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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Nov 20. 2023

#16 우당탕 엄마 생일상 차리기 대소동

 엄마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러 주말에 본가로 갔다. 아직 무릎 수술로 다리가 성치 않은 엄마가 의자에 앉아 반겨주었다. 나는 털레털레 빈손이었다. 이번 생신에는 어떤 선물을 사드려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마음은 꽃다발도 사서 가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사지 못했다. 당장에 엄마한테 필요한 선물을 찾지 못해서 용돈을 준비해서 가방에 숨겨둔 참이었다. 그래도 나를 환하게 반겨주는 엄마 앞에 빈손으로 들어가니 무언가 머쓱했다.      


 저녁에는 회를 먹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엄마의 말에 나와 막냇동생은 어시장으로 향했다. 엄마가 준 수산시장 상품권으로 회도 사고, 조기도 사고, 멍게 젓갈도 사고, 전복도 사고, 가리비도 샀다. 꼼꼼하게 심부름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트에 들렀다.      


 엄마는 내 생일이면 꼭 먹어야 하는 것을 카톡으로 보내거나 전화로 당부했다. “생일에는 떡 한 쪼가리 먹어야 하고, 국수 같은 긴 면 같은 거 먹고, 미역국 먹고 해라.” 그 말이 생각나서 마트에 들러 장을 보기 시작했다. 잡채를 할 수 없어서 해파리냉채로 긴 면을 대체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 마트에 떡이 있어서 떡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귤 한 박스와 LA 소갈비도 샀다. 생일상의 구색은 얼추 갖춰진 것 같았다.      


 생일 전날인 토요일 저녁에는 어시장에서 사 온 회와 해산물들을 푸짐하게 먹었다. 맛있게 먹는 가족들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물론 내 돈으로 차린 건 아니었지만 추운 어시장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심부름한 보람은 있었다. 그런데 장보기에 너무 힘을 쏟은 걸까, 몸이 노곤해졌다. 잠시 쉬는 틈에 엄마가 직접 미역국을 끓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할게’하고 뛰쳐나가야 하는데 나는 점점 더 이불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일 아침에 밥을 꼭 차려드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다음 날 아침, 어렴풋이 엄마 아빠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배고프면 미역국이라도 먼저 한 그릇 드실래요? 애들이 일어날 생각을 안 하네.” 그리고 곧 엄마의 전화가 울린다. 타지에 있는 여동생이다. 엄마의 생일을 축하해 드리려고 전화를 했나 보다. “엄마 생일 축하해요. (중략) 언니야는 뭐 해?” “아침밥 차려준다더니 아직도 잔다. 배고파 죽겠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뜨고 몸을 뒤척거리며 뻘쭘하게 일어났다.    

 

 조기를 물에 씻어서 프라이팬에 올려두고 전날 불려둔 해파리로 냉채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엄마가 해주는 것을 먹어만 봤지 해본 적은 없어서 엄마의 자문이 많이 필요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소스를 만들고, 간을 보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했다. 엄마가 끓인 미역국과 엄마 돈으로 사서 내가 구운 조기, 내가 샀지만, 엄마가 도와줘서 만든 해파리냉채, 내가 사서 구웠지만 탈 뻔한 LA갈비까지. 사연 많은 엄마의 생일상이 차려졌다.      


 이걸 내가 차렸다고 해야 하는지, 아닌지 모를 조금 이상한 생일상이었지만 엄마는 물론이고 아빠도 맛있게 드셨다. 엄마가 수술한 이후로 장을 보러 가지 못해서 식탁이 늘 부족했는데 오랜만에 잘 드셨다고 하셨다. 뿌듯했다. 그런데 참 애매하지 않은가? 게으른 딸 때문에 본인이 직접 끓인 미역국과 그마저도 늦게 먹은 생일 밥. 그런데 또 한 상이 차려진 식탁. 나는 효녀에 가까운가, 철부지 딸에 가까운가.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아직은 철부지 딸에 가깝다는 거. 그래도 뭔가 이런 생일상을 차려드리고 나니까 이상하게 조금은 효도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맛있게 드셔주셔서 그런가? 나이 30살이 넘어서 부모님 생일상 한 번 차려드렸다고 생색내는 것 자체가 웃기다. 그래도 이번 경험으로 다음번에는 더 좋은 생일상을 차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은 딸이 되기 위한, 효녀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자. 아주 늦은 첫걸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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