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필요로서의 교육

by 오 마이 캡틴

현대 교육 분야에서 가장 주요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존 듀이의《민주주의와 교육》1장은 '생명의 필요로서의 교육'을 제시한다. 생명 전쟁에서 승리하여 사람에게 주어진 생명의 존엄, 사람다움을 지켜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교육적 경험이다. 일반적인 교육 경험이 아니라 ‘생명의 필요로서의 교육’을 경험해야 한다.


서양사 상사의 새로운 분기점을 만든 임마누엘 칸트도 “사람은 교육을 통하지 않고서는 사람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사람을 사람답게, 삶을 삶답게 만들어가는 것이 교육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삶의 아름다움처럼 교육받는 경험도 아름다움을 그 본질로 한다. 아름다움이 경험되지 않는 교육은 교육의 겉모습을 가지고 있을 뿐, 교육으로서의 내용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수많은 이름의 교육들이 학교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아름다움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교육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수학교육은 수학에 관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수학의 세계에 대한 아름다움의 경험이어야 한다. 수학을 통해 이루어지는 세상의 질서와 그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수학의 정교함이 학생들을 매료시켜야 한다. 영어교육, 글쓰기 교육, 독서교육, 진로교육... 이 모든 교육들이 진정한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경험, 아름다움의 경험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아름다움의 경험을 하게 되면, 학생들은 자기가 스스로를 교육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러한 교육적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여자 중학교에서 하루 6시간 동안 진행하는 워크숍을 할 때였다. 학생들은 삶에 대해 알아가는 교육의 내용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재미없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무엇에서 재미를 느끼느냐?”라고 물으니, 한 아이돌 가수의 이름을 말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그 가수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무기력하기만 하던 아이들은 갑자기 교실에 있는 TV 모니터 화면 앞으로 몰려오더니 열광하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시간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다시 무기력해졌다. 그래서 다시 학생들에게 아이돌 가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학생들은 그 가수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얼굴이 밝아졌다. 그 가수를 볼 때 어떤 느낌이 드냐고 물으니, 한 여학생이 이렇게 대답했다.


“신성해요”


그렇다. 그 여학생이 아이돌 가수에게 받는 그 느낌이 바로 교육받는 경험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그 사람은 한 번도 교육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 일이 있은지 얼마 후, 다른 중학교 도서관에서 강의를 할 때이다. 그 학생들도 여전히 삶에 대한 배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수업이 재미없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몇몇 학생들이 주변을 살피며 손을 들었다. 손을 들지 않은 채 난처한 표정으로 있는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표현하라고 격려했다. 그리고 어떠한 처벌도 없으니 수업내용에 흥미가 없고 듣기 싫은 학생들은 일어나 뒤로 나가서,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을 자유롭게 읽으라고 했다. 학생들은 당황한 듯 “정말요?”라고 물어봤고, 그렇다고 하자 6명 정도의 학생만이 남고, 나머지 20명 정도의 학생들은 모두 나갔다.


여러 테이블에 나뉘어 앉아있던 6명을 중간 테이블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내 모든 열정을 다하여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는 중에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그런데 참 신기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수업이 싫다며 나간 20명의 학생들은 수업이 끝났다며 나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내 앞에 앉아있던 6명의 학생들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나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신성함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공간의 분위기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었다. 바로 이 차이를 남은 학생들에게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그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순간, 나는 그 6명의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느낌, 바로 이 느낌을 받을 때만, 교육받았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수업은 마쳐졌다. 그 자리를 떠나기 싫어하던 그 아이들의 눈빛과 얼굴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나에게도 그 순간 너무 아름다웠고, 그 아이들에게도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교육적 경험, '생명의 필요로서의 교육'을 경험한 것이다. 이것이 학교 School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여가를 뜻하는 단어인 스콜레 Schole에서 파생된 이유이다. 본래 교육받는 경험은 일반 대중들이 결코 누릴 수 없던 일부 특권층의 특별한 여가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가 있었다. 10명의 남자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10번의 집단 상담을 할 때이다. 보통의 경우 아이들은 상담이 불가능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장난스러운 농담은 말하지만, 마음의 이야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그냥 게임 같은 가벼운 활동 몇 개 하다가 간식 먹고 헤어지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이다. 횟수가 조금씩 쌓이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역전되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보여주면, “이거 우리 감동 줄려고 하는 거죠”라고 말하는 애들이었다. 감동적인 동영상은 식상할 뿐이고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한 날은 원연이라는 학생이 다들 장난치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후회돼요”라고 말했다. 원연이는 주말이면 10시간이 넘게 게임을 했다. 엄마의 통제도 전혀 안 먹히는 상태였다. 그런 원연이에게 갑자기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원연이는 조금씩 방과 후에 축구를 하기 시작했고, 축구에 재미가 붙어 게임을 안 하게 되었다. 운동을 하니 몸의 컨디션도 좋아지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게임은 거의 안 하게 되었고, 포기하였던 공부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 아이에게 일어난 교육적 경험이 기적적인 변화를 만든 것이다.


우리는 전쟁 중에 있다. 어른들이 푸념 섞인 목소리로 ‘사는 게 전쟁이다.’라고 말한다. 먹고사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의 진짜 전쟁은 ‘생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것이다. 신체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향상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삶’을 지키면, ‘생존’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생존’만 지키면, 삶은 잃어버릴 수 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했던 햄릿의 대사는 “그대로 있을 것인가 그대로 있지 않을 것인가”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대의 삶에 진정으로 교육받는 경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대는 정신적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것이 곧 죽음이다. 우리는 삶의 매 순간,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은 더 생명과 죽음을 왔다 갔다 한다. 깨어있는 삶은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류 공동체 전체의 문제이다. 그러기에 개인과 사회는 교육받는 경험에 헌신해야 한다. 교육받은 사람은 지금보다 더 나은 자신과 사회를 본능적으로 갈구하게 된다. 마틴 루터 킹 박사 Martin Luther King도 우리 사회의 진보는 거의 대부분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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