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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Nov 04. 2023

#4 낙엽무덤

 간밤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바닥을 뒹굴던 낙엽들은 이름 모를 누군가에 의해 한 군데 모아진다. 떨어진 잎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핀잔을 들으며 가만히 쓸어 담긴다. 낙엽 무덤이 생겼다. 낙엽들은 겨우 바스락 리를 내며 서로를 다독였다. 바스락거리는 그 소리. 아직 살아있음을 외치는 아우성 같았다.


 언젠가는 푸르렀을 낙엽들의 시간을 떠올려본다. 깊게 뿌리내린 나무, 곧게 뻗은 가지에 돋아닸을 여린 잎들. 여리지만 단단한 본성을 가진 푸른 잎들. 바람이 불면 서로를 간지럽히며 웃던 소리들. 푸른 연대가 주던 그 따뜻함과 평온함을 기억해 본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쓸어 담아 기어코 사랑으로 만들어주던 사람이 생각난다. 학교에 근무하던 수위 아저씨가 매일 아침 낙엽을 쓸어 모아 응원의 글씨를 만들었다는 그 이야기. 쓸모를 잃고 무덤처럼 모여 벌벌 떨던 낙엽을 보니 그 따뜻한 마음이 더 절실하게 생각나는 날이다.


 나도 언젠가 와장창 깨져버리는 날이 있겠지. 산산조각 난 마음이 볼품없게 흩어져 뒹구는 날이 분명 있겠지. 그런 내 옆에 쓸모를 다했다며 짓밟고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조각난 나를 쓸어 모아 기어코 사랑으로 이어 붙여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볼품 없어진 마음도 소중하게 어루만져 줄 그런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나는 또 다른 형태로 다시 숨을 쉴 테니.


 오늘 나는 낙엽 무덤을 지나며  떨어진 잎들을 마음속에 가지런히 쓸어 담았다. 마음이 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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