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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숲 Dec 06. 2021

제로 웨이스트 샵 창업 : 후회와 삽질의 길로 들어서다

제자리로 이름에 대한 이야기 - 1997년 봄 어느 날



난 왜 창업을 하였고

왜 하필 제로 웨이스트 샵을 하였을까?

후회와 삽질의 좌충우돌(이라기보단 구질구질)

창업기를 써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많은 분들이 궁금해했던

'제자리로'라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푼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음 주의 : 하지만 동정은 금지 :-)




2020년 12월

드디어 포트폴리오를 포기했다.


웹디자인 웹퍼블리셔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학습하고 CSS에 빠져 허튼짓을 백만 번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며 낙하산으로 몇 가지 프리랜서 외주 일을 맡아 진행했다.

하지만 결국 포트폴리오는 포기했는데... 이상은 크고 현실은(실력) 비루하여 그 간극을 채우지 못한 것...

그냥 의지박약이라는 단어 하나면 설명이 끝날 것이다.

생계를 꾸릴 다른 일을 얼른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 다가왔다.

(아 우리 부부는 돈을 각각 관리한다. 네 돈은 네 돈 내 돈은 내 돈)

내가 왜 포트폴리오를 마무리하지 않고 이 험난한 길로 들어선 것인지.......

포트폴리오를 마무리했다면, 본격적으로 취업을 해서 웹퍼블리셔 일을 하고 있을 것이고

창업, 제로 웨이스트 샵과 같은 고단한 일이 아닌 월급루팡을 하고 있었을 텐데...

쨌든(월급루팡의길도 평탄치는 않았겠지만.....)

포트폴리오를 포기 한 덕에 난 제로 웨이스트 샵을 오픈하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한다..


(제로 웨이스트 샵 시작하시려고요? 잠시만 저랑 얘기 좀 해봅시다!!)


2020년 1월

결혼을 위해 인천으로 이사 왔다.


아마도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엄마의 죽음이 가장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카톡 프로필 사진은 남편이 엄마를 처음 만난 날 준 꽃다발 사진이었다.

 2019년 3월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유언대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려고

1년 동안 꾸준히 운동하고 건강한 몸을 만들었다. (지금은 두배가 되었다는 후문...) 그러면서 샐러드에 빠져 동생과 샐러드 가게를 준비하다가 샐러드의 원조 로마에 다녀오고(왜?) 샐러드 가게를 시작하면 바빠질 것이므로 히말라야 백패킹을 준비한다.(왜????). 난 사실 의지박약이며 딴 길로 세기, 곁눈질하기 전문이다.

(그런 내가 창업을, 제로 웨이스트 샵을 오픈했다는 게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다.)

인도 라다크로 백패킹을 갔다. 고산병으로 고생할 때 한국에서 날 걱정해준 지금의 남편과 결국 결혼을 결심하고 인천에 둥지를 틀었다. 샐러드 가게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었고(내가 그럼 그렇지......), 예전에 시도했었던 웹퍼블리셔 쪽으로 관심을 틀었다.


2017년 4월

엄마가 암 선고를 받으셨다.


암을 공부하고, 암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엄마와 함께 설계해 나갔다.

난 큰딸로서 암 선고를 받은 엄마의 흔들리는 멘탈을 잡아드려야 했고, 동시다발적인 주변인들의 무분별한 암에 대한 정보들을 선별해서 정리해야 했으며, 그전까지의 엄마의 식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꿔드려야 했다.

1년 동안 함께 지내며 하루도 눈물 없이 보낸날이 없다.  

수술할 수 없는 위치에 생긴 다발적암은 항암치료도 두려운 상태였고

병원에서 시달리는 삶을 엄마는 원치 않으셨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곧 터전을 옮기길 권하였으나

동네분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엄마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 것 같아 이동을 포기했다.

엄마는 씩씩하게 2년을 버티셨다.


1997년 5월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수능을 개판으로 쳤는데 운이 좋게 서울 소재 미술대학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연희동에 자취방을 마련해서 시작한 대학생활은

나에겐 꿈같은 시간이었는데, 부모님은 모든 곪아 터진 감정들을 쏟아내는 시간이었나 보다.

(그런 혼란 속에 고등학생이었던 동생만 두고 나온 게 지금도 너무 미안하다.) 이혼하신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땐 나와는 상관없는 일,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다면

우리 가족을 제자리에 놓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자리에 놓기'라는 작품을 만들었었고,

내가 좀 더 다정한 딸이 되지 못한 이유로 우리 가족이 해체되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부모님과 너희는 별개이니 부모님의 관계에 휘말리지 말라고 하셨었기 때문에,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고(방관하고)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그땐 그 선생님의 그 말이 참 너무 감사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소리 지르고 당신들의 자녀의 삶을 보라고 외치고 표현했어야 했다.







나의 작은 상점

제자리로 는

'제자리에 놓기'라는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해체된 가족을 제자리에 놓고 싶었던 나의 20대의 간절했던 그 마음이

환경문제에 투영되어

우리 4 가족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의 그 기쁨을 상상하며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지금의 환경문제를

제자리로 돌려놓고자 하는 그 의지의 마음을 담았다.


제자리로는  

그래서 환경에 대한 문제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감정에 대한 제자리에 대해

고민하는 마음까지 담는다.



되돌아갈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 의지로 살아가는 것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


그 걸음 위에

제자리로 가 있다.





성급하고 가식적인 인간의

솔직하게 창업해 나가는 인간성장 스토리

구질구질 구구절절 주의


환경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제로 웨이스트의 5R도 모르는 여자가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살아갈 수 있을까?


계속해서 듣고 싶으시다면 열렬한 피드백을 날려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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