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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라보노의 꿈

by 조은주

약속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는 퇴근길 사람들이 가득했고

평소처럼, 나는 핸드폰을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 역에서 장애인 승객 한명이 탔다.


전동휠체어에 타고 있었는데,

그의 몸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체장애가 있는 것 같았다.

얼굴은 약간 젊었다.


그러려니..

나는 고개를 돌려 내 할일에 집중했다.

그런데 그때,

웅얼웅얼 그가 무슨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체장애에, 정신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으시구나..안됐다. 생각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는 뜻대로 잘 올라가지않는 고개를

푹 숙이고 팔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열심히 어떤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으로보아

구걸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의미없는 몸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꾸준하고 열심이라

나는 한참을 쳐다보았다.


지하철에 있는 모든 승객 중,

아무도 알아들을수없는

그냥 웅얼대는 그 소리.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찬찬히 보니

그의 무릎위에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글귀가 적혀있었고,

그는

공부를 하고싶은 자신의 뜻을 열심히 전하며 사람들에게 천주머니를 힘겹게 내밀고있었다.

그는 자신의 꿈을 담은 후라보노를 천원에 팔고있었다.


마음대로 움직일수없는

만원 지하철의 휠체어와..

한문장도 분명하게 말할수없는

그의 목소리..

내가 보기에 그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참 불리한 입장이었다.


어쩌나?

내가 가진 것은 만원짜리 한장.

순간의 고민과 싸움끝에

그의 천주머니에 슬쩍 넣어주었다.


왠지 민망해서 나는 다른 쪽으로 피하려는데,

그가 내 손에 후라보노 하나를 쥐어주었다.


에이, 괜찮은데하며

후라보노를 받아들어 보는데,

그 후라보노가 참으로 꾸겨져있었다.


뜻대로 잘 펴지지않는 그의 손바닥안에

쥐어지고, 비틀어지고, 구겨져서

그 후라보노 껍데기에는 주름이 참 많았다.


그 안쓰러운 후라보노를 얼른 내 가방에 넣고

출입문 쪽으로 피해있었다.


그가 이제 다른 칸으로 가겠구나,

만원정도면 껌 열개값이니

어쩌면 오늘 저녁은 평소보다 더 괜찮은 저녁일지도 모르겠다고 여기며

그를 쳐다보았는데,

그가 어딜 안가고 그 자리에 한참을 서있었다.


안가고 무얼하나

나는 또 다시 시선을 그에게 고정시키고 있는데,

그가 힘겹게 나를 돌아보며

5천원짜리 한장과

천원짜리 4장을 접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아..

그는 나에게 9천원을 거슬러주고있구나.


그는 자신의 꿈을 담은 천원짜리 후라보노를

부요한 정직함으로 팔고있구나.

그는 꿈 앞에서 누구보다 당당하구나.


그 순간,

그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불리한 자라고 여겼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는 어쩌면 그 지하철에서

가장 강하고, 정직한 사내였을지도 모른다.


온몸이 제멋대로 비틀어져서

휠체어에 타면서도,

학업의 꿈을 포기하지않는

가장 용감한 청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나라가 이런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청년이 잡은 그 후라보노에

주름이 덜생길수있도록 돕는 나라.

온 종일 잘 펴지지않는 손으로

후라보노를 쥐는 것이 아니라

연필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나라.


안일한 마음으로 만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9천원을 거슬러 줄수있는 용기가

인정받는 나라.

좋은 부모나 많은 돈이

대학에 들어가는 조건이아니라,

정직하게 거스름돈을 내어주는

그 용기가 대우받는 나라.

자신의 꿈을 그 어떤 것보다 당당히 여기는

그 마음이 인정받는 나라.


그는 오늘 집에 잘 돌아갔을까.

그 청년의 꿈은 오늘 한걸음 더 성장했을까.

내가 할수있는게 없어서,

기도를 하고 자야겠다.


(201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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