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Zone 안에서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Zone 밖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Zone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들어간다고 하여도 오래 있기가 힘들다. 이러한 Zone의 특성을 경험하게 되면, 한 가지 생각밖에 안 든다. “아~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왜냐하면 Zone 안에서의 경험과 밖에서의 경험이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강의를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할 때, 다른 사람의 강연을 자주 듣는다. 그러면 그 강연을 통해 나는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고, 차 안은 새로운 Zone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에 강의를 간 그날도 그러했다. 차 안에서 정말 많이 웃고, 신선해졌다. 그런데 도서관에 도착하여 차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차 안에서 경험했던 신선함이 정말 한 순간에 싸늘하게 사라져 버렸다. 자동차 안과 밖에서 경험한 분위기는 정말 극명하게 달랐다. 도서관 주차장은 너무나 무료하고 냉랭했다. 공기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그 분위기가 그 주차장 공간 안에 흐르고 있었다. 뜨거운 공기가 있는 곳에 냉랭한 공기가 들어오면 밀어내 버리는 대류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나의 뜨거운 분위기는 차가운 분위기에 압도당하여 밀려나가 버렸다. Zone 바깥으로 강퇴당한 것이다.
군대를 가면 ‘화생방 훈련’이라는 것을 받는다. 전시에 화학무기와 생물학 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이다. 훈련 방식은 훈련병 10명을 1개 조로 하여 창고 안에 들여보낸다. 그 창고는 가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창고로 들어갈 때는 방독면을 쓰고 들어간다. 창고 안으로 들어가면, 험악한 조교가 방독면을 벗으라고 한다. 방독면을 벗자마자 캑캑거리며 쓰러지고 기침을 하고 난리가 난다. 생지옥이 따로 없다. 그리고 창고를 빠져나올 때면, 눈물과 콧물, 침이 온 얼굴에 범벅이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순간은 너무나 행복하다. 불어오는 바람과, 폐까지 들어가는 산소가 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기의 소중함과 숨 쉴 수 있는 것의 감격을 느껴본다. 다시는 그 창고 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결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만은 안 될일이다.
이처럼 Zone 밖으로 나가서 일상의 무료함과 분주함을 느껴야 하는 것은 화생방 창고 안으로 다시 들어가 가스를 마시는 것과 똑같은 일처럼 여겨진다. 문제는 화생방 훈련에서는 창고 안의 시간은 몇 분밖에 안 되고, 창고 밖의 시간이 나머지 전부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아름다움을 숨 쉴 수 있는 Zone 안의 경험은 몇 분 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Zone 밖에서 산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군대의 경험은 너무도 부정적이어서, 사회 나가면 군부대 쪽으로는 소변도 보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나는 그런 군대를 일반병으로 2년, 장교로 3년을 근무했다. 그곳에서도 Zone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있는 부대에서 근무할 때이다. 사방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펜션을 빌려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자연경관을 즐길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지역에 있는 군부대 장병들에게 그 자연환경은 결코 호감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들이 산골 오지에 끌려와 있다는 신세타령 밖에 안 되었다. 그나마 간부들은 밤이 되면, 술판을 벌이며, 자신들의 처지를 달래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 왕따가 되어 숙소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강원도의 달빛과 숙소 옆 개울에서 흘러가는 물소리, 수많은 곤충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 그리고 온 대지를 채우고 있는 듯한 고요함. 삶을 음미하기에 이 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 그곳에서 느낀 충만함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내 삶의 어느 한순간을 향해,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이라는 느낌!
저 멀리 다른 방에서 들려오는 술에 취해 웃고 떠드는 소리는 정말 다른 세상 같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밤을 보낸 다음날이면, 아침 6시에 울려 퍼지는 기상나팔소리마저 그렇게 경쾌하게 들릴 수 없었다. 추운 겨울 아침 기상 후의 체조와 달리기는 군인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이스이다. 수 백명의 군인들이 내는 짜증과 불만의 분위기가 부대 전체를 드리운다. 그러나 나는 젊은 청년들과 함께 달리는 그 아침이 너무나 신선했다. 나는 그 아침에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펜션에 놀러 온 휴가객들처럼.
일과 중에도 비슷한 사건들은 계속 일어났다. ‘분대공격’이라는 훈련을 할 때이다. 나는 교관으로서 철조망에 연막탄을 터트리고 통과하는 실습 파트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게 20개 조가 로테이션된다. 다음 조가 다시 오기까지 10분 정도의 시간 간격이 있다. 그때 나는 큰 바위에 걸터앉아 주머니에 넣어 온 책을 꺼낸다.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바치는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는다. 불성실한 교관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 그곳에 있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다음 조가 왔을 때 “이 지겨운 훈련 언제 마치지”하지 않고, 정말 신나게 훈련시킬 수 있었다. 그 시간 그곳에 있는 아름다움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5년의 군생활 동안 Zone 안에 있었던 시간보다 Zone 밖에 있었던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아름다움보다 짜증, 분노, 분주함 등을 훨씬 더 많이 느꼈다. 그런 만큼 내게는 Zone 안에서의 시간이 더 간절해졌다. 내 삶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열망은 현실도피나 다른 일상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한 순간도 놓이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다. 아름다움이 경험되지 않는 내 인생의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까지 그 Zone이 확장시키겠다는 결연함이다.
결국, 삶의 터전은 집이라는 공간, 직장이라는 건물이 아니다. 우리가 생존이 아닌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주소는 항상 Zone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Zone은 계속해서 시공간을 향해 확장되어야 한다. 나의 경우에도 지금까지 삶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빈도와 강도는 점점 더 깊어지며 넓어지고 있다. 그러한 2가지 경험을 더 나누고 싶다.
아침은 바쁜 시간이다. 학교와 직장으로 허둥지둥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아니면 더 자고 싶은 마음에 늦장을 부리던지. 어쨌든 아침은 여유가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여유 있게 시간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침은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다. 나에게도 그러했다. 그런데 바쁘 일정에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며 살던 어느 날, 모처럼 일찍 일어나서 아침의 기운을 받으며 여유를 즐겼다. 그러면서 떠오른 좋은 느낌들이 있어서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는데, 문득 아침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아침’이라는 시간이 매우 생생하게 다가오면서,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리내어 아침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침아 안녕”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많은 아침을 맞이했는데, 한 번도 인사를 한 적은 없었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와 밝은 기운에 기분이 좋아진 적은 있었지만. 그것에 감사를 느낀 적은 없었다. 인사를 건넨 그 순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금까지 매일 나를 찾아와준 그 아침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그 날 아침에 포스팅한 내용이다.
"아침아 안녕"
오늘도 어김없이 네가 찾아와 줘서 너무 고마워
그동안 너의 가치를 잘 몰랐던 것 같아
인사도 한 번 없었던 것 보면 말이야..
아침아 너를 사랑한다.
나의 부족했던 지난 삶을 묻지 않고
또다시 나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을 선물해 주어서..
너는 어떤 기대를 안고 나를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나도 오늘 하루 정말 잘 살고 싶어... 정말 살아가고 싶어...
- 2016년 2월 27일 08:03분
무언가 달랐다. 자기 계발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잠을 억지로 참아가며 무언가를 하는 분투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그곳에서, 내 삶의 진정한 주체가 되어 오롯이 서서, 내게 찾아온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의 삶이 아침을 매일 이렇게 느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점심도, 저녁도.
그런데 어느 날 그런 하루가 찾아왔다.
토요일 아침, 강의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며 책을 읽었다. 몇 페이지 안 되는 내용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도서관까지 걸어오며 책에서 받은 감동을 셀카로 찍었다. 애완견을 데리고 행복하게 산책하는 사람들과 도서관 주변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영상에 담았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행복감을 즐겼다.
도서관 교실에 도착하니, 한 학생의 어머니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먹으라고 맛있는 간식들을 챙겨 보내 주셨다. 맛있는 걸 먹으니 더 행복해졌다. 이러한 에너지 때문에 그날 도서관 수업은 색다르게 진행해 보았다. 자료실로 내려가서 책을 1권씩 빌려오도록 했다. 아이들은 이 책, 저 책 꺼내 들며 소곤소곤 대화하는 모습에 사서 선생님들에게도 행복이 전염되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니 나는 더 행복해졌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와 각자가 빌려온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그때, 나는 공자의 《논어》를 빌려왔는데, 그중에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공자가 자신의 인생을 시기별로 그 특징을 말하는 부분이었다. 공자에게 오십이란 나이는 지천명(知天命)의 시간이었다. 지천명!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내 안에서 불쑥, “나는 아직 삼십 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천명을 발견했는데”하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그 순간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게 보였다. 나의 지천명은 바로 저 아이들이었다. 저 아이들이 위대한 십 대로 탄생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침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나갔다. 책을 손에 들고 신호등을 기다릴 때에도 읽었다. 파란불로 바뀌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멈추어 서 있는 고급 외제차에 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왠지, 그 사람이 날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걸어가면서도 계속 읽었다. 수많은 느낌들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집 앞 공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울컥 눈물이 나려 했다. 책의 내용에서 내가 그토록 바라고 있는 ‘위대한 십대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증거를 또 하나 찾았기 때문이다. 내 가슴에서는 “맞는구나, 되는구나”라는 뜨거운 감동이 올라왔다. 그리고 눈을 들어 집 앞 공원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때 내게서 이런 고백이 나왔다.
“나는 이곳을 천국이라 부르기로 결정했다.”
공원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일반 공원이다. 오히려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황량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는 공원이다. 그런데 놀이터에 내려 비추는 햇살과 낙엽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예술 작품으로 보였다. 그 공원은 집 앞에 있기 때문에 날마다 보는 공원이다. 그 공원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영역으로 들어갔을 때, 그 공원은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 당시 유행어 중에 하나는 ‘헬조선’이었다. 우리나라를 지옥으로 비유한 것이다. 정치,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어떤 면에서 헬조선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의 내면에서는 아름다움을 넘어 강한 불이 타오르는 듯했다. 헬조선 같아 보이는 세상에 천국과 같은 영역이 존재하고 있다는 확신과 그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집으로 올라와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을 먹으면서 경남 거창고등학교의 전성은 교장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다. 그런데 또 탄성이 나왔다. 너무나 멋진 말씀이었고, ‘위대한 십대의 탄생’ 원리와 또 일치했기 때문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치, 이 모든 책과 강연들이 내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모임을 갔다. 그 모임에서 또 감동을 받고 마음이 설레었다. 집으로 오는 길을 나비처럼 날아왔다.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이었기 때문에, 뛰면서 손도 높이 들고, "Yes"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로또에 1등으로 당첨된다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와, 7살 아들의 발을 나의 가슴에 대고 말했다. “아들 느껴봐. 아빠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정말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눈물이 날정도로 감사했다. “어떻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하루 전체가 이리도 충만할 수 있을까?” 신기할 따름이었다.
헬조선에서 천국은 어디 있는가?
Nowhere. “어디에도 없다”가 아니다.
Now Here. 지금 여기에 있다.
이것이 나의 확신이다.
천국은 바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는 삶이라는 선물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