니까?

우리가 제대로 던져야 할 질문

by 조은주

두 살배기 아들과 교회 한구석에서 놀며

예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와 질문을 한다.

'선생님 집은 몇 평이에요?'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는 해명을 하려다가,

해맑은 얼굴로 물어온 그 질문 내용에 더 신경이 쓰여 말을 잠깐 멈췄다.

이 아이는 왜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나에게 집 평수에 관한 질문을 하는 걸까?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예전 어느 아파트 광고 문구처럼

우리는 어떤 집-어떤 동네 혹은 몇 평인지-에 사느냐에 따라 자기 가치를 평가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나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이 잘못된 인식이 아이들에게도 흘러들어가 '빌거(빌라거지)' 또는 '휴거(휴먼시아 거지-주택공사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 '월거(월세거지)' 라는 신조어로 서로를 놀리고 따돌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이의 질문에 순간 멈칫하고 뜨악하게 반응한 것도 어느새 내 안에 그런 가치관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어쩌면 이 아이도 집평수가 의미하는 것을 알고 질문을 하는 것일까?

너무 해맑은 모습에 아닌 것도 같았지만, 그래도 이대로는 안되었다.


나는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해주느냐에 따라 이 시대의 가치관이 새롭게 바뀌고 아이들의 잘못된 선긋기가 사라질 거라는 생각까지는 아니어도(제발 그렇게 된다면!), 순간 고심했다.


티 없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초등학교 1학년쯤 되었으리라) 내 대답을 들려주었다.


우리 집은 많이 크지 않아.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어. 그건 바로 마음이 몇 평인지 물어보는 거야.



아이는 새로운 대답이라는 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어떤 사람은 집이 아주 넓어도 마음이 정말 좁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집이 좁지만 마음이 정말 넓은 사람이 있단다. 정말 중요한 사람의 마음이야. 마음이 몇 평인 것 같니?"


"저는.. 무한대인 것 같아요."


풉. 정말 순진한 녀석이다. 그래, 마음이 무한대라면 4대 성인 중에 한 사람으로 들어가도 손색이 없겠구나. 그래도 아이에 맞게 설명을 해주어야지.


"그렇구나. 그런데 너도 친구나 형아가 놀리거나 괴롭히면 마음이 갑자기 좁아질 때가 있지?"

(왜냐하면 네가 형과 싸우는걸 몇 번 본적이 있거든)


"네.. 그럴 땐 좁아져요."


"그래. 그래서 우리는 계속 마음의 평수를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단다. 이제부터는 너도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할 때 마음이 몇 평인지 물어보도록해."


아이는 대답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희미한 웃음을 남기고는 저만치 가버린다.


방금 있었던 대화를 천천히 곱씹어보며

나는 두 살짜리 아들의 얼굴을 다시 쳐다본다.

왠지 모르게 나는 아들 앞에서 부끄럽지가 않다.

그리고 다짐해본다.

부디 아들이 자라게 될 이 땅에

집의 평수보다 마음의 평수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기를.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집 평수를 묻는 게 아니라

마음의 평수를 확인하고 반성하는 날이 오기를.


"당신의 마음은 몇평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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