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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Nov 03. 2023

#3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느새 가을


11월이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점점 더 쌀쌀해지는 기온을 몸소 느끼니 ‘곧 겨울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한낮의 날씨가 이상하다. 어제는 30도 가까이 올라갔다고 한다. 나는 이 계절을 늦여름이라 불러야 할까, 가을이라 불러야 할까, 초겨울이라 불러야 할까.      


 가을, 그래도 가을이겠지. 주변에 온통 가을인 것으로 가득하니 말이다. 초록의 잎의 색이 알록달록하게 바뀌고, 은행 알맹이가 떨어지고, 철새가 날아들고 있다. 올해는 조금 늦게 가을을 알아차렸다. 출퇴근이며 운동이며 목적지만 보며 움직이다 보니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본다.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늦잠을 자고,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었다. 그리고 4시가 되어서야 독서토론을 위해 길을 나섰다. 차를 타고 갈지 고민하다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나는 창가 좌석에 앉아 버스 안과 밖의 풍경을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풍경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버스 안에는 나처럼 혼자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친구들과 꺄르르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낯선 나라에서 익숙하게 버스를 타는 외국인도 있었다. 바깥으로 스치는 풍경에는 익숙한 것도, 새로운 것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세상 구경하다 목적지에 내렸다.      


 경주 중앙시장 버스 정거장에서 내려 목적지인 봉황대로 10분 남짓 걸었다. 별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긴 그 끝에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능 아래 그늘 속에 돗자리를 펴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 저마다의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그 풍경이 참 이상하면서도 정겹고 반가웠다. 경주는 그런 곳이었다. 무덤 앞에서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곳. 죽음을 곁에 두고 걸으면서 사색을 하고, 죽음을 곁에 두고 웃을 수 있는 곳. 수많은 죽음이 발끝에 치이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경주의 가을은 어쩌면 더 농익은 진한 행복이 베여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나도 늦게나마 지금의 계절을 즐기려고 다분히 노력했다. 아직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하는 아이들, 나무 아래 의자에서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있는 할아버지, 한복을 입고 여행하는 여행자들, 서로의 얼굴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걷는 연인들, 해가 지면 일제히 불이 붙는 창문들. 내일이 되면 또 달라질 오늘의 풍경을 눈에 담고, 마음에 새겨두었다.      


 사실 계절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고, 떠나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무신경할 뿐. 내일이면 주말이다. 아직 여름에 있다면, 벌써 겨울에 있다면, 지금의 가을을 즐기러 나가보기를 바란다. 비 소식이 있지만, 그 나름대로 가을의 운치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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